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수.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김진수.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이란(홈)~아랍에미리트(UAE·원정)로 이어진 3월 2022카타르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2연전을 앞둔 시점이었다. 묵묵히 기다리던 축구국가대표팀 파울루 벤투 감독(53·포르투갈)이 조용히 선수를 불러 물었다. “네 축구를 왜 하지 않지? 내가 아는 네가 아니다. 더 많이 공격하고, 더 열심히 수비하던 선수 아니냐? 축구가 두렵냐?” 선수가 답했다. “정말 무섭다. 다치는 게 너무 두렵다.”

벤투 감독은 베테랑 측면 수비수 김진수(30·전북 현대)가 달라졌다는 것을 감지했다. 월드컵 시즌, 자신도 모르게 선수는 위축됐다. 혹시라도 또 부상이 찾아올까봐 몸을 사린 채 공격에 덜 가담하고, 덜 부딪히고, …. 2014년 브라질, 2018년 러시아대회를 부상으로 건너뛴 사정을 벤투 감독도 잘 알고 있었다.

꼬집어줄 타이밍이었다. “만약 또 다쳐 월드컵을 갈 수 없다면 운명이다. 아프지만 받아들이면 된다. 그런데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경기를 반복한다면 옳지 않다.”

쉽게 바뀌진 않았다. 소속팀으로 복귀한 뒤에도 위축된 플레이가 이어졌다. 4월 초 수원 삼성과 K리그1(1부) 원정경기에서 실수를 거듭한 그를 김상식 전북 감독은 호되게 꾸짖었다.

김진수.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김진수.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김진수는 15일 스포츠동아와 인터뷰에서 “월드컵 시즌이 오고 정말 무서웠다. 감독님들도 알아봤다. 질책했지만 내 사정을 잘 이해해줬다. 감독님들의 말이 맞다. 소속팀에서 잘해야 대표팀도 있는 건데, 내가 하던 순서는 그 반대였다”고 털어놓았다.

그 후 김진수는 담담하게, 또 대범하게 뛰었다. 평소의 패턴을 되찾았다. 간간이 잔 부상이 찾아올 때면 가슴이 철렁했으나 끝까지 버텨냈다. 2월부터 10월까지 혹독한 시즌을 마친 그를 벤투 감독은 월드컵 최종엔트리(26명)에 포함시켰고, 회복에 전념토록 했다. 선수를 ‘운동기계’가 아닌 ‘인간’으로 접근한 지도자의 현명한 결정에 김진수는 우루과이와 조별리그 H조 1차전부터 출전할 수 있었다.

꿈에 그린 월드컵, 킥오프를 앞두고 동료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애국가를 부르던 김진수는 눈물을 삼켰다. “울고 싶지 않았다. 내가 원한 순간이었다. 가족이 보고 있었다. 울었지만 난 울지 않았다.” ‘벤투호’는 우루과이전을 0-0으로 마친 뒤 가나와 2차전에서 2-3으로 졌다. 김진수에게는 참 아쉬운 90분이었다. “판단 미스, 잘못된 위치 선정으로 실점했다. 최선을 다하는 것과 잘하는 건 다르다. (조)규성이의 동점골을 어시스트했지만 중요치 않다. 나로 인해 동료들이 어려움에 빠졌고, 팀이 졌다.”

포르투갈과 3차전, 이를 악물었다. 모든 것을 쏟았고, 2-1 승리에 기여했다. 종료 휘슬이 울리고 16강이 확정되기까지 걸린 9~10분은 마치 영원처럼 길었다. 혼신을 불태운 만큼 브라질과 16강전은 풀타임으로 소화할 수 없었으나 후회는 없었다.

손흥민, 김승규, 김진수(왼쪽부터).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손흥민, 김승규, 김진수(왼쪽부터).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경기장에 도착하면 내 루틴대로 그라운드를 천천히 돈다. 오랜 아픔, 고생스러운 기억을 하나씩 더듬었다. 카타르월드컵은 내 인생 가장 행복한 기억이 됐다. 이렇게 가슴 뜨거운, 또 설레는 큰 무대를 좀더 어렸을 때 나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이번에도 월드컵 직전 부상은 어김없이 대표팀을 덮쳤다. 군 신분이던 중앙수비수 박지수(28)가 아이슬란드와 마지막 평가전에서 다쳐 카타르로 향하지 못했다. “많이 생각이 났다. ‘괜찮지? 네 몫까지 뛴다’는 빤한 위로조차 할 수 없었다”고 후배의 아픔을 이해했다.

김진수는 4년 뒤를 기약하진 않았다. 활동량이 많은 측면 수비수에게 30대 중반의 나이는 적지 않다. 그래도 지레 포기하진 않는다. 처음이 있어 다음이 있는 법이다. 그는 “우리도 월드컵에서 나름 경쟁력을 보였다. 숨이 턱에 차오를 때까지 뛰고 또 뛰었어도 정말 행복했다. 참 많은 것을 얻은 시간”이라고 카타르에서 보낸 뜨거운 3주를 되돌아봤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