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환수의 수(數)포츠] 스포츠마다 대표숫자가 있다

입력 2022-04-05 05:3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헤임달’로 유명한 영국 배우 이드리스 엘바(왼쪽 3번째)가 2일(한국시간) 도하 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22카타르월드컵 조 추첨식의 메인 MC로 나서 눈길을 끌었다. 디펜딩 챔피언 프랑스를 이끄는 디디에 데샹 감독(왼쪽 2번째)도 참석했다. 이날 조 추첨식처럼 축구는 유독 숫자 4와 연관성이 크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4번 홀릭’ 월드컵…‘내 사랑 3번’ 야구…‘9번 매직’ 골프

8개조에 4팀 뽑는 월드컵 본선 추첨식
조 나눌때 4명,순번 정할때도 4명 초청

삼진·3아웃 공수교대·3 배수 9명 타자
삼각형 그라운드까지…‘3에 빠진 야구’

골프는 전반 9홀·후반 9홀 ‘9번 집착’
아이언 종류도 대체로 9번까지 나와
《지난 주말 2022카타르월드컵 조 추첨식은 시작부터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헤임달’로 더 유명한 영국 배우 이드리스 엘바가 메인 MC를 맡았다. ‘마블 유니버스’에서 아스가르드의 수문장인 헤임달 역을 맡은 그는 조연이지만 토르나 로키를 능가하는 강렬함을 뿜어냈다. 북유럽신화에서 헤임달은 토르의 이복동생이자 ‘가장 하얀 신’으로 묘사되는데, 흑인인 그가 캐스팅된 것은 의외였다. 이를 두고 세간에선 역사 고증 오류, 흑인화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댄젤 워싱턴만큼 잘 생긴 그가 금색 갑옷을 입고 금빛 눈빛으로 충직한 카리스마를 발산하자, 논란은 한순간에 사라졌다. 2018년 피플지가 뽑은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였고, 흑인 최초 제임스 본드로도 거론되는 그가 월드컵에 등장한 것은 당연한 캐스팅이었다. 시에라리온과 가나 출신 부모의 다국적 이주민 가정 출신인 그는 아스널의 열성팬으로 여러 축구행사에서 이미 사회를 봤다. 가수로서 노래와 랩도 되고, 굵고 매력적인 저음으로 성우로도 활약 중이다. 여기서 투머치 정보 하나. 그의 첫 부인은 한국 혼혈이니 우리 식으로 치면 ‘엘 서방’이 될 수도 있다.》

# 또 서론이 길어졌다. 각설하고 조 추첨식을 보는 내내 기자는 숫자 4의 홍수에 질겁했다. 이런 것도 병이라면 병인 모양이다. 출전권을 획득한 32개국이 개최국 카타르의 A조부터 한국이 속한 H조까지 8개 조에 배정되고, 각조에는 4팀이 들어가는 게 월드컵 본선이다. 조를 나누는데 4명, 조 내 순번을 정하는데 또 4명의 초청인사가 등장해 추첨을 했다. 이제 11월 21일 월드컵이 시작되면 조별리그를 거쳐 16강이 결정될 것이고, 16강∼8강∼4강∼결승전으로 이어지는 토너먼트가 12월 18일까지 이어질 것이다. 월드컵은 4년마다 열린다. 여름올림픽을 피하기 위해서다. 여름올림픽은 4의 배수 해에, 월드컵은 그 사이에 2년 시차를 두고 열린다. 한국은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목표였던 첫 16강을 훌쩍 뛰어넘어 4강에 올랐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선 원정 첫 16강에 올랐다. 12년만의 3번째 16강 진출은 기대해볼 만하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29위 한국은 포르투갈(8위), 우루과이(13위), 가나(60위)와 H조에 배정돼 최악의 조는 피했다. 대부분의 스포츠베팅업체가 가나보다 낮게 평가하고 있지만, 우루과이∼가나∼포르투갈로 이어지는 대진 일정이 괜찮은 데다 H조에서 유일하게 한 경기장(에듀케이션시티 스타디움)에서 3경기를 모두 치르게 됐다.

