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구타·가혹행위·성폭력’ 끝없는 추문, 체육계 사후약방문 이제 그만

입력 2020-07-03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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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 최윤희. 사진제공|문화체육관광부

아까운 청춘이 세상과 이별했다.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 국가대표 출신 고 최숙현은 지난달 26일 어머니에게 “엄마, 사랑해. 그 사람들의 죄를 밝혀줘”라는 문자 메시지를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족에 따르면 메시지에 언급된 ‘그 사람들’은 전 소속팀(경주시청) 지도자와 선배들이다. 고인은 지속적인 가혹행위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했다.

대한체육회는 1일 “체육회 스포츠인권센터가 4월 8일 최 선수로부터 폭력 신고를 접수받았고, 여성조사관을 배정해 조사에 착수했다. 이 사건은 경주경찰서를 거쳐 대구지검 경주지청에 송치됐고, 6월 1일 대구지검으로 이첩돼 조사 중이었다”고 설명하며 “대한철인3종협회 스포츠공정위원회(6일)를 통해 관련자들에게 엄중한 조치를 취하겠다. 사건에 대한 미온적인 대처나 은폐 의혹에 대해서도 클린스포츠센터 및 경북체육회 등의 감사 및 조사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사후약방문,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에 불과하다. 관련자들이 큰 죗값을 치르고 사죄한들 최 씨는 이미 가족 곁을 떠난 뒤다. 신고가 접수되고 조사가 진행 중이었다는 기간 동안 최 씨 주변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부터 낱낱이 확인할 필요가 있다.

특히 안타까운 사실은 피해자가 전혀 보호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체육회가 좀더 빨리 대처하고, 최 씨와 가해자들이 마주하는 상황을 완전히 차단했더라면 최악의 사태만큼은 피할 수 있었으리란 지적이다. 체육회가 지역팀이라는 사각지역까지 확인하는 정성을 쏟았는지, 조사 자체는 제대로 했는지, 선수보호 조치는 있었는지 의문이라는 목소리도 많다.

슬프게도 폭력과 가혹행위는 한국체육의 오랜 병폐다. 관행이라는 명목 하에 구시대적 악습이 종목을 불문하고 끊이질 않는다. 태극마크를 달고 올림픽 시상대에 오른 스타조차 지도자의 구타를 피할 수 없었던 체육계다.

전 역도국가대표 사재혁이 후배를 폭행하고, 여자쇼트트랙대표 심석희가 조재범 코치에게 폭행과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해 큰 충격을 안겼음에도 최근까지도 뿌리 깊은 악행이 계속되고 있었음이 이번 사건을 통해 새삼 확인됐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체육회 조사와 별개로 최윤희 제2차관을 단장으로 한 특별조사단을 구성해 철저하게 경위를 파악하겠다고 2일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도 “최 차관이 전반적인 스포츠 인권 문제를 챙기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모든 출발은 정부의 대처가 아닌 체육계의 자정 노력이다. “선수 인권이 보장되는 환경, 행복하게 운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도록 노력하겠다”는 최 차관의 의지만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불미스러운 사태가 터질 때마다 “바뀌겠다”는 공약만 반복한 체육계부터 먼저 바뀌어야 한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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