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還) 절대의 고독으로 … ‘대지의 노래’ 0악장 같았던 최우정의 ‘환’

입력 2024-10-31 14:2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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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정 작곡의 ‘환’에서 조이오브스트링스와 협연하고 있는 피리 연주자 진윤경.     (사진제공=스테이지원)

최우정 작곡의 ‘환’에서 조이오브스트링스와 협연하고 있는 피리 연주자 진윤경. (사진제공=스테이지원)


끝없이, 끝없이. 어둡고 긴 동굴을 걷고, 다시 심연으로 가라앉는다.
10월 30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IBK홀에서 열린 음악회의 1부는 서울대 작곡과 교수 최우정의 ‘환(還) : Re;gninrut 피리와 현을 위한 협주곡’이 세계 초연됐다.

2부는 구스타프 말러의 ‘대지의 노래’. 테너 김효종, 메조소프라노 정수연, 쇤베르크/린의 실내악 편곡 버전이다. 지휘는 ‘말러 스페셜리스트’ 진솔이 맡았다.

최우정은 환에 대해 “돌고 도는 인생을 생각하며 썼다”고 했다. 음악은 인생이나 세계의 운행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는 것. 현악기 파트는 피리가 효과적으로 즉흥을 할 수 있도록 일종의 화성 카페트가 되도록 했다. 

바이올리니스트 이성주가 이끄는 조이오브스트링와 진윤경의 ‘환’ 연주.   (사진제공=스테이지원)

바이올리니스트 이성주가 이끄는 조이오브스트링와 진윤경의 ‘환’ 연주. (사진제공=스테이지원)


작곡가 최우정 교수   (사진제공=스테이지원)

작곡가 최우정 교수 (사진제공=스테이지원)

최우정은 “지금까지 한국 전통악기를 사용할 때마다 확인한 것은, 연주자에게 많은 것을 맡길수록 훨씬 더 좋은 연주가 나온다는 사실”이라고 했다. “깨알같이 악보에 다 그려주면 전통악기가 가진 힘과 멋이 죽어버린다는 것”이다.

바이올리니스트 이성주가 이끄는 조이오브스트링스가 연주를 맡았다. 피리 협연은 진윤경.
환에서 조이오브스트링스의 현은, 끝없이 긴 한숨처럼 들린다. 최우정의 표현대로라면 그것은 피리를 위해 놓인 길고 긴 음의 카페트일 것이다. 그 윤회와 같은 카페트 위에서 피리는 오래도록 춤을 추었다.

테너 김효종   (사진제공=스테이지원)

테너 김효종 (사진제공=스테이지원)


메조소프라노 정수연

메조소프라노 정수연

2부, 대지의 노래는 콘서트에서 좀처럼 만나기 쉽지 않은 레퍼토리일 것이다.
연주자들의 얼굴이 반갑다. 제1바이올린이자 악장에 백주영 서울대 음대 교수, 제2바이올린 김지윤, 첼로는 이정란.
이들을 만나기 위해서는 독주회나 앙상블 연주를 따로 찾아가야 하는데, 이렇게 한데 모아 놓으니 어쩐지 대단한 횡재를 한 기분이다.

대지의 노래는 오케스트라 반주의 거대한 가곡집 같은 작품. 인생의 가장 쓰디쓴 순간, 어두운 심연을 막 기어나온 말러의 후기 작품이다. 빈 국립 오페라극장에서 쫓겨나고, 심각한 심장병 진단을 받고, 어린 딸을 잃었던 말러.
적막하고, 쓸쓸하고, 웃지만 곧 입가가 굳어지는 노래들. 가사들은 한결같이 ‘인생은 고(苦)’라고 외치는 듯하다.



그래서 1시간이나 되는 이 작품을 편히 감상하기는 쉽지않다. 그 적막함이 듣는이의 상처를 굳이 헤집어내고 긁는다. 사실 그 맛에 듣는 작품이다.

말러의 작품치고는 은근히 오래된 음반들 중에 명반이 많다. 말러의 제자이면서 심지어 ‘대지의 노래’ 초연 지휘자였던 브루노 발터의 빈필하모닉 음반이 대표적. 테너 프리츠 분더리히도 좋지만 역시 이 음반은 알토 캐슬린 페리어의 영혼을 덜덜 울리는 노래를 듣는 맛이다.

발터의 것보다 4년 뒤(1964)에 나온 오토 클렘페러 지휘의 필하모니아 음반도 양대산맥으로 꼽히는 명반. 프리츠 분더리히 테너에 메조소프라노 크리스타 루드비히가 노래하고 있다.

‘신세대 말러 스페셜리스트’로 불리는 지휘자 진솔   (사진제공=스테이지원)

‘신세대 말러 스페셜리스트’로 불리는 지휘자 진솔 (사진제공=스테이지원)

‘신세대 말러 스페셜리스트’로 요즘 각광받는 진솔의 지휘는 처음 보았다. 지휘가 시원시원해 관객들도 알기 쉬울 정도다. 음의 삼각형 피라미드를 쌓아올리는 듯한 특유의 힘찬 동작도 매력적이다.

말러의 고통스런 내면 속으로 성큼성큼 걸어들어가는 해석으로 대단히 선명한 말러다.
악기들의 울림이 따로 노는 듯하다가도 어느틈에 교차하고 있는 말러 특유의 오케스트레이션을 고해상도 TV로 보듯 생생하게 살리고 있다.

그의 지휘봉 끝이 향할 때마다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관악기들이 봉오리를 팡팡 터뜨리며 꽃망울을 드러낸다. 마치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 환상적인 장면이 연출되고 있다.

대지의 노래 여섯 번째 곡 ‘고별’은 가장 길고, 가장 심오한 분위기를 담은 곡.
이 최후의 ‘고별’은 1부 최우정의 ‘환’과 확고하게 연결되어 있는 듯하다.
그래서일까. ‘환’은 마치 대지의 노래 첫 번째 곡처럼 들린다. 교향곡이라면 0악장일 것이다.

말러의 길고 짙은 한숨이 대지로 스며든다.
진솔의 지휘가 허공에서 정지하고, 연주자들도 제각기 긴 여운을 찍는다.
그리고 다시. 
환.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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