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익래의 피에스타] 81번의 가을에 숨은 조연…김재호, 이제 가장 빛나는 주연

입력 2020-11-23 12: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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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2020 신한은행 SOL KBO리그’ 한국시리즈 4차전 두산 베어스와 NC 다이노스의 경기가 열렸다. 7회말 1사 두산 김재호가 우전 안타를 쳐낸 뒤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고척|주현희 기자 teth1147@donga.com

2008년 두산 베어스-삼성 라이온즈의 플레이오프(PO). 정규시즌 112경기에서 타율 0.249(261타수 65안타), 1홈런, 21타점에 그치며 아직은 백업 티를 벗지 못했던 유격수가 가을 데뷔전을 치렀다. 그렇게 시작된 발걸음은 올해 NC 다이노스와 한국시리즈(KS·7전4승제) 4차전까지 통산 포스트시즌(PS) 77경기 출장으로 이어졌다. 조연이 익숙했고, 또 그 역할만을 자처해왔지만 그렇게 켜켜이 쌓인 커리어는 김재호(35·두산)를 눈부신 주연으로 만들었다.

김재호는 올해 KS 4경기에서 타율 0.583(12타수 7안타), 1홈런, 6타점의 맹타를 휘두르고 있다. 언제나 수비를 최우선 가치로 두고 이에만 집중했던 그는 18일 2차전에서 데뷔 첫 KS 홈런을 때려내기도 했다. KS 37경기 만에 아치를 그리며 최다경기 출장 첫 홈런 신기록을 썼다.

“흐름을 바꾸는 한 방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다른 친구들이 그동안 해줬던 역할을 한 번 욕심내봤다.” 2차전 후 김재호의 말처럼 사실 두산의 가을 주역은 언제나 다른 이들이 도맡았다. 가을 냄새만 맡으면 변하는 정수빈, 오재원, 오재일, 양의지(현 NC)는 물론 마운드에서도 더스틴 니퍼트, 조쉬 린드블럼, 유희관 등이 시리즈를 빛냈다. 김재호는 늘 이들 뒤에서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 공격보다는 수비에서 건실함을 드러냈지만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다.

김재호는 욕심을 냈고, 홈런을 쳤다. 바꿔 말하면 욕심을 내면 타석에서도 해결사 역할에 도전할 수 있는 선수라는 의미다.

이처럼 올 가을은 다르다. 김재호는 해결사로 나서고 있다. 물론 모든 타자들이 미쳐있는 가운데 김재호가 펄펄 나는 게 최상의 그림이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두산의 KS 팀 타율은 0.228에 불과한데 김재호 홀로 고감도 타격감을 뽐내고 있다. 특히 21일 4차전에선 팀이 때려낸 3안타 모두가 김재호의 방망이에서 나왔다. 그의 기록을 제외하면 팀 타율은 0.191까지 떨어진다. 2·3차전에서 잇달아 데일리 MVP를 수상한 그는 “이제 할 만큼 한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떤 뒤 “팀이 마지막에 웃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두산 타자들이 김재호의 분투에 응답할 차례다.

KS 최다출장 첫 홈런 신기록. 경기 후 이를 전해들은 당사자는 머쓱함을 감추지 못했지만 KS에 37경기나 나선 이만 누릴 수 있는 훈장이기도 했다. 김재호가 묵묵히 쌓아올린 기록은 너무도 화려히 빛나고 있다. 그렇게 김재호는 어엿한 가을의 주연이 됐다.

고척|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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