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산 함덕주. 스포츠동아DB
야구에서 IR(Inherited Runners)은 기출루자를 의미한다. 앞선 투수가 내려가면서 남겨둔, 소위 말하는 ‘승계주자’다.
누상에 주자가 있는 상태에서 배턴을 넘겨받은 투수의 부담은 엄청나다. 이 주자들이 홈을 밟더라도 본인의 평균자책점(ERA)이 나빠지지 않지만, 야구는 팀 스포츠다. 팀이 어려움에 처한다. 보통 승계주자가 있는 상황에서 등판하는 투수는 팀의 핵심 계투요원이기에 더욱 그렇다. 어떻게든 실점을 막아야 한다는 책임감이 크다. 강한 멘탈(정신력)은 필수요소다.
두산 베어스 마무리투수 함덕주(25)도 이런 측면에서 주목도가 높은 투수다. 7일까지 올 시즌 22경기에서 3승8세이브2홀드, ERA 2.66의 성적을 거둔 것도 중요하지만, 10개 구단 투수들 중 IR이 배재환(NC 다이노스·28명)에 이어 2번째로 많은 24명인 점이 눈에 띈다. 올 시즌을 앞두고 “늘 어려운 상황에서 던져왔기에 한결 편안할 때 던지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다”고 고백했건만, 극한의 상황마다 마운드에는 어김없이 그가 있다. 김태형 두산 감독도 “(함덕주는) 긴장감이 없으면 던지고 싶지 않나”라고 껄껄 웃으며 농담을 던질 정도다. 그만큼 여유가 느껴진다는 뜻이다.
더 놀라운 점은 승계주자가 홈을 밟는 것을 억제하는 능력이다. KBO리그 공식기록업체 스포츠투아이에 따르면, 함덕주가 넘겨받은 24명의 주자 중 7명, 29.2%만 홈을 밟았다. 지난해에도 승계주자 46명 중 8명(17.4%)만을 홈에 들여보냈을 정도로 위기관리능력이 탁월하다. 올 시즌 두산 불펜의 ERA가 5.75(7위)로 허약한 사실을 고려하면, 함덕주의 퍼포먼스는 더 큰 가치를 지닌다.
대량실점을 억제하는 능력은 또 다른 지표에도 드러난다. 피안타율(0.209)과 이닝당 출루허용(WHIP·1.10)도 좋은 편이지만, 순장타허용률(0.035)과 피OPS(0.515), 피장타율(0.244)을 살펴보면 좀처럼 장타를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함덕주가 올 시즌 96명의 타자를 상대로 허용한 장타는 홈런과 3루타 없이 2루타 3개가 전부다. 가장 강력한 카드를 꺼내야 하는 극한의 상황에서 그를 호출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강산 기자 posterbo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