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홍은 큰 체구로 찍어 누르는 육중한 타건이 일으키는 폭발음과 새벽에 눈이 내리는 소리까지 화가의 팔레트 위 물감처럼 다채로운 볼륨과 음색을 모두 갖춘 연주자이다. 분명한 것은 확실하게 구분되는 몇 가지 ‘자신만의 소리’를 갖고 있다는 것인데, 그는 이 소리를 갖고 어떤 곡이든 맛있게 연주해낸다. 30분쯤 그의 연주를 듣고 있으면 어느 틈에 그의 음색에 중독이 되어 버리니, 무서운 일이다.”
2022년 피아니스트 박재홍의 독주회를 보고 와선, 꽤 흥분해 썼던 리뷰였다.
기다렸던 박재홍의 독집앨범 소식이 전해졌다. 13일 ‘데카코리아 레이블’로 나왔다. 클래식의 명가로 이름 높은 데카(DECCA)레이블은 최근 미국, 이탈리아, 호주 등 주요 국가에서 자국의 아티스트들을 발굴해 글로벌 시장에 소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유니버설뮤직 관계자는 “우리나라 클래식 아티스트의 활약은 널리 알려져있다. 데카코리아 레이블은 한국의 아티스트들이 세계 클래식 음악팬들에게 직접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플랫폼 역할을 할 것이다. 이번 앨범으로 박재홍은 글로벌 시장에 확실히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며, 올 하반기부터 더욱 많은 데카코리아 앨범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많은 기대와 성원을 바란다”고 전했다.
피아니스트 박재홍은 2021년 이탈리아 볼차노에서 열린 부조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과 함께 부조니 작품 연주상, 실내악 연주상, 타타로니 재단상, 기량발전상을 휩쓸며 대회 5관왕으로 화제가 됐다.
우승 후 2022년 한국예술종합학교와 유니버설 뮤직이 협업해 박재홍의 데뷔음반이 발매됐다. 부조니콩쿠르의 마지막 라운드에서 연주했던 베토벤 함머 클라비어 소나타와 부조니의 작품들을 담은 이 음반으로 새로운K-클래식의 스타탄생을 알렸다.
서두에 인용해 둔 리뷰의 한 토막은 이 해에 열린 독주회였고, 박재홍은 함머 클라비어를 연주했다.
박재홍의 이번 앨범은 콩쿠르 수상에서 나아가 전문연주가로서 박재홍의 신고식과 같은 앨범이다. 박재홍이 고심 끝에 고른 프로그램은 스크랴빈 24개의 전주곡 Op.11과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소나타 1번. 20세기 피아노 레퍼토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이 두 작곡가는 같은 시대를 살았던 라이벌이었지만, 완전히 상반된 음악을 보여준다.
스크랴빈의 전주곡 Op.11은 쇼팽의 전주곡에서 착안한 것으로 각 작품이 독립적이고 사색적이며 아름답다. 라흐마니노프 소나타 1번은 거대한 건축물이자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로 이어진다.
박재홍은 “라흐마니노프의 작품은 엄청난 기교 너머에 위대한 음악과 독창성이 있다. 복잡한 기교를 뛰어넘어 아름다움을 포착해야 한다. 스크랴빈은 개별적인 곡들의 연결고리를 찾아서 하나의 통합된 세트로 만드는 작업을 해야했다. 연주자로서 이 음악들을 선보이고 청중에게 공유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녹음은 지난 1월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최진 감독의 프로듀싱으로 진행됐다. 녹음은 하나의 전주곡을 200번 이상 연주했을 정도로 지난한 과정이었다. 박재홍은“시간 때문에 타협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모든 녹음과정이 배우는 과정이었으며, 최대한 완벽하게 마무리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피아니스트 박재홍은 2021년 부조니 콩쿠르 우승과 4개의 특별상을 거머쥐면서 세계 음악계에서 주목받는 젊은 음악가로 명성을 쌓고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김대진 교수를 사사한 그는 일찌감치 클리블랜드 국제 영 아티스트 피아노 콩쿠르와 지나 바카우어 국제 영 아티스트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했으며 루빈스타인, 에틀링겐, 힐튼 헤드 외 다수의 국제 콩쿠르에서도 상위 입상한 바 있다.
콩쿠르 입상과 함께 전 세계를 무대로 리사이틀, 협연, 페스티벌 참여를 이어가고 있다. 순수 국내파로 알려진 박재홍은 올가을부터 독일 바렌보임사이트 아카데미에서 안드라스 쉬프를 사사할 예정이다.
박재홍은 이번 앨범 발매와 함께 <박재홍피아노 리사이틀> 전국투어를 갖다. 8월 25일 통영국제음악당, 9월 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6일 울주문화회관, 21일 대구 수성 아트피아, 26일 경남문화예술회관 등에서 열린다. 앨범에 수록된 스크랴빈 24개의 전주곡 Op.11과 라흐마니노프 소나타 1번에 더해 스크랴빈 환상곡 b단조를 연주한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