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쇼미9’ 우승 래퍼 릴보이 “센 비트·빠른 랩만 힙합? 편견 깨고 싶었죠”

입력 2020-12-24 0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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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퍼 릴보이에게 힙합이란 “나 자신을 솔직하게 내보이는 것”이다. 평범하지만, 진심 어린 가사로 힙합 실력자들이 모인 엠넷 경연프로그램 ‘쇼미더머니9’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사진제공|하프타임레코즈

엠넷 힙합 경연 ‘쇼미더머니9’ 우승한 래퍼 릴보이

‘쇼미4’ 끝나고 내 음악에 애증…5년간 방황
60대 시청자도 응원…‘잘 가고 있구나’ 확신
“달라진 점이요? 집에 있는 1억원 상금 피켓 빼곤 없어요.”

엠넷 힙합 경연프로그램 ‘쇼미더머니9’에서 우승을 차지한 지 4일째. 래퍼 릴보이(오승택·29)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18일 마지막 생방송이 끝나고 무엇을 했느냐는 물음에 “친한 친구 둘이 잠시 집으로 찾아와 ‘상금 피켓’을 구경하고 간 게 전부”라며 웃었다.

22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작은 작업실에서 만난 그는 ‘반전’의 매력으로 충만했다.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부터 그랬다. ‘힙합’하면 떠오르는, 다소 거친 매력과 카리스마와는 달랐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라면 이 또한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 두 달간 숨 막히는 경연에 참여한 이유도 그런 “편견을 깨기 위해서”였다.

“센 비트, 빠른 랩만이 힙합의 전부가 아니거든요. 제 음악처럼 일상적인 노래도 힙합이라는 걸 꼭 보여주고 싶었어요.”

“‘쇼미9’ 우승으로 마음의 변화”
2011년 스무 살이 되자마자 루이와 힙합듀오 긱스를 결성해 ‘오피셜리 미싱 유’(Officially Missing You)를 내놨다. 곧바로 차트를 점령했다. 감성적인 멜로디와 가사가 대중의 귀를 사로잡았다. 이후로도 일상에서 발견한 생각과 감정을 비트에 실었다.

2015년 ‘쇼미더머니4’에 출연해 눈에 띄게 활약했다. 인기가 높아졌지만 일각에선 “그건 힙합이 아니다”며 선을 그었다. 동시에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이 찾아와 힘겨운 나날을 보냈다.

래퍼 릴보이. 사진제공|하프타임레코즈



“한때 음악에 ‘애(愛)’ 밖에 없는 사람이었어요. 열아홉 살 무렵 누나가 듣던 그룹 에픽하이의 카세트테이프를 듣고 반해 가사를 쓰기 시작할 정도로 힙합이 마냥 좋았어요. 그랬는데 ‘증(憎)’이 붙더라고요. 음악이 의무감처럼 다가왔어요. ‘쇼미더머니4’ 끝나고는 나를 이용하려는 사람들만 있는 것 같아 환멸에 빠지기도 했죠. 나를 깎아 먹는 기분이었어요.”

그 “어둡고 긴 5년의 터널”에서 벗어나게 해준 무대가 ‘쇼미더머니9’이다. 표현하고 싶은 음악을 구현하는 데 순수한 기쁨과 감사를 느끼는 주변 동료들을 보면서 “감화”됐다.

“모두가 계산적으로 음악을 한다는 부정적인 생각이 가득해서 ‘나도 때가 묻어야 할 시점이 왔다’는 우습지도 않은 각오를 했어요. 하하하! 자이언티·기리보이 프로듀서의 ‘자기 팀’에 들어가 원슈타인, 스카이민혁 같은 친구들을 보면서 싹 바뀌었죠. 데뷔 초 음악을 재미있어하던 마음을 다시 찾았어요. 그게 경연 우승의 가장 큰 성과라 자부해요.”

래퍼 릴보이. 사진제공|하프타임레코즈



“60대 시청자도 ‘힙합이 좋구나’…보람돼”
매분, 매초가 위기였던 경연을 돌이키며 “그래도 목표는 이룬 것 같다”고 말했다. “솔직한 것이 힙합”이란 신념을 잘 드러냈고, 이에 따라붙는 대중적 공감대도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쇼미더머니’로 힙합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일상적이고 담백한 노래도 힙합의 일종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요. 그게 제 역할이라 믿었고요. 힙합은 내 자신을 솔직하게 말하는 거예요. 고등학생 시절 평범한 학교생활을 가사로 썼던 것처럼.”

최근 한 60대 시청자가 ‘무대를 보고 힙합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며 보내온 메시지가 가슴에 남았다. “잘 가고 있구나”라는 확신이 비로소 쌓이고 있다.

“정말로 평범한 제 이야기를 노래하기에, 사람들도 ‘사는 거 다 똑같네’라고 공감하는 것 아닐까요? 앞으로도 그저 재미있게 음악 하려고요. 제가 즐겨야 듣는 사람도 똑같이 즐겁다는 걸 이제 알았거든요.”

유지혜 기자 yjh030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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