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공자’와 ‘라방’ 보고 ‘솜씻너’ 됐습니다… (종합)[DA:스퀘어]

입력 2023-06-14 11: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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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연의 할말많하: 할 말이 많지만 하지 않겠다뇨? 끊이지 않는 연예계 이슈, 할 말이 많으니 많이 하겠습니다.
*리뷰에 스포일러를 최대한 배제했으나 일부 내용이 불가피하게 포함돼 있습니다.

온라인 유행어 가운데 ‘솜씻너’라는 표현이 있다. ‘솜사탕을 씻는 너구리’의 줄임말로 너구리가 먹이로 받은 솜사탕을 물에 씻었다가 녹아버리자 허탈해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에서 시작됐다. 잔뜩 기대했다가 망연자실한 상태를 뜻한다.

영화 ‘귀공자’와 ‘라방’을 보고 영화관을 나서는 길, 이 꺼림칙한 기분은 대체 무엇인지 생각해봤다. 러닝타임 내내 솜사탕을 쥐여 주다 찬물을 확 끼얹는 엔딩. 반전이라면 반전인데 돌아보니 손 안에 남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 이게 바로 ‘솜씻너’구나.

우선은 작품 설명부터. ‘귀공자’는 필리핀 불법 경기장을 전전하는 코피노 복싱 선수 마르코 앞에 정체불명의 남자 귀공자를 비롯한 각기 다른 목적을 지닌 세력들이 나타나 광기의 추격을 펼치는 이야기로 영화 ‘신세계’와 ‘낙원의 밤’ ‘마녀’ 시리즈 박훈정 감독의 신작이다. ‘라방’은 프리랜서 PD 동주가 우연히 받은 링크에서 여자친구의 모습이 생중계 되는 것을 알게 되고, 이를 막기 위해 방송 속 정체불명의 ‘젠틀맨’과 필사적인 대결을 펼치는 실시간 라이브 추격극. ‘귀공자’는 21일, ‘라방’은 28일 극장 개봉을 앞두고 있다.

‘귀공자’와 ‘라방’은 6월 극장 개봉하는 한국 영화라는 점과 선호들이 출연한다는 것(‘귀공자’ 김선호와 ‘라방’ 박선호) 외엔 딱히 공통점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두 작품은 서사를 이끄는 주인공을 허무맹랑하게 ‘써버리는’ 부분에서 매우 닮아있다. 주요 포스터에는 ‘귀공자’ 역의 김선호와 ‘젠틀맨’ 역의 박성웅을 내세웠지만 이야기의 중심에는 강태주가 열연한 코피노 ‘마르코’와 박선호가 연기한 취업준비생 ‘동주’가 있다. 사회적 약자로 설정된 두 인물은 정체불명의 ‘귀공자’와 ‘젠틀맨’이 짜놓은 판 안에서 이리저리 휘둘리며 추격전을 벌인다.

관객은 자연스럽게 두 주인공의 감정에 몰입한 상태로, ‘대체 왜?!’라는 의문을 품은 채 이야기를 따라간다. 이들의 극복과 해피엔딩을 응원하면서. 그러나 돌아오는 건 ‘솜씻너’ 엔딩. 주인공들은 결과를 위한 과정에 철저하게 이용당한 것도 모자라 주인공의 위치마저 뺏긴다. 대의를 위한 개인의 희생으로 치부하기엔 설득력이 너무 부족하지 않나(‘마르코’는 멱살이라도 잡아보니 다행인 수준일까).

화려한 액션이 주는 통쾌감도 긴박한 추격에서 오는 긴장감도, 이 꺼림칙하고 불쾌한 감정을 덮지 못한다. 무엇보다 배우들의 열연은 너무나 빛났기에 서사의 붕괴가 더욱 아쉽게 느껴진다.

동아닷컴 정희연 기자 shine256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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