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G 고우석. 스포츠동아DB
LG에 2019년 10월 6일이 새긴 흉터는 선명했다. 키움 히어로즈와 준플레이오프(준PO) 1차전, 경기 내내 시소게임이 이어져 0-0으로 맞선 채 9회말로 접어들었다. 류중일 LG 감독은 선발 타일러 윌슨(8이닝 무실점)을 내리고 클로저 고우석을 투입했다. 상대는 박병호. 고우석의 초구 직구는 한복판 높게 형성됐고, 국민거포의 배트는 날카롭게 돌았다. 맞는 순간 홈런임을 직감할 수 있는 타구, 끝내기 홈런이었다.
그에 앞서 신민재도 실수를 범했다. 7회초 선두타자로 나선 대타 박용택이 안타를 때렸다. 이날 LG의 첫 안타. 류 감독은 대주자 신민재를 투입했다. 하지만 신민재는 제이크 브리검의 날카로운 견제에 당했다. 후속타자들이 볼넷, 안타를 기록했기에 더욱 뼈아픈 견제사였다. LG는 결국 준PO에서 1승3패로 탈락했다.
고우석과 신민재는 가을 땅에 흘린 눈물 위에서 다시 싹을 틔웠다. 신민재는 올 시즌 68경기에서 8도루를 기록하며 스페셜리스트로 자리매김했다. 타석 기회는 적었지만 타율 0.308(26타수 8안타)로 쏠쏠했다. 고우석도 시즌 초반 무릎 부상으로 이탈했음에도 40경기에서 17세이브1홀드, 평균자책점 4.10으로 LG의 뒷문을 틀어막았다.

LG 신민재. 스포츠동아DB
2020년 11월 2일, 다시 가을이 찾아왔다. 무대는 준PO에서 와일드카드(WC) 결정 1차전으로 달라졌지만 상대는 같았다. 경기 흐름은 1년 전 그날과 비슷했다. 양 팀 선발투수들의 역투 속에 8회까지 2-2 균형이 이어졌다. 류 감독은 9회초 고우석을 등판시켰다. 삼진과 안타로 1사 1루, 타석에는 악몽 같던 박병호였다. 하지만 고우석은 묵직한 직구를 앞세워 박병호를 삼진으로 잡았다. 고우석은 1.2이닝 무실점으로 역투했다.
마침표는 신민재가 찍었다. 2-3으로 뒤진 13회말 2사 2·3루, 이천웅의 내야안타로 LG가 균형을 맞췄다. 키움 벤치는 홍창기를 자동 고의4구로 내보내고 신민재와 승부를 택했다. 합리적 판단이었다. 류 감독조차 양석환 대타 카드를 고민했지만, 밀어내기 볼넷을 기대하고 밀어붙였다. 볼카운트 2B-0S. 신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신민재는 과감히 배트를 돌렸고, 타구는 우익수 이정후 옆을 스쳤다.
상처에 새 살이 돋았다. 신민재가 흐름을 끊고 고우석이 경기를 끝냈던 게 불과 1년 전인데 올 가을, 고우석이 흐름을 잇고 신민재가 경기를 끝냈다. 이런 서사가 어디에 또 있을까. 극적인 성장스토리는 언제나 옳다.
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