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한사람만’ 덕에 웃지만 ‘설강화’ 해결 못하면 끝 [홍세영의 어쩌다]

입력 2021-12-21 12: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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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작품은 호평 일색인데 반해, 막대한 제작비를 쏟아부은 작품은 방송 2회 만에 폐지 위기다. ‘드라마 왕국’을 꿈꿨던 JTBC는 10주년 기쁨보다 깊은 시름으로 2021년을 떠나보낸다.

20일 첫 방송된 JTBC 월화드라마 ‘한 사람만’(극본 문정민 연출 오현종)은 호스피스에서 만난 세 여자가 죽기 전에 나쁜 놈 ‘한 사람’만 데려가겠다고 덤볐다가 삶의 진짜 소중한 ‘한 사람’을 마주하게 되는 휴먼 멜로다. 첫 회부터 시한부와 아동학대, 청부살인 등이 자극적인 소재와 이야깃거리가 난무하지만, 그 안에는 죽음을 앞둔 세 여자가 보여줄 삶에 대한 인정한 의미를 담았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의미 있게 죽고 싶다는 이들에게는 대리만족을, 또 죽음을 단순히 죽음으로만 바라보지 않는 시선에서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배우들 열연에도 호평이 쏟아졌다. 전작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리즈에서 통통 튀는 추민하 캐릭터도 신스틸러라 불렸던 안은진은 시한부 세신사 표인숙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그려내면서 이전과 다른 매력을 선사했다. 전작 캐릭터가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고된 삶에 찌든 한 여성이 죽을 시점을 알게 되면서 겪는 세상과 이별 방식을 담담하게 연기했다는 평가다. 혈액암 판정으로 삶에 균형을 잃은 강세연 캐릭터를 연기한 강예원도 마찬가지다. 이전의 이미지를 벗고 죽음에 맞서는 한 여성이 보여줄 여러 감정을 복합적으로 그린다. 세 여자가 살인을 계획하는데 앞장서는 인물도 강예원이 연기하는 강세연이다. 철딱서니 없지만, 죽음을 가장 밝고 유쾌하게 보여주는 성미도 캐릭터를 연기하는 박수영(레드벨벳 조이)도 비교적 인물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잘 표현하고 있다. 죽음을 대하는 방식이 사람마다 다를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시청률 2.442%. ‘한 사람만’은 첫 회 시청률에서도 웃었다. 전작 ‘IDOL [아이돌 : The Coup]’이 0.583%(12회)를 끝으로 마무리된 것과 비교하면 다시 정상 궤도로 올라온 셈. (닐슨 코리아, 전국기준) 작품 전개 상황에 따라 충분히 5%대 이상을 노려볼 수 있다.

반면 ‘한 사람만’보다 앞서 공개된 JTBC 토일드라마 ‘설강화 : snowdrop’(극본 유현미 연출 조현탁, 약칭 ‘설강화’)는 사면초가다. 방송 2회 만에 폐지를 요구하는 국민청원 동의 수가 30만 명을 돌파했다. 제작지원에 나선 기업체 등도 ‘손절’(손해를 보더라도 정리한다는 의미) 행보다. 제작이 한창일 당시 이미 몇몇 업체가 제작지원 중단 및 철회 의사를 밝혔다. 1, 2회 방송 이후에는 제작지원 중단 및 철회 업체가 늘어나는 추세다. ‘설강화’ OTT 편성권을 매입한 디즈니+도 회원 수 급감으로 이어질까 사태 추이를 지켜보는 모양새다.

덕분에 JTBC 고민은 깊어진다. ‘설강화’ 보이콧 운동이 ‘JTBC 보이콧’ 운동으로 번질 수 있음을 예의주시한다. 그렇다고 당장 ‘설강화’를 폐지할 생각도 없다. 막대한 제작비에 손해배상 문제도 걸려 있다는 점에서 JTBC는 어떤 문제든 쉽게 결정할 수 없다. 극 전개에 따른 반전도 노린다. 후반에는 모두가 우려하는 상황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 하지만 이미 불신은 깊어졌다.

