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만에 리사가 다시 묻는다 “사랑하긴 했었나요” [나명반]

입력 2021-12-23 16: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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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데뷔곡, 18년 만에 리메이크
2003·2021 버전, 비교해 듣는 재미 쏠쏠
‘30’에서 마주한 오늘의 리사와 과거의 리사
노래도 나이를 먹을까.
결론을 내리기 전, 당신의 4분 24초를 빌리고 싶다. 적어도 이 노래는 그럴 가치가 있다.

가수이자 뮤지컬배우인 리사가 부른 이번 싱글의 타이틀은 ‘사랑하긴 했었나요(2021)’. 그렇다. 당신이 알고 있는, 그 노래다.
리사의 2003년 데뷔곡이니, 18년 만의 리메이크다. 가수가 자신의 까마득한 데뷔곡을 리메이크하는 이유는 대략 두 가지 정도가 아닐까. 과거의 히트곡을 통해 올드팬들을 다시금 집결시키려는 것, 또 다른 이유는 “지금 더 잘 부를 수 있거든”이라는 자신감.

어느 쪽이든 리사의 이번 싱글은 각별하고 독특하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이 곡은 떠나는 연인에게 보내는 아픔의 이별가이다. 2003년의 리사는 이 한 곡으로 뭇별들이 떠오르고, 빛을 발하고, 충돌하고, 스러져가는 한국 가요계에서 우뚝 설 수 있었다.

2003년 버전과 2021년 버전을 번갈아 듣는 재미는 생각보다 쏠쏠했다. 얼마나 달라졌을까 싶었는데 의외로 달라지지 않았는가 하면, 그대로네 싶다가도 많이 달라졌음에 놀라게 된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역시 음색. 2003년 스물 셋의 리사는 어느덧 마흔 하나가 됐다. 아티스트는 자신의 삶을 도구로 삼아 예술을 깎는다. 그렇게 18년을 깎고 다듬었다.

맑고 투명했던 음색은 음영이 짙어지면서 향이 풍부해졌다. 2003년 버전이 바이올린 소리였다면, 2021년 버전에서는 살짝 첼로의 질감마저 느껴진다. 화려한 알앤비 기교의 비중을 줄인 대신 좀 더 담담하게 불렀다.

흥미로운 얘기가 있다. 배우들 사이에서는 “10대 연기는 20대가, 20대 연기는 30대가, 30대 연기는 40대가 잘 한다”는 말이 있다. 10대가 10대를, 20대가 20대를 연기하면 가장 잘 표현할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으로, 그 나이 대를 ‘살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살아 본’ 사람이 낫다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리사의 ‘사랑하긴 했었나요’는 흥미로운 감상 포인트가 있다. 2003년 20대였던 리사의 노래를 들어보면 사뭇 성숙한 느낌을 준다. 20대가 노래한 30대의 감성처럼 들린다.
이와 비교해 이번 2021년 버전은 40대가 부르는 30대의 사랑과 이별이다. 2003년과 2021년의 ‘사랑하긴 했었나요’는 이 ‘30’의 지점에서 묘하게 마주친다.

2003년의 노래에서 아픔, 미련, 분노가 강렬하게 표출되었다면 2021년 버전에서는 이해와 포용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여기에 극적인 연출이 더해져 4분 24초짜리 드라마를 감상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뮤지컬 분야에서 다양한 배역을 거치는 동안 리사가 얻은 예술적 성취가 녹아들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 이해할 순 없지만 미워할 순 없네요 / 잊을 수 없으면 어떡하나요 / 날 사랑하기는 했었나요 / 나만큼은 아닌가요 / 다시 내게 돌아오길 바라던 / 바보같은 나 인걸요.”

‘사랑하긴 했었나요’는 리사가 갖고 있는 보컬리스트로서의 기량을 100% 드러내는 곡은 아니다. 하지만 이 아련하고 애틋한 감정을 담담하게, 때로는 격정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리사의 표현력을 만끽하기에는 최고의 곡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40대의 리사에게서 드문드문 20대의 감성이 튀어나오는 것도 이 곡을 감상하는 재미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 | 알앤디컴퍼니

※ 이 코너는 최근 출시된 음반, 앨범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코너의 타이틀 ‘나명반’은 ‘나중에 명반이 될 음반’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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