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최고두임금세종-정조의대조적리더십

입력 2008-01-16 09:2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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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세종과 정조를 다룬 TV 사극이 인기다. 이 열풍이 학술 출판계로 이어져 두 임금을 소재로 한 소설과 학술 서적, 논문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박현모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교수가 최근 동양철학 비평지 ‘오늘의 동양사상’ 2007년 가을·겨울호에 기고한 ‘세종과 정조의 리더십 스타일 비교’. 박 교수는 정조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세종과 정조를 집중적으로 연구해 온 학자이다. 박 교수가 내린 결론부터 옮기면 세종은 ‘뒤에서 미는’ 방식의 지도자였던 반면 정조는 ‘앞에서 끄는’ 스타일의 지도자였다. 두 임금은 우선 회의 운영 방식에서부터 달랐다. 세종은 신하들에게 발언 기회를 최대한 주고 이를 경청하는 스타일로 회의를 진행했다. 정조는 어전 회의를 시종 주도하면서 신하들의 과도한 발언을 견제하는 데 주력했다는 것이 박 교수의 분석이다. 세종은 충분한 찬반 토론을 거쳐 정책의 장단점이 드러나게 한 뒤 일을 주관하는 사람에게 전적으로 맡긴 반면 정조는 목표를 정해 놓고 신하들의 동참을 설득했다는 것. 이런 차이는 당시의 ‘싱크탱크’였던 집현전과 규장각을 운영하는 데 있어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세종은 과제를 집현전 학사들에게 던져 놓고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그러나 정조는 규장각에서 신하들을 직접 가르치기까지 했다고 박 교수는 전했다. 박 교수는 리더십의 차이가 컸던 이유로 두 임금의 집권 당시 상황의 차이를 들었다. 세종은 부왕 태종이 공신과 외척을 모두 제거해 준 덕택에 개혁을 추진하는 데 장애가 없었다는 것. 반면 정조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라는 핸디캡을 안고 있었고 세종 시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붕당(朋黨) 간 대립구도 속에서 왕권을 지켜야 했다. 분석에 따르면 두 임금은 말투와 성격에서도 차이를 보였다. 세종은 신하들의 비판이 날카로워도 일단 긍정하면서 대화를 시작하는 스타일이었지만 정조는 다소 논쟁적이었다는 것. 기록을 보면 “그렇지 않다” “경들이 하는 일이 한탄스럽다”는 정조의 말이 자주 등장한다. 또 세종은 좀처럼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내향적 성격이었지만 정조는 신하들보다 더 말을 많이 해 비판을 받을 정도로 ‘다변(多辯)’이었고 격정적인 성격을 지닌 것으로 전해진다. 리더십에선 차이를 보였지만 국정 운영의 목표는 다르지 않았다고 박 교수는 강조했다. 두 임금 모두 신하와 백성의 소리를 잘 듣는 것에 국정의 출발점을 뒀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을 정치의 궁극 목적으로 삼았다고 분석한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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