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르 제공

엘르 제공


예술 사진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움직임 없는 힘’이다.
화려한 조명이 없고, 극적인 포즈도 없으며, 의상과 배경이 대사처럼 말하지 않아도
프레임 안에 긴장감이 흐르는 사진.

이 사진은 그 기준을 완벽히 충족시킨다.
고윤정은 침대 위에 누워 있다.
의도적으로 힘을 뺀 자세. 샤넬의 체크 슈트는 완벽한 굴곡을 드러낸다. 그리고 우리들의 주인공은 응시도 외면도 아닌 시선을 어딘가 멀리 보내고 있다. 시선은 ‘포즈’가 아니라 ‘서사’에 가깝다.

이 장면을 바라보는 순간, 우리는 이 인물이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는 것 이상을 느끼게 된다.
설명되지 않는 감정을 안고 있다. 사진 속 긴 침묵은 오히려 더 많은 이야기를 건넨다.

배경은 비워졌지만, 그 안의 고윤정은 공간을 채우는 주체가 아니라 공간을 바꾸는 기류로 존재다.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 무대가 되었고, 의상은 트렌드가 아니라 질문이 되었다.

빛은 조형적이며, 감정은 날카롭게 살아있다. 무표정에 숨어 있는 도발적인 기운이 모든 프레임의 중심을 장악한다.
고윤정의 아우라는 결코 호들갑을 떨지 않고 있지만, 끝내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든다.

PS.
이 사진은 기억이 아니라, 잔상으로 남을 것 같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