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 피플] 수상 못해도 박수치고 멀미도 견디고…롯데 손아섭의 겨울 품격

입력 2020-12-24 0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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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KBO 골든글러브 시상식은 수상자들의 전유물이 됐다. 하지만 손아섭은 수상 여부가 불투명함에도 11일 열린 시상식을 빛냈다. 손아섭은 “골든글러브는 받아도, 안 받아도 야구계의 가장 큰 축제”라며 프로선수로서의 책임감을 강조했다. 레드카펫에서 기념촬영 중인 손아섭. 사진제공 | KBO

한 시즌을 바쁘게 보낸 야구선수들에게 12월과 1월은 황금 같은 시간이다. 물론 다음 시즌을 준비하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지만 그 사이 밀린 휴식과 개인 스케줄을 소화하기에도 빠듯하다.

속절없는 시간은 손아섭(32·롯데 자이언츠)에게도 공평하다. 하지만 손아섭은 올 겨울을 유독 특별하게 보냈다. 골든글러브 수상이 불발됐음에도 시상식장에 찾아 수상한 동료들에게 박수를 보냈고,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야구선수가 아닌 ‘인간 손아섭’의 모습을 보이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야구선수가 아닌 프로야구선수로서 품격을 드러낸 시간이었다.

“황금장갑? 받아도 안 받아도 축제죠”

11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20 KBO 골든글러브 시상식.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위해 후보자를 제외한 구단 관계자조차 행사장에 발을 들이지 못했다. 여느 때보다 한산했던 시상식장. 비단 코로나19 때문은 아니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골든글러브 시상식은 KBO의 축제였다. 수상자는 물론 차점자 및 후보자들이 왁자지껄하게 행사를 빛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수상이 불투명한 이들은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시상식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지난해에도 후보 102명 중 수상자 7명만 참석했다.

올해도 비슷했다. 수상 여부를 사전에 알 수 없기에 유력 후보는 참석하는 게 맞지만 현실은 달랐다. 황금장갑 시상식 참여자 중 수상이 불발된 건 손아섭과 허경민(30·두산 베어스)뿐이다. 손아섭은 외야수 부문 4위로 아쉽게 수상에 실패했지만 누구보다 밝은 얼굴이었다.

“물론 수상을 어느 정도 기대를 했기 때문에 참석을 한 건 맞다. 받게 되면 수상 자체가 좋고, 못 받아도 동료들을 축하할 수 있어서 좋은 것이다. 시상식 참여를 위해 서울에 올라왔다. 나 역시 골든글러브를 받을 때 다른 동료들의 진심어린 축하를 받았다. 못 받아도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에 원 없이 박수를 치고 왔다.” 23일 연락이 닿은 손아섭의 이야기다.

아까운 차점자라는 얘기는 곧 손아섭의 올 시즌이 찬란했다는 의미다. 141경기에서 타율 0.352, 11홈런, 85타점, OPS(출루율+장타율) 0.908을 기록하며 지난해 부진을 완벽히 씻었다. 손아섭은 “팀이 가을야구에 못 올랐으니 실패한 시즌이다. 개인적으로도 매년 최우선 목표인 전경기 출장에 실패했다”고 자책했다. 그러면서도 “다만 2018년부터 갈팡질팡했던 ‘손아섭의 야구’를 다시 정립했다는 수확도 있다. 단점을 보완하기보단 장점에 초점을 맞췄고 장타 대신 콘택트에 집중했다. 내가 가야할 길은 이쪽인 것 같다”고 스스로를 칭찬했다.

롯데 손아섭이 최근 방영된 채널A ‘도시어부‘에 출연한 모습. 손아섭은 “팬들을 위해서라면 야구장 밖에서의 편한 모습도 얼마든지 보여드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제공 | 채널A

“뱃멀미 고통? 팬들을 위해서라면…”

손아섭은 최근 채널A의 간판 예능프로그램 ‘도시어부’에 출연해 인간적인 모습을 보였다. 부산 사나이를 자부하며 낚시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지만 뱃멀미로 고생하는 모습만 전파를 탔다. 야구팬들은 물론 프로그램 애청자들도 유쾌하게 지켜본 장면. 그라운드에서 누구보다 투지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는 손아섭에게는 다소 부담스러울 수도 있었다.

“프로야구 선수라면 첫째도, 둘째도 야구를 잘해야 한다. 그게 최우선이다. 하지만 팬들에게 상품성도 인정받아야 진짜 스타라고 생각한다. 운동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비시즌에 가끔 색다른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팬 입장에선 매일 저녁을 책임지던 야구가 없는 무료함을 달랠 수 있지 않을까. 야구에 관심이 없던 분들도 프로그램을 보면서 잠깐의 관심이라도 가진다면 성공이다. 이를 위해선 멀미로 고통 받는 모습도 얼마든지 보여드릴 수 있다.”

낚싯배 위에선 어지러움에 괴로워하지만 그라운드 위에선 다르다. 두 번째 프리에이전트(FA) 자격을 앞둔 올 시즌이지만 특별히 다른 각오는 없다. 손아섭은 “첫 FA 때도 그랬지만 실감이 안 난다. 그저 전 경기에 출장해 팀의 가을야구를 이끄는 게 목표”라고 운을 뗐다. 이어 “2008년부터 2012년까지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을 땐 선배들을 따라가는 입장이었다. 이젠 후배들의 올바른 방향 설정에 도움이 되어야 하는 위치다”라며 “가을야구에 대한 간절함과 그리움이 크다. 팬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년엔 그 그리움을 함께 달래겠다”고 다짐했다.

단지 야구를 잘한다고 스타로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손아섭이 롯데 팬은 물론 많은 야구팬들의 인정을 받는 이유는 비단 그라운드 안에서의 기량과 투지 때문만은 아니다. 올 겨울 보여준 프로페셔널에 모두가 엄지를 세우는 이유다.

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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