# 반면 야구는 축구와 달리 3이 많이 보인다. 축구장은 네모반듯하고, 야구장은 삼각형에 가까운 부채꼴이기 때문일까. 야구는 삼진이 있고, 3아웃 공수교대를 한다. 3의 배수인 9명이 타석에 서고, 수비를 한다. 정규이닝은 9회까지다. 외야수는 3명이며, 내야수는 1∼2∼3루수에 갭을 메우는 유격수가 있다. 3∼4∼5번타자를 클린업트리오라고 한다. 선발투수는 6이닝 이상을 던져 3자책점 이하로 막았을 때 퀄리티스타트를 부여받는다. 3할타자와 3자책점 이하 투수가 스타의 기준이다. 프로리그는 대체로 주중 3연전과 주말 3연전을 벌인다.

3일 프로야구 한화-두산전이 열린 잠실구장. 축구와 달리 야구는 숫자 3과 친숙하다. 잠실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골프에선 3이라기보다는 9가 대표숫자라 할 만하다. 골프장은 사각도, 삼각도 아니다. 홀마다 제각각이다. 인생처럼 변화무쌍하다. 그래서일까. 골프는 영국에서 만들어져 미국에서 꽃을 피웠지만, 동양사상이 담긴 듯하다. 전반 9홀, 후반 9홀이 한 라운드인 골프는 대체로 18홀 72타가 기준 타수다. 81타를 치면 통상 싱글 골퍼, 90타를 치면 보기 플레이어라고 한다. 홀의 지름은 4.25인치인데, 이를 미터법으로 환산하면 108mm다. 놀랍지 않은가.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인생의 백팔번뇌가 골프에 함축돼 있다. 아이언 종류도 대체로 9번까지다. 그보다 짧은 골프채는 피칭, 갭, 샌드, 로브 웨지로 불린다. 한편 테니스는 한 게임을 따내기 위한 포인트가 0(러브)-15-30-40으로 나눠져 있다. 여러 설이 있지만 시계에서 유래됐다는 게 가장 유력하다. 시계를 4등분하면 40 대신 45가 돼야 하지만, 포티 파이브는 너무 길어 쉽게 발음하기 위해서다. 테니스는 이밖에도 듀스, 브레이크 포인트 등 독특한 룰이 많긴 하다. 하지만 축구처럼 네모반듯한 경기장에서 하는 만큼 한 게임을 이기기 위해선 결국 4개의 포인트가 필요하다는 데서 역시 숫자 4가 나온다.

# 전 회에서 스포츠베팅을 다뤘는데 그때 못 다한 얘기를 보충하고자 한다. 스포츠베팅은 분류방법에 따라 크게 2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참가자의 베팅이 몰리는 데 따라 배당률이 변하는 일반적 방식이다. 경마, 경륜, 경정이나 일반 스포츠토토가 그렇다. 다크호스나 최약체가 이기면 잭팟이 터지는 구조다. 하지만 주최측은 절대 손해를 볼 일은 없다. 세금과 운영경비를 제외한 금액 내에서 지급하면 된다. 또 하나는 주최측이 미리 배당을 정해 발표하는 고정배당률 방식이다. 이 경우 주최측은 손실을 볼 수도 있다. 그래서 전문가들이 동원돼 흥행과 수익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을 황금 배당률을 정하는 데 골머리를 싸맨다. 사실 전문가와 일반인의 경쟁이니 장기적으로는 이게 더 주최측의 수익률이 높을 수 있겠다. 월드컵 조 추첨이 끝나자마자 한국의 16강 진출 배당률이 발표되는 것은 대체로 이 방식이다. 또 예를 들어 대통령선거 당선 가능성을 합하면 1을 넘기는 경우가 나오는 것도 이 방식이다.

# 문제는 고정배당률 방식이 승부조작에 오히려 취약할 수 있다는 점이다. 경마에서 최약체인 말을 우승시키는 것은 사실상 기적에 가깝다. 그 말이 우승했다면 최약체가 아니었다는 반증이다. 그래서 경마는 정보 싸움이다. 좋은 말을 꼭꼭 숨기고 있다가 부상을 각오하고 무리를 하거나, 선두권에서 길을 내주는 팀플레이가 필요하다. 일손이 많이 필요하다. 반면 고정배당률 방식은 배당은 낮지만 팀 내 관계자 한두 명만 섭외하면 가능하다. 이기기는 어려워도 지는 것은 쉽다. 비교적 손쉽게 장기적 수익이 가능하다. 배당이 적다고는 해도 주식, 부동산 등 그 어떤 투자보다 나을 수 있다. 그동안 사회면을 장식한 제도권내 불법 베팅은 대부분 여기서 나왔다.


장환수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zangpab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오늘의 핫이슈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