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베이스볼] 찬스와 무기를 외친 아버지와 이제 기회의 문을 연 아들

입력 2020-06-29 1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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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이성곤.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삼성 이성곤.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예전에는 잘 몰랐던 노래가 갑자기 좋아지는 경우가 있다. 26일 밤 프로야구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에서 싸이의 ‘아버지’를 들으면서 그랬다. 프로 데뷔 7년 만에 첫 홈런을 친 삼성 라이온즈 이성곤(28)의 활약 장면과 레전드 스타였던 아버지 이순철 해설위원(59)의 경기 장면이 오버랩된 영상 마지막에 나온 노래의 가사 자막은 많은 아버지와 아들을 울컥하게 했을 듯하다.

이날 방송에서 아버지는 주위의 쏟아지는 관심에 큰 부담을 느낀 듯 최대한 담담하게 말하려고 노력했다. “야구를 시키는 부모는 다 똑같다. 얼마나 조마조마하겠나. (아들이) 자기 인생이니까 잘했으면 좋겠지만 그동안은 잘하지 못했다. 이번을 계기로 잘했으면 좋겠다”며 모든 야구선수 부모의 심정을 대변했다.

아들은 다음날에도 롯데 자이언츠를 상대로 홈런을 포함한 3안타를 몰아치며 팀 승리에 크게 기여했다. 이 또한 첫 경험이었는데, 아들은 3안타 모두를 상대 투수의 초구 또는 2구째를 공략해 빼앗았다. “투수는 초구가 무기이고, 타자는 찬스다. 타자가 초구를 노리고 들어오면 그것을 어떻게 쓸 것인지가 중요하다”고 KBO리그 통산 14시즌 동안 타율 0.262, 145홈런, 371도루를 기록했던 아버지는 방송에서 늘 얘기해왔다. 아들은 마침내 아버지의 그 말을 실전에서 확인시켜줬다.

그동안은 모처럼의 기회를 살려야 한다는 부담감에 자신의 장점도 보여주지 못한 채 1·2군을 오르락내리락했지만 오랜 기다림 끝에서 기회의 문을 살짝 연 것이다. 경기 후 수훈선수 인터뷰 때 “힘든 순간 포기할 생각도 했지만 야구가 좋아서 포기하지 않았다”고 말하던 대목에선 스타플레이어 출신 아버지를 둔 어려움도 느껴졌다.

아들의 활약상과 인터뷰를 물끄러미 지켜본 아버지는 방송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어떤 선수들이라도 경기에 자주 나와야 자기 실력을 발휘하는데, 그렇지 못한 상황이면 그렇지 않도록 본인이 노력해야 한다. 이성곤 선수뿐만 아니라 야구를 하는 모든 선수들도 그렇게 경기에 많이 나가도록 본인 스스로 노력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기회의 문은 열린다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타고난 재능을 지닌 선수에게는 기회의 문이 넓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분명 존재한다. 어떤 꽃은 먼저 피고 어떤 꽃은 나중에 피듯 각자 저마다 가장 화려하게 빛나는 순간은 다르다. 그것이 일찍 찾아와서 오래 지속되는 선수는 스타로 대중의 사랑을 받지만, 화려했던 시간이 짧거나 꽃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유니폼을 벗어야 하는 선수도 있다.

그렇게 본다면 기회의 문은 참으로 불평등한데, 이번에 이성곤에게는 열렸다는 신호를 보낸 것 같다. 그래서 아버지는 누구보다 내심 기쁘면서도 겉으로는 드러내지 못했다. 26일 밤 마지막 영상에서 자막으로 나왔던 노래 가사가 깊은 울림을 준 이유다. “아버지 이제야 깨달아요. 어찌 그렇게 사셨나요. 이제 나와 같이 가요. 당신을 따라갈게요.”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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