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이강철 감독이 11일 수원 삼성전에서 승리해 감독 통산 100승을 달성했다. 지난해 처음 지휘봉을 잡고 거둔 영광스러운 기록이다. 그보다 더 값진 수확은 늘 최하위에 머물던 선수들의 패배의식을 떨쳐낸 것이다. 스포츠동아DB
승리보다 패배가 훨씬 더 많았던 팀. 현재는 물론 미래까지 어두웠다. 하지만 우직하게 백 걸음을 내딛는 동안 승리가 차츰 익숙해졌다. KT 위즈는 패배의식을 완벽히 지웠다.
12일 수원 삼성 라이온즈전 우천취소에 앞서 이강철 KT 감독은 축하를 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취재진은 물론 여러 스태프에게 연신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며 고개를 숙이던 그의 표정은 밝았다. 사령탑으로서 거둔 100승의 여운이 짙은 모습이었다.
KT는 11일 삼성전에서 10-7로 이겼고, 지난해부터 KT 지휘봉을 잡은 이 감독은 이날로 KBO리그 역대 46번째 사령탑 100승(100패2무)을 기록했다. 선수시절 602경기에서 152승112패53세이브33홀드, 평균자책점 3.29를 기록했던 이 감독은 선수-감독으로 모두 100승이라는 역대 4번째 진기록도 함께 썼다. 이 감독에 앞서 선동열, 김시진, 한용덕 감독만 달성했던 위업이다.
0에서 1까지 가는 걸음이 유독 험난했다. 이 감독은 사령탑 데뷔 첫 시즌을 개막 5연패로 시작했다. 시범경기에서도 1승을 맛보지 못해 초조함이 깊어졌다. 이 때문에 지난해 3월 29일 수원 KIA 타이거즈전에서 거둔 감독 첫 승은 여전히 기억에 선명하다.
이후 행보는 거침이 없다. 지난해 KT의 창단 첫 5할 승률을 쓴 이 감독은 올해도 팀의 상승을 이끌고 있다. 2015년 1군 첫해 최하위를 시작으로 2018년까지 ‘10~10~10~9’위로 시즌을 마쳐왔던 KT는 지난해 6위에 이어 올해도 호시탐탐 상위권 도약을 노리는 중이다.
소통의 힘이다. 스프링캠프 시작 직전 이 감독은 베테랑과 식사 자리를 했다. 이때 선수단이 “감독님과 야구를 오래 하고 싶다. 감독님을 위해서 올해 꼭 좋은 성적 내겠다”고 입을 모았다. 이 감독은 손사래를 쳤다. 선수시절 고마운 감독을 위해 야구를 했던 경험이 있지만, 결국 선수 스스로를 최우선으로 놓아야 한다는 철학이었다. “너 자신을 위해서 야구를 해야 한다”는 말에 선수단은 또 한 번 울림을 느꼈다. 100승 직후, 고참 선수들은 소셜미디어(SNS) 단체 대화방에서 이 감독에게 축하를 전했다. 평소 자유로운 소통이 없다면 나올 수 없는 광경이다.
2018시즌까지만 해도, 지금은 팀을 떠난 KT 일부 선수들은 경기 전부터 “오늘도 지겠구나”라는 이야기를 덕아웃에서 하곤 했다. 멘탈 게임인 야구에서 칼 한 번 맞대기 전부터 패배를 예감하니 결과가 좋을 리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랑 붙어도 해볼 만하다”는 인식이 선수단 전체에 자리매김했다. 박경수는 “전날(11일) 경기도 그랬다. 실책 4개가 나오면 감독으로선 화가 날 법한데 오히려 먼저 분위기를 풀어주셨다”며 “그 자체가 선수단에게는 메시지가 된다. 그 덕에 경기를 뒤집을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이 감독과 KT가 함께 내딛은 100걸음은 수원KT위즈파크에서 패배의식을 지웠다. 앞으로 찍힐 발자국에는 또 어떤 이야기가 쓰일지 궁금하다.
수원|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