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숙일 필요 없다, KT의 2020년은 충분히 찬란했다

입력 2020-11-14 08: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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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위즈 선수들. 사진제공|KT 위즈

팀 이름을 지우고 포스트시즌(PS) 경기 결과만 놓고 보면 분명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패한 팀이 ‘막내’ KT 위즈임을 감안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누구도 예상 못한 포스트시즌(PS) 진출의 성과를 냈고, 값진 가을 첫 승도 신고했다. KT의 2020년은 충분히 찬란했다.

KT는 13일 고척 두산 베어스와 플레이오프(PO·5전3승제) 4차전에서 0-2로 패하며 시리즈 전적 1승3패로 무릎을 꿇었다. 4경기 KT의 팀 타율은 0.233. OPS(출루율+장타율)는 0.603에 그쳤다. 이날도 잘 맞은 타구가 정면으로 가는 등 ‘바빕신’의 외면을 받았다. 하지만 4차전 패배 후 적장 김태형 감독이 인정했듯, 4경기 내내 두산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정규시즌 2위로 PO에 직행했지만 뼈아픈 업셋을 당했다. 하지만 ‘업셋’보다는 ‘정규시즌 2위’에 초점을 맞춘다면 KT의 2020년을 실패로 규정할 수 없다. KT는 2018년까지 10~10~10~9위에 그쳤다. 하지만 이강철 감독이 부임한 지난해 창단 첫 5할 승률의 성과를 냈고, 올해 2위까지 치고 올라왔다. 만년 꼴찌의 패배의식은 완전히 걷어졌다.

PS 엔트리 30명 중 20명이 첫 가을을 맞이했다. ‘부주장’ 박경수마저 가을야구가 처음이었다. 패기로 도전하겠다고 했지만 ‘가을 타짜’ 두산이 가진 경험치와 차이는 분명했다. 물론 PS에 진출했으니 그 다음부터는 계급장을 떼고 가을의 진검 승부를 펼쳐야 한다. KT 역시 그렇게 패기로 임했다. 하지만 가진 전력과 경험의 열세를 딛기엔 역부족이었다.

KT 이강철 감독과 선수들. 스포츠동아DB



바꿔 말하면 이들은 내년 ‘경험자’의 위치에서 가을을 맞이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이강철 감독도 4차전 패배 후 이들이 얻은 값진 경험에 박수를 보냈다.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긴 했지만 돈 주고도 못 살 경험치는 KT의 2021년 이후 든든한 자산이 될 것이다.

KBO리그는 강팀이 줄곧 성적을 내고, 약팀은 대부분 처지는 경향이 뚜렷하다. KT의 2020년은 이러한 흐름에 큼지막한 바위 하나를 던졌다. 이 감독이 강조했듯 모두가 ‘원 팀’으로 똘똘 뭉쳐 만들어낸 결과다. 타자 멜 로하스 주니어와 투수 소형준이 중심을 잡긴 했지만, 누구 하나 빠지는 이 없이 제 역할을 해냈다. ‘팀 KT 위즈’라는 말은 포장이 아니었다.

이 감독은 경기 후 아쉬웠던 장면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모든 것은 내 잘못”이라고 선을 그은 뒤 “감독으로서 아쉬운 장면은 냉정히 복기해야겠지만, 오늘만큼은 선수들을 질책하고 싶지 않다”고 강조했다. 팀 KT 위즈의 질주 자체에 박수를 보냈다.

4차전 패배 후 KT 선수단은 덕아웃을 빠져나가며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아쉬움과 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는 이도 있었다. 패배가 주는 아픔과 상처는 당연하다. 하지만 고개를 숙일 이유도, 필요도 없다. KT의 올 시즌은 충분히 찬란했다. 이날의 아픔과 분함을 온 몸에 새긴 뒤 2021년 이후 그라운드에서 증명해내면 이날의 패배는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고척|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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