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단장 박기태)가 아프리카에 대한 차별적인 표현을 바로 잡았다.

반크는 영어권 대표 온라인 어휘 플랫폼 ‘보캐블러리닷컴(Vocabulary.com)’에 직접 시정 요청을 보낸 결과 문제가 제기된 단어들에 대한 정의가 23일 공식적으로 수정됐다고 밝혔다.

이번 보캐블러리닷컴의 시정 조치는 반크가 3월 ‘아프리카 바로 알리기 프로젝트’의 연장선에서 이루어진 성과로, 백과사전 및 어학사전에 여전히 남아 있는 식민주의적 시각과 부정적 편견을 바로잡기 위한 실천적 활동이 실제 변화를 이끌어낸 첫 사례다.

반크는 앞서 브리태니커, 위키피디아, 콜린스, 내셔널지오그래픽, CIA 팩트북 등 20여 개의 영어권 백과사전과 어학사전을 직접 분석해, ‘Dark Continent(암흑대륙)’, ‘Bushman(부시맨)’, ‘Hottentot(호텐토트)’, ‘Third World(제3세계)’ 등 인종차별적·편향적 용어들이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밝혀냈다. 또한 아프리카 대륙 전체를 ‘가난과 부패, 군부 독재’로 일반화하거나 국가별 맥락과 차이를 무시한 서술이 만연해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했다.

이후 보캐블러리닷컴을 포함한 Cambridge, Longman, Merriam-Webster, Collins 등 세계 주요 사전 출판사들에 시정 요청 메일을 발송했으며, 그중 보캐블러리닷이 가장 먼저 수정 조치를 반영했다. 이들 중 일부 사전 운영팀들 역시 현재 편집팀에 피드백을 전달한 상태로 반크는 이후에도 지속해서 후속 메일을 보내며 응답을 기다릴 예정이다.

특히 반크는 보캐블러리닷컴에 보낸 메일에서 “Third World는 냉전시대 정치 구도에서 기원한 용어로, 오늘날에는 아프리카와 글로벌 사우스를 ‘후진적이고 낙후된 지역’으로 묘사하는 데 악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Hottentot은 남아프리카 코이산족을 비하하는 인종차별적 표현이며, 이미 국제 인권기구와 주요 사전들에서도 ‘모욕적 표현’으로 분류된 바 있다”고 설명하며, 두 단어에 대해 ‘경고 문구(offensive 또는 outdated 등)’를 명시적으로 포함해 사용자들이 해당 용어의 역사적 맥락과 부적절성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보캐블러리닷컴 운영팀은 이에 대해 “귀하의 우려를 공유해줘서 감사하다”며 “해당 용어들에 대한 문제점을 내부 콘텐츠 팀에 전달했고, 내부 논의와 검토를 거쳐 곧 수정이 이루어질 예정”이라고 회신했다. 실제로 23일 해당 플랫폼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반영되었다:

‘Third World’ 항목은 기존에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을 일괄적으로 ‘저개발국’으로 낙인찍는 지역 편향적 정의(“underdeveloped and developing countries of Asia and Africa and Latin America collectively”)에서 벗어나,

① “underdeveloped or developing countries around the world collectively”
② “(dated) underdeveloped and developing Asian, African, and Latin American countries that were not aligned politically with countries involved in the Cold War”

라는 이중 정의 체계로 수정되었다. 특히 ‘dated(시대착오적)’이라는 표현을 명시함으로써, 해당 용어가 과거 냉전 정치 구도 속에서 형성된 구분임을 밝히고, 오늘날 아프리카를 단일하고 후진적인 대륙으로 일반화하는 인식에서 벗어나도록 유도했다.


또한 ‘Hottentot’ 항목에는 “(offensive)” 및 “now considered derogatory”라는 문구가 추가되며, 이 표현이 남아프리카 코이산족에 대한 식민주의적, 인종차별적 시각에서 비롯된 비하적 용어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이 정의 수정은 단순한 단어 설명의 변화가 아니라, 언어 속에 내재된 아프리카 차별과 역사적 왜곡을 드러내고 이를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교육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번 캠페인을 주도한 정인성 반크 청년연구원은 “아프리카는 54개국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대륙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백과사전과 어학사전에서 ‘기아’, ‘전쟁’, ‘부패’, ‘후진성’ 같은 부정적인 키워드로만 일반화되어 있다”며 “이러한 사전들은 전 세계 학습자와 독자들에게 편향된 이미지를 무비판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문제의식이 컸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보캐블러리닷컴이 우리가 지적한 문제에 공감하고 실제로 정의를 시정한 첫 번째 사례가 된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며, 앞으로도 다른 사전들에 꾸준히 피드백을 보내며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겠다”고 덧붙였다.

이번 시정은 단어 정의 하나의 문제를 넘어서, 해외 주요 사전들과 같은 공신력 있는 매체들이 무심코 전파할 수 있는 편견과 차별을 바로잡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진다. 반크는 과거에도 유사한 방식으로 한국 문화를 세계에 올바르게 알리기 위한 캠페인을 펼쳐왔다.

대표적인 사례로, 영국 콜린스 사전에 ‘Hanbok(한복)’이 한국의 전통 의상으로 정식 등재되도록 성공적으로 유도한 바 있다. 이는 중국이 한복을 ‘한푸’로 주장하며 문화공정을 펼치는 가운데, 반크가 영문 설명과 자료를 제공하고 직접 설득에 나서 거둔 성과다. 이 외에도 ‘Samgyetang(삼계탕)’, ‘Gat(갓)’, ‘Jikji(직지)’ 등 다양한 한국 문화유산의 영문 등재를 위해 지속해서 활동 중이다.

한편, 반크는 국내 초·중·고등학교 교과서 내 아프리카 서술 역시 문제의식을 갖고 시정 캠페인을 전개해 왔다. 반크가 분석한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 5종과 중학교 사회 교과서 5종에서는 아프리카가 원조와 봉사의 대상으로만 묘사되거나, 기아·내전·질병 중심의 부정적 이미지로 편향된 서술이 다수 발견됐다. 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 3종에서는 유럽의 신항로 개척 과정에서 당시 아프리카의 문명을 배제하거나 사라진 것처럼 표현한 사례도 확인되었다. 이에 반크는 교육부와 교과서 제작사에 공식적인 시정 요청을 진행한 상태다.

박기태 반크 단장은 “이번 보캐블러리닷컴 시정은 단순한 외교적 항의가 아닌 한국 청년이 세계 사전 플랫폼의 변화에 실질적인 영향을 준 사례로, 아프리카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바로잡기 위한 작지만 중요한 성과”라고 평가했다. 그는 “우리가 조사한 다수의 사전들은 여전히 ‘피그미(Pygmy)’, ‘부시맨(Bushman)’, ‘Dark Continent(암흑 대륙)’과 같은 식민주의적이고 인종차별적인 용어들을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수록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잘못된 인식이 전 세계로 확산될 위험이 크다”며 “이런 현실 속에서 이번 시정은 매우 고무적인 성과이며, 반크는 앞으로도 이런 문제들을 바로잡기 위한 활동을 지속적으로 이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크는 앞으로도 영어권 사전과 해외 교과서는 물론, 디지털 백과사전과 글로벌 교육 자료를 대상으로 분석과 개선을 이어가며, 아프리카와 세계 다양한 지역에 대한 균형 잡힌 이해를 널리 확산시켜나갈 계획이다.



이수진 기자 sujinl2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