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끝없이 나오네” 회전초밥 같은 뮤지컬…캣츠 [양형모의 일일공프로젝트 5]

입력 2023-02-09 13: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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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작품…하지만 은근 호불호 갈려
쉼표가 없는 뮤지컬 “끊이지 않는 것이 캣츠의 매력”
‘사람 탈을 쓴 고양이들’…당신은 어느 고양이의 팬인가요?
3월 12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오리지널 무대
‘캣츠’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전 세계인이 사랑해마지 않는 ‘유니버설’ 뮤지컬이지만 은근 호불호가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와아, 너무 재밌어”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사실 대다수가 여기에 속합니다), “이게 왜 재밌어?”하는 사람도 있죠.

후자의 경우 “이게 왜 재미가 없어?”라고 되물으면 딱히 답을 내놓지는 못합니다. 그래도 몇 번 끈질기게 물으면 마지못해 이런 답을 내놓더라고요.

“딱히 스토리가 있는 것 같지도 않고 … 뭔가 극적인 부분도 없고 ….”

듣고 보면 일리가 없지는 않습니다. 사실 캣츠에는 사랑, 배신, 태생의 비밀, 복수와 같은 ‘매콤한’ 소재가 없거든요. 게다가 다른 뮤지컬처럼 주연과 조연도 딱히 구분이 없습니다. 흔히 캣츠의 주인공이라고 하는 늙은 암고양이 그리자벨라도 무대에 등장하는 횟수는 고작 서너 차례밖에 안 되니까요.
배우들 보는 재미도 없습니다. ‘변장’ 수준의 고양이 분장(배우들이 직접 한다네요)에 가려 가족이 출연했다고 해도 얼굴을 알아보기 쉽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사실 이런 불만들은 어찌 보면 반대로 ‘캣츠가 재미있는 이유’가 되기도 하니 흥미롭지 않습니까. ‘사람의 탈을 쓴 고양이’들의 이야기가 40년이 넘도록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거지요.



뮤지컬 캣츠의 극적 배경부터 알아봅시다.

일년 중 어느 고요한 밤. 이날을 고양이들은 ‘가장 특별한 밤’으로 여깁니다. 스스로를 ‘젤리클 고양이’라고 부르며 자긍심을 느끼는 이 고양이들은 젤리클 볼에 모여 축제를 엽니다.

이 날이 진짜 특별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고양이들 중 딱 한 마리가 선택돼 새로운 젤리클 고양이의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인데요(저 세상으로 간다는 얘기죠). 누가 선택이 될지는 고양이들의 지도자인 올드 듀터러노미 밖에 모릅니다.

여하튼 이건 이 축제의 하이라이트이자 마지막 이벤트이고, 젤리클 볼에 모인 고양이들은 제각기 자신들의 이야기를 노래와 춤으로 들려줍니다.

네, 들려줍니다. 다른 고양이들에게, 그리고 관객 여러분에게.
이것이 뮤지컬 캣츠입니다.

그럼 지금부터는 뮤지컬 ‘캣츠’ 속으로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긴장하실 건 없습니다. 길에서 만난 고양이에게 무작정 손을 내미는 것보다 훨씬 안전하고, 편안한 여행이 될 테니까요. 젤리클 고양이들도 원하는 바일 겁니다.

캣츠에는 꽤 많은 젤리클 고양이가 등장합니다.

3시간 가까이 객석에 앉아 있는 관객들에게 쉬지 않고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려면 한두 마리 고양이 가지고는 어림도 없지요.

고양이는 수컷도 있고 암컷도 있습니다. 부잣집 고양이도 있고 가난한 고양이도 있습니다. 성경, 불경, 쿠란에 노자 도덕경까지 독파한 듯 지혜로운 고양이가 있는가 하면 도둑2인조에 조폭 같은 고양이도 나옵니다.

마음에 드는 고양이가 있듯 도무지 정이 안 가는 녀석도 있습니다. 사료를 줄 때만 다가와 아양을 떠는 친구네 고양이 같은 놈도 보입니다.



이 고양이들의 ‘자기소개’가 끝없이 이어집니다. 한 고양이의 이야기가 시작되면 다른 고양이들은 추임새를 넣기도 하고, 춤을 추거나 노래로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듭니다.

