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발리볼] 신뢰와 존중으로 만든 KB손해보험 이상열 감독의 이심전심 배구

입력 2020-12-16 1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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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손해보험 이상열 감독. 스포츠동아DB

외국인선수 케이타를 앞세워 2020~2021시즌 초반 V리그 남자부 선두를 달렸던 KB손해보험은 3라운드 들어 주춤거렸다. 이상열 감독은 8일 우리카드에 패한 뒤 “감독이 한계에 왔다. 이제 변화를 줘야 할 때”라고 말했다. 쉽게 듣기 힘든 ‘감독의 한계’란 표현의 속내가 궁금했다. 그는 “그동안 우리 선수들이 힘들게 잘해왔는데 더 이상 동기부여를 해줄 방법이 없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봄배구’는커녕 승리보다 패배가 더 익숙했던 선수들에게 용기를 북돋아가며 좋은 기세를 이어왔지만 최근 선수들이 위축되는 상황을 이 감독은 내심 걱정했다.

12일 대한항공전에서 그 걱정은 현실이 됐다. 시즌 첫 연패에 빠졌다. 이 감독은 “우리가 못한 것이 아니고 상대가 더 잘했다. 이제 선수들의 동기부여를 위해 얼음물에 들어가는 방법밖에는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저 선수들의 사기를 올려주기 위한 립 서비스처럼 들렸지만 아니었다. 다음날 새벽 그는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강원도 인제로 향했다. 이 감독은 눈 쌓인 내린천 진동계곡의 얼음물에 뛰어들어 언행일치를 보여줬다. 누구에게도 얘기하지 않은 채 동영상만 선수단 단체 대화방에 올렸다.

휴일을 맞아 쉬던 선수들은 놀랐다. “그동안 잘해줘서 고맙다. 지금 힘들지만 기죽지 말고 앞으로 더 함께 열심히 해보자”는 이 감독의 진심을 알아차린 선수들도 반응했다. 황택의, 김재휘, 김지승, 김도훈은 즉시 안양 삼막사 인근 계곡으로 향했다. 공교롭게도 13일은 한파가 전국적으로 몰아친 날이었다. 황택의는 “이 차가운 물에 감독님이 어떻게 들어가셨지. KB손해보험 파이팅”이라고 외치고 입수했다. 다른 3명의 선수도 “우승하자. 동료들아, 사랑한다”며 얼음물에 몸을 담갔다. 그야말로 이심전심(以心傳心)이었다. 그들의 화답 영상을 본 이 감독은 선수들을 불러 함께 저녁을 먹었다.

과학적 시선으로 보자면 선수의 기량향상과 얼음물 입수는 전혀 관련이 없다. 그러나 이 감독은 이번 이벤트로 기량보다 더 중요한 선수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자신이 했던 말은 꼭 행동으로 보여주며 신뢰를 쌓아왔던 이 감독이다. “훈련보다는 컨디션 조절이 우선”이라고 했던 말은 충분한 휴식일 보장으로 이어졌다. 비시즌부터 함께 고생한 선수들을 걱정해 트레이드도 포기했다. 트레이드 결정 직전 이 감독은 “고생했던 선수들과 함께 하겠다”며 물러섰다. 구단에서 “좋은 기회인데 다시 생각하시라”고 만류했지만 그는 당장 팀에 필요한 부분을 채우는 영입보다 같이 땀을 흘려온 선수들의 마음을 얻고자 했다.

베테랑 리베로 곽동혁과 레프트 김동민을 교체할 때도 “언젠가는 기회가 있다”며 아픈 마음부터 먼저 헤아렸다. 그는 평소 “선수는 어린애가 아니다. 감독은 선수를 존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고 말해왔다. 선수의 마음을 먼저 챙기는 이 감독의 진심은 외국인선수 케이타에게도 잘 전달됐다. 코트에선 물론 코트 밖에서도 자신이 하고픈 대로 방목하듯 자유를 주면서 응원하고 믿어준 감독을 향한 신뢰는 높다. 평소 툭툭 내던지는 듯하지만 이 감독은 많은 것이 담긴 말을 한다. 그래서 농담처럼 들리고 친절한 설명도 없지만, 곱씹어보면 속 깊은 말이었음을 나중에 알게 된다. 세상에는 많은 배구가 있지만, 감독과 선수가 마음으로 대화하는 이심전심의 배구만큼 끈끈해지기는 어렵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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