애초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을 때까지 악수(惡手)를 택한 것은 JTBC와 제작진이다. 제작 과정에서 나온 두 차례 해명 입장문은 ‘어디 해볼 테면 해보라’는 식이지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노력하겠다는 게 아니었다. 문제 제기가 문제라는 식이다. 설득도 진정한 해명도 없었다. 제작발표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연출자 조현탁 감독 발언은 논란을 키웠다. 이번 문제 제기가 창작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식이다. 그렇다면 창작의 자유가 왜곡이나 미화해도 된다는 합법적인 근거는 어디에 있나. 그에 따른 책임 의식은 어디에 있었나를 다시 물을 수밖에 없다. 논란을 진정시키고 설득과 이해의 과정을 만들어가기보다 일단 덮고 보자는 식이다.

처음부터 방식이 잘못됐다고 지적해도 요지부동인 JTBC와 제작진. 21일 내놓은 입장문도 ‘일단 보면 안다’고 앵무새처럼 말한다. JTBC는 “‘설강화’ 방송 공개 이후, 사실과 다른 내용을 바탕으로 논란이 식지 않고 있어 입장을 전한다. 우선, ‘설강화’ 극 중 배경과 주요 사건의 모티브는 군부정권 시절의 대선 정국이다. 이 배경에서 기득권 세력이 권력 유지를 위해 북한정권과 야합한다는 가상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설강화’는 권력자들에게 이용당하고 희생당했던 이들의 개인적인 서사를 보여주는 창작물”이라고 했다.

이어 “‘설강화’에는 민주화 운동을 주도하는 간첩이 존재하지 않는다. 남녀주인공이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거나 이끄는 설정은 지난 1, 2회에도 등장하지 않았고 이후 대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 많은 분이 지적해 준 ‘역사 왜곡’과 ‘민주화 운동 폄훼’ 우려는 향후 드라마 전개 과정에서 오해의 대부분이 해소될 것이다. 부당한 권력에 의해 개인의 자유와 행복이 억압받는 비정상적인 시대가 되풀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제작진 의도가 담겨 있다”고 전했다.

JTBC는 “회차별 방송에 앞서 많은 줄거리를 밝힐 수 없는 것에 아쉬움이 남지만, 앞으로의 전개를 지켜봐주시길 부탁한다. 또한, 콘텐츠에 대한 소중한 의견을 듣기 위해 포털사이트 실시간 대화창과 공식 시청자 게시판을 열어 다양한 목소리를 청취할 계획이다. 핵심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는 콘텐츠 창작의 자유와 제작 독립성이다. JTBC는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도 좋은 작품을 보여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이야기했다.

궁금하다. 한 번이라도 제작을 앞두고 민주화 단체 등을 찾아 작품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구했는지 묻고 싶다. 했다면 그 증거가 있을 터다. 없다면 제작 과정에서 의견 수렴에 대한 노력도 하지 않고서 창작의 자유를 운운한 꼴이다. 그래 놓고 작품을 보면 안다고 이야기한다. 왜 시청자가 작품을 보고 오해를 거두는 수고스러운 작업을 진행해야 하는가. 이미 방송 2회 만으로도 우려 섞인 장면이 나와 논란이 된 상태에서 말이다.

‘드라마 맛집’에서 ‘드라마 아집’으로 수식어를 고쳐 달 상황에 처한 JTBC다. ‘한 사람만’이 방송 1회 만에 선전하고 있으나, ‘설강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깊은 수렁에 빠질 게 자명하다. OTT 시장 성장 후 이미 채널 영향력을 크게 잃은 방송사가 시청자 신뢰까지 잃는다면 위기다. 잘 나가던 유튜브 콘텐츠도 구독 취소로 이어질 것이 뻔하다. 생존 구실이 없어진다. 다수가 반대하는 것에는 이유가 존재한다. 그들을 설득하는 것도 JTBC와 제작진 몫이다. 설득하지도 못하면서 ‘소수 의견도 소중해’라는 방식은 분란만 야기한다. 일을 벌어졌고 수습은 JTBC 몫이다. 논란을 타개하고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해명을 내놓든지 아니면 작품을 폐지하든지 선택만 남았다.

그리고 JTBC는 알아야 한다. ‘방송을 보면 안다’는 말은 방송 전 스포일러 방지를 위한 발언에서 시작된 것이지, 이미 방송 2회까지 방영된 상태에서도 논란이 더 커진 상황에서 내놓을 말이 아니다.

동아닷컴 홍세영 기자 projecthong@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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