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좌완 정현수는 겨우내 투구폼을 직접 연구하고 다듬었다. 구위의 기복을 줄이는 것과 동시에 디셉션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사진제공|롯데 자이언츠

롯데 좌완 정현수는 겨우내 투구폼을 직접 연구하고 다듬었다. 구위의 기복을 줄이는 것과 동시에 디셉션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사진제공|롯데 자이언츠



한 시대를 풍미한 한국야구의 전설적 좌완 구대성은 투구폼이 독특한 선수였다. 디딤발을 축발과 엇갈리게 뒀던 그는 타자에게 등을 돌린 채 서 있다가 허를 찌르곤 했다. 이 폼과 맞물려 ‘디셉션’(공을 감추는 동작)의 효과가 커졌기 때문이다. 당시 그를 상대한 타자들 중에는 ‘머리 뒤에서 공이 튀어나와 시속 145㎞의 공도 150㎞ 이상으로 느껴졌다’는 선수도 있었다. 구대성도 “공을 최대한 안 보여주면 타자는 불리해진다”며 “공을 숨겼다 던지려고 등을 돌린 것”이라고 자신만의 폼을 갖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디셉션

세월이 흘러도 디셉션의 중요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최근 들어선 정현수(24·롯데 자이언츠)의 디셉션이 눈길을 끈다. 정현수도 디딤발과 축발을 엇갈리게 두고, 왼팔을 짧고 빠르게 돌려 공을 던진다. 이 점이 극대화된 지난해 8월 18일 사직 키움 히어로즈전에선 3.1이닝 7탈삼진 무실점으로 역투하기도 했다. 마침 해설위원으로 이 경기를 중계한 구대성도 “공이 머리 뒤에서 나온다”며 “직구가 140㎞ 정도로 보여도 그보다 더 빠른 느낌이 난다. 변화구를 적절히 섞어 던진다면 타자가 꼼짝 못 할 것”이라고 극찬했다.

정현수도 디셉션을 중요하게 여긴다. 애초 신체적 약점을 보완하려던 선택이 이제는 강점이 됐다. 그는 “난 투수 중에선 키(180㎝)가 크지 않은 편이다. 더군다나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도 아니지 않은가. 디셉션에 신경 쓰지 않는다면 타자 입장에선 내 공을 판단할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아질 것”이라며 “공을 최대한 감췄다가 재빠르게 던지는 게 내 장점을 살릴 방법”이라고 밝혔다.

롯데 정현수가 지난달 29일 사직 KT전에 구원등판해 투구 동작을 취하고 있다. 사진제공|롯데 자이언츠

롯데 정현수가 지난달 29일 사직 KT전에 구원등판해 투구 동작을 취하고 있다. 사진제공|롯데 자이언츠

●방향성

올해는 폼이 더 견고해졌다. 정현수는 일정한 구위를 위해 폼을 연구하고 다듬었다. 반대 팔과 시선을 일렬로 두는 연습이었다. 그는 “지난해 지바롯데 마린즈의 마무리캠프에 파견돼 배운 게 있다. 일본 투수들은 투구의 방향성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그렇다고 폼을 막무가내로 따라하기보단 참고하며 내 몸에 맞는 폼을 스스로 고민했다”고 밝혔다.

교정한 부분과 관련해선 “오른팔이 벌어져 나온 경향이 있었다”고 돌아봤다. 이어 “뒤로 젖혀진 상체를 앞으로 살짝 굽혀 팔을 홈 쪽으로 더 곧고 길게 뻗을 수 있게 됐다. 타자에게 좀 더 등을 돌린 듯해 보여 디셉션도 좋아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교정의 효과에 대해선 “투구의 리듬이 일정해져 구위의 기복도 사라졌다”고 밝혔다.

결과도 뒤따랐다. 정현수는 원 포인트 릴리프로 6경기 1홀드, ERA 2.70을 기록하며 1군 마운드의 한 축을 담당했다. 그는 “코치님들도 ‘제자리에서 힘을 온전히 전달해 구위도 안정적으로 유지된다’는 피드백을 주셨다”며 “앞으로도 공 하나하나에 집중하며 내 공을 던지겠다”고 다짐했다.


김현세 기자 kkach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