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리포트] 150㎞도 맞던 투수가 최고의 피치 디자이너와 만나면…KT 필승조 추가

입력 2021-07-06 11: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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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박시영. 스포츠동아DB

최고구속 150㎞에 달하는 속구에 각도 큰 포크볼, 타자들이 공략하기 어려운 조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타를 뻥뻥 맞았다. ‘적장’ 입장에선 연이은 득점이 기분 좋으면서도 한 명의 야구인으로서 ‘왜 맞을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박시영(32·KT 위즈)의 반전은 KBO리그 최고의 피치 디자이너로 꼽히는 이강철 감독을 만나며 시작됐다.

박시영은 4일 수원 키움 히어로즈전에 구원등판해 4타자 상대로 4삼진 1.1이닝 퍼펙트 무실점 완벽투를 펼쳤다. 주목할 점은 구종. 21구를 던졌는데 모든 공이 슬라이더였다. 보여주는 용도의 속구 한 개조차 없었다. 이튿날인 5일 만난 이강철 감독은 박시영 얘기가 나오자 너털웃음을 지으며 “벤치의 사인은 아니었다. 오히려 포수였던 (장)성우가 속구 사인을 내도 (박)시영이가 고개를 저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2~3이닝 던진 게 아니다. 한 팀과 계속 만나는 것도 아니다. 가장 좋은 공을 짧게 보여주기엔 오히려 효과적인 투구였다”고 칭찬했다.

박시영은 올 시즌에 앞서 트레이드로 KT 유니폼을 입었다. 롯데 자이언츠 시절부터 빠른 공을 앞세워 주목을 받았으나 언제나 알을 깨지 못했다. 지난해 36경기서 1승1패1홀드, 평균자책점(ERA) 8.01을 기록하며 자리가 없었다. 이강철 감독도 롯데 시절 박시영을 보며 “속구와 포크볼이 저렇게 좋은데 왜 맞을까라고 생각한 적이 몇 번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 감독이 상대팀에서 지켜본 박시영은 타자와 승부 초반에 속구로 카운트를 잡는 경향이 강했다. 스트라이크가 필요할 때 꺼내드는 카드 역시 대부분 속구. 자연히 타자들은 속구에 타이밍을 맞추고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 감독도 박시영이 KT에 합류한 뒤 투구 패턴을 지켜보고 대화를 나누며 이를 파악했다.

올 시즌 박시영의 투구 구사율을 살펴보면 포심 40.2%, 슬라이더 43.4%에 달한다. 지난해 포심 38.4%, 슬라이더 19.5%, 포크볼 32.3%에서 선택과 집중을 확실히 한 것. 쉽게 말해 ‘좋은 공을 갖고 불리하게 몰리던’ 박시영에게 기술적 변화는 없었다. 자신의 강점을 살릴 수 있는 투구 패턴과 구사율의 변화. 즉 피치 디자인이 지금의 박시영을 만든 것이다. 이 감독은 “이제 내가 속구를 던지라고 해도 안 던진다”며 웃었다. 이 감독은 투수코치 시절부터 KT 지휘봉을 잡은 후까지 피치 디자인으로 여러 투수들의 성공사례를 만들어왔다.

14경기서 1승3홀드, ERA 1.15. 새로운 디자인을 거친 박시영은 필승조 자원으로 성장했고, KT 불펜은 양과 질 모두 한 층 더 두꺼워졌다. 무리한 기술적 교정 없이 패턴의 변화만으로도 선수는 충분히 달라진다. 박시영은 또 하나의 증거다.

수원 | 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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