고양이들의 이야기는 코스요리 같기도 합니다. 하나의 요리를 맛보고 나면 어느새 새로운 접시가 눈앞에 놓입니다. 옆에 빈 접시가 쌓여가지만 너무 맛이 좋아 배가 부른 줄을 모르겠습니다. ‘이번엔 또 어떤 요리가 나오려나’ 기대가 커집니다.

뮤지컬 캣츠의 위대한 점은 이 요리의 ‘끊이지 않음’에 있습니다. 한 마디로 쉼표가 없는 공연이라고나 할까요. 이쯤 되면 캣츠는 ‘코스요리’가 아니라 ‘회전초밥’ 뮤지컬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고만고만한 듯 전혀 고만고만하지 않은 고양이들의 이야기에 눈과 귀를 기울이다보면 어느덧 그리자벨라 등장. 저 유명한 ‘메모리’를 부르며 그리자벨라가 둥실둥실 하늘로 사라지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그제서야 잔뜩 부른 배를 어루만지게 됩니다.

젤리클 고양이들의 이야기, 노래와 춤을 느긋하게 감상하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애정하는 고양이가

생기는 것도 캣츠를 보는 재미 중 하나일 겁니다.

젤리클 멤버 중 최고의 인기남인 ‘럼 텀 터거’를 좋아하는 분들이 많을 텐데요. 무대에서 황홀한 춤과 마술을 선보이는 ‘미스터 미스토펠리스’도 매력적이고, 고양이들을 지켜주는 정의의 사나이 ‘멍커스트랩’도 인기가 높습니다.

관능적이고 섹시한 암컷 고양이 ‘봄발루리나’, 아름다운 샴고양이 ‘카산드라’는 어떻습니까.

개인적으로는 나이가 가장 많은 ‘거스’에게 눈길이 자꾸 갑니다. 왕년의 명배우로 시종일관 “라떼는 말이야~”를 읊는 영감님 고양이입니다. 뭔가 불길한 조짐이 일 때마다 “맥캐버티!(이 놈은 악당입니다)”를 외치는 암고양이 ‘드리터’도 좋아합니다.


이렇게 좋아하는 고양이가 생기면 캣츠를 보는 재미가 몇 배로 불어납니다. 캣츠는 ‘배우’가 아니라 온전히 ‘캐릭터’를 즐기는 작품이니까요.

그리자벨라도 가고, 고양이들은 마지막으로 관객에게 말을 겁니다. 이것이 피날레인데요. 올드 듀터러노미의 우렁찬 바리톤 솔로로 시작해 고양이들의 웅장한 합창이 이어지는데, 사실 가사 내용은 “고양이를 만나거든 예의를 갖추라”는 권고사항입니다.

요점만 간략하게 말씀드리자면 이런 거죠.

“고양이는 개가 아니야 / 누가 그러더라. 고양이들이 말하기 전까지 절대 고양이들에게 먼저 말을 걸지 말라고 / 근데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넌 고양이에게 말을 걸어줘야 해. 다만 먼저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모자를 벗고 그들을 불러. 오~ 고양아~ / 크림 한 접시 정도는 필요하겠지. 때때로 약간의 캐비어나 스트라스부르크파이, 꿩고기, 연어 페이스트를 줘야 할지도 몰라 / 알았지? 이것이 바로 네가 고양이에게 말을 거는 방법이란다.”

사실 저는 고양이에게 ‘뜨거운 맛’을 본 적이 있습니다. 악당 맥캐버티 사촌형님처럼 생긴 고양이에게 강아지 다루듯 “우쭈쭈”하며 손을 내밀었다가 호되게 할큄을 당한 기억이 있거든요. 그 후로는 좀처럼 고양이에게 ‘말을 걸지’ 못하고 있습니다만.

올드 듀터러노미와 젤리클 고양이들의 권고사항을 들으니 조금은 용기가 생깁니다. 그리하여 다음에 고양이를 만날 기회가 생기면 먼저 말을 걸어볼까 합니다.

먼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눈을 맞추며 정중한 발걸음으로 다가가고, “오~ 고양아~” 하면서 ….

그런데 고양이씨.
혹시 캐비어 대신 츄르는 안 되겠습니까.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 | 에스앤코

※ 일일공프로젝트는 ‘일주일에 한 편은 공연을 보자’는 대국민 프로젝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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