
SK 이건욱. 스포츠동아DB
SK 와이번스 이건욱(25)의 이력서가 풍성하게 채워지고 있다. 올 시즌 대체선발로 성실히 로테이션을 소화하고 있는 그는 자신을 설명할 새로운 수식어를 찾는다.
오타니 쇼헤이(LA 에인절스)를 이긴 투수. 프로 데뷔 이후 7년간 이건욱을 언급할 때마다 빠지지 않던 문구다. 2012년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5·6위 결정전에서 오타니(7이닝 2실점)와 선발 맞대결을 펼쳐 8이닝 무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됐던 짜릿한 기억 때문이다. 이는 팬들은 물론 SK 선수단 내에서도 오래도록 회자되어온 이야기지만, 반대로 말하면 2014년 SK 입단 이후 이를 뛰어넘는 인상적 이력을 추가하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건욱은 올해 대체선발로 새로운 이야기들을 써내려가고 있다. 1선발 닉 킹엄의 부상 공백이라는 부담스러운 자리를 메우면서 상대 에이스들과 대등한 싸움을 벌인 덕분이다. 9일 잠실 LG 트윈스전에선 케이시 켈리(7이닝 1실점)를 만나 5이닝 1실점, 14일 인천 KIA 타이거즈전에선 양현종(7이닝 3실점)에 맞서 5이닝 무실점을 각각 기록했다. 비록 승리투수가 되지는 못했지만, 이 두 경기에서 SK는 모두 이겼다.
이 같은 결과는 이건욱에게 자신감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 특히 SK 유니폼을 입은 뒤로 발가락, 옆구리 등 각종 부상으로 아까운 시간을 재활에 허비했던 그로선 작은 결과들 모두가 소중하다. 벌써 4차례 선발등판으로 소기의 성과를 낸 그는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한결 자유로워졌고, 이런 여유는 다시 이건욱의 안정적 투구를 이끌어내고 있다. 그 덕에 SK도 당초 로테이션 순번을 한 차례만 건너뛰려던 킹엄의 공백기가 1개월 이상으로 기약 없이 길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선발투수를 찾는 데 급급해하지 않고 있다.
사실 SK는 긴 호흡으로 경쟁력 있는 투수를 여럿 키워냈다. 2010년 신인드래프트 2라운드 9순위로 지명 받았던 박종훈은 2016년 처음으로 10승(13승) 투수 대열에 합류해 KBO리그를 대표하는 잠수함 투수가 됐다. 2012년 입단한 문승원도 2019년 11승을 달성하면서 여느 팀의 토종 에이스 못지않은 4선발로 거듭났다. 불펜에선 2018시즌 김태훈(2009년 입단·9승10홀드), 2019시즌 서진용(2011년 입단·33홀드)이 차례로 필승조에 자리를 잡아 기량을 만개했다. 올해는 좌완 필승조 김정빈(2013년 입단)과 이건욱이 나란히 새로운 얼굴로 등장했다.
SK 마운드의 미래는 여전히 밝다. 4년차 우완 이원준과 2년차 좌완 백승건, 올해 1차 지명 신인 오원석 등도 SK가 공들여 키우는 자원이다. “아직 프로무대에서 첫 승을 따내지 못한 투수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는 염경엽 SK 감독의 말 속에는 팀의 육성 시스템에 대한 확신이 깔려있다. 팀의 오랜 기다림 끝에 꽃을 피우고 있는 이건욱도 이를 증명한다.
서다영 기자 seody306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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