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월 백악관 집무실에서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바라보며 미소 짓고 있다. 워싱턴|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월 백악관 집무실에서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바라보며 미소 짓고 있다. 워싱턴|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내년 여름 개막하는 2026북중미월드컵 개최지를 두고 강경 발언을 내놨다.

글로벌 스포츠 매체 ‘디 애슬레틱’은 27일(한국시간) “트럼프는 25일 워싱턴의 백악관 집무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대회는 아주 안전할 것’이라고 장담하면서도, 치안 문제나 행정 협조가 부족하다고 판단되는 도시에서 경기를 빼앗아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다는 뜻을 시사했다”고 밝혔다.

한 기자가 시애틀과 샌프란시스코를 언급하자 트럼프는 “그곳은 급진 좌파 미치광이들이 운영하고 있는 도시”라며 거침없이 비난했다. 이어 “조금이라도 위험하다면 우리는 월드컵 경기를 옮길 것”이라고 강조했다. 두 도시는 각각 루멘필드와 리바이스 스타디움에서 월드컵 경기를 여섯 차례씩 치르기로 예정돼 있다. 루멘필드는 미국 대표팀의 조별리그 두 번째 경기가 열릴 장소이기도 하다.

문제는 현실성이다. FIFA는 2월 이미 미국 11개 도시, 멕시코 3개 도시, 캐나다 2개 도시를 확정하며 경기 일정을 발표했다. 도시별로 막대한 예산과 인력을 투입해 준비에 나선 상황에서 개최지를 변경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무엇보다 트럼프 대통령은 FIFA와의 계약이나 대회 운영상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

트럼프 정부는 최근 월드컵 보안 지원 명목으로 6억2500만 달러(약 8812억 원)를 책정했다. 이 자금은 11개 개최 도시가 필요에 따라 나눠 쓰게 되는데, 대통령이 이를 무기 삼아 특정 도시를 압박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월드컵 준비에 한창인 시애틀과 샌프란시스코는 물론, 애틀랜타, 보스턴, 댈러스, 휴스턴, LA, 캔자스시티, 마이애미, 뉴욕, 뉴저지, 필라델피아 등 미국의 모든 개최 도시가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트럼프는 워싱턴의 치안을 언급하며 “이제 범죄가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불과 두 달 전 ‘범죄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연방군을 투입했던 도시를 두고 내놓은 발언이라 모순적이라는 비판이 뒤따른다. 그는 또 “시카고와 멤피스에도 곧 들어갈 것”이라며 월드컵과 올림픽을 거론, “조금이라도 위험하다면 절대 허용하지 않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개최를 8개월여 앞둔 북중미월드컵이 벌써부터 정치적 신경전에 휘말리면서, 전 세계 최대 축구 축제가 트럼프의 ‘안보 카드’에 어떤 영향을 받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백현기 기자 hkbaek@donga.com


백현기 기자 hkbae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