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베이스볼] 류중일 감독이 선택한 길과 감독이 떠나고 난 뒤의 모습

입력 2020-07-13 1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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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류중일 감독. 스포츠동아DB

류중일 LG 트윈스 감독(57)은 올 시즌을 끝으로 3년 계약이 만료된다. 구단은 재계약 조건을 이미 정했다. ‘팀이 한국시리즈에 진출하거나 포스트시즌에서 중도 탈락하더라도 납득할 만한 경기 내용과 다음 시즌 성공 가능성을 보여줄 경우 재계약한다’이다. 납득할 만한 경기 내용이라는 추상적 기준이 추후 문제를 야기할 순 있지만, 류 감독도 이를 모르지는 않는다. 서울을 대표하는 인기구단의 사령탑이라면 최소한 팀을 포스트시즌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기준이 명확한데, 이는 LG 감독의 숙명이다.

역대 KBO리그의 수많은 사령탑들 중 팀을 옮겨서도 우승한 사람은 김응용 감독(해태 타이거즈와 삼성 라이온즈)이 유일하다. 류 감독 역시 그 기록을 노리지만, 그러려면 우선 현장에 있어야 한다. 갈수록 세대교체가 빨라지는 요즘 한 번 야인으로 밀려나면 현장으로 돌아오기 어려운 것이 현실인데, 이런 상황에서 류 감독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다.

우선 자신의 앞가림을 위해 뭐라도 해야 한다. 한정된 선수 자원을 가지고 무리를 하더라도 최대한 승수를 쌓는 것이 최선의 대책이다. 어떻게든 페넌트레이스 1위만 차지하면 된다. 트레이드 마감시한에는 유망주를 내주더라도 지금 당장 필요한 선수를 끌어 모으는 방법도 있다. 구단이 반대하더라도 감독이 우기면 막을 방법은 많지 않다. 이런 사례는 너무 흔하기에 전혀 이상할 것도 없다.

또 다른 길이 있다. 욕심은 나지만 순리대로 움직이는 것이다. 재활을 마친 선수에게는 좀더 쉴 시간을 주고, 힘들어하는 선수는 2군으로 보내 몸과 마음을 재충전한 뒤 1군으로 복귀시키는 것이다. 오늘 못 이기면 내가 욕을 더 먹고, 이런저런 비난을 무시하는 길이다.

그러나 올바른 길일수록 지키기 어려운 것이 승패의 세계다. 우선 내가 살고 봐야 하기에 당장 눈앞에 승리가 보이면 영혼이라도 팔겠다는 감독은 많다. 반면 그 다음을 생각하는 감독은 드물다. 그래서 ‘리빌딩’은 감독이 아닌 구단의 몫이다.

지금 류 감독은 미래를 생각해 부상 선수와 어린 선수들에게 최대한 많은 휴식을 준다. 그 덕에 19세 이민호와 부상을 안고 사는 30세 정찬헌은 ‘10일 로테이션’이라는 특혜를 누리고 있다. 소방수 고우석도 당장 필요하지만, 1군에서 열흘간 충분히 준비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힘들어서 2군행을 자청한 차우찬도 차분히 마음을 치료하고 있다. 팀의 미래인 백승현, 구본혁, 김호은 등은 자주 1군 경험을 쌓고 있다.

차명석 단장이 이 고마움은 가장 잘 알 것이고, 그래서 더욱 지금 같은 선택의 결말이 궁금하다. 자칫 류 감독이 애써서 길을 닦아놓고 정작 혜택은 다음 감독이 누릴 수도 있다. 그래도 그는 기다리기로 했고, 귀한 선수는 아껴서 쓴다.

감독의 진정한 성과는 떠난 뒤 3년간 그 팀의 성적을 보면 안다. 어떤 감독이 떠나간 자리에는 풀 한 포기도 남지 않지만, 좋은 감독이 떠난 자리에는 큰 숲이 남는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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