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실감나지 않는 16년의 선물…롯데 정훈 자신감 담긴 ‘0.939’ [SD 인터뷰]

입력 2021-11-29 1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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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육성선수 입단 후 1년 만에 방출. 그렇게 현역으로 입대한 뒤 초등학교 야구팀 코치로 부임했다. 흔한 방출선수 사례로 남을 듯했다. 하지만 다시 프로팀에 입단해 어떻게든 버텨냈다. 첫 입단을 기준으로 16년의 버티기. 생애 첫 프리에이전트(FA) 자격은 정훈(34·롯데 자이언츠)에게는 훈장이자 선물이다.

“에이징 커브? 속구 상대 자신 있다”
정훈은 2021시즌 135경기에서 타율 0.292, 14홈런, 79타점, OPS(출루율+장타율) 0.818을 기록하며 커리어하이를 찍었다. 데뷔 후 가장 많은 홈런과 타점을 신고했고, 1루와 외야를 오가며 수비에서도 팀에 보탬이 됐다. 시즌 후 FA 자격을 얻었고, 23일 신청서를 냈다.

올해 연봉이 1억 원이었기 때문에 FA 등급제 기준 C등급. 타 팀에서 그를 영입하려면 롯데에 보상선수 없이 보상금 1억5000만 원만 지불하면 된다. 알짜배기로서 운신의 폭이 넓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복수의 구단이 정훈에게 군침을 흘리는 것으로 전해진다.

주가가 오른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지만, 정훈의 생각은 달랐다. 최근 연락이 닿은 그는 2010년부터 뛰어온 롯데에 남는 것이 최선의 결과라는 진심을 털어놨다. 정훈은 “각별한 의미가 있는 팀이다. 방출선수 신분이던 내게 다시 야구의 기회를 준 팀이다. 여기서 야구인생을 다시 시작한 것이니 너무 감사하고 고마운 팀”이라고 입을 뗐다. 이어 팬들에게도 “잘할 땐 잘한다고 많은 응원을, 못할 땐 못한다고 많은 관심을 받았다. 잊지 못할 분들 아니겠나. 어릴 때부터 그 사랑과 격려가 익숙한 건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감정에만 호소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처음으로 두 자릿수 홈런을 넘긴 그는 올해 더 많은 장타에 욕심을 냈고, 실제로 결과로 만들어냈다. 정훈은 올 시즌의 커리어하이를 유지할 자신이 있다. ‘에이징 커브’ 이론에도 “여전히 속구 상대로 자신이 있다. 에이징 커브라는 것도 결국 반응속도가 떨어지는 것 아닌가. 속구는 누구보다 자신 있다. 수비 역시 한 포지션에서 최상은 아니어도 곳곳에서 중간 이상은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정훈은 올해 패스트볼 계통의 구종을 상대로 OPS(출루율+장타율) 0.939를 기록했다. KBO 공식통계업체 스포츠투아이에 따르면 143㎞ 이상 상대 타율은 0.304(리그 14위), 속구 계통 전체 상대 타율은 0.320(리그 17위)으로 준수했다. 반응속도가 결코 떨어지지 않았다는 증거다.


“걱정하지 마라!”는 선배, ‘걱정 안 하는데…’
정훈의 FA 신청은 스스로는 물론 후배들에게도 적잖은 울림을 안겨줬다. 그는 평소 롯데 젊은 피들이 가장 편하게 이것저것 물어보는 선배다. 친근한 성격 영향도 있지만, 바닥에서 손꼽히는 주전타자로 성장했으니 처음부터 스타였던 이들은 전하지 못할 경험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데뷔 첫해부터 주전으로 뛰어 9년을 채운 뒤 FA를 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실제로 그런 선수들이 더 좋은 대우를 받지 않나. 하지만 반대로 나 같은 선수도 어떻게든 버티고 마지막 끈을 놓지 않는다면, 금액을 떠나 FA라는 권리를 얻는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모두가 (이)대호 형, (이)정후, (강)백호가 아니다.


사실 비율로는 나 같이 바닥에 머무는 후배가 더 많다. 우리 팀에 슈퍼스타가 워낙 많으니 조금 더 편한 나한테 더 자주 물어오는데, 언제나 그런 걸 생각하고 버티라는 얘기를 자주 해준다.”
적잖은 롯데 팬들은 정훈의 잔류를 희망하고 있다. 누구보다 롯데를 사랑하는 이대호도 마찬가지. 현재 괌에 있는 이대호와 정훈은 종종 통화를 하는데, ‘빅 보이’는 정훈에게 “걱정하지 말고 기다려라”고 한다고. 정작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고 있는 정훈은 “난 괜찮은데 주위에서 이렇게들 말한다”며 웃었다.

훈장이자 선물을 받은 정훈의 행선지는 어디일까. 현 시점에선 알 수 없지만, 정훈은 어디서든 소금 같은 역할을 해낼 준비가 되어있다.

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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