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아의‘푸드온스크린’]브런치먹는다고뉴요커?

입력 2008-03-31 00: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미국 HBO가 당초 큰 기대 없이 만들었다는 ‘섹스 앤 더 시티’는 이제 히트 드라마를 넘어선 국제적인 문화 현상이 되었다. 우리에게 이 드라마는 '미드 폐인' 양산의 시발점이었고 뉴욕에 대한 짝사랑의 단초이고 쇼핑과 레스토랑 순례의 '쿨'한 이유가 되어주었다.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우리 나라 여자들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오래, 또 강하게 받아들인 것은 브런치와 하이힐이었다. 특히 브런치에 관한 열광은 서울 강남 레스토랑의 지형도를 바꾸어 놓았다. 많은 레스토랑들이 앞다투어 빵과 달걀, 햄의 조합과 우유, 커피, 주스, 과일을 곁들인 브런치로 메뉴를 바꾸었다. 사실 뉴요커들에게 주말 브런치는 어쩌면 필연적인 선택이다. ‘섹스 앤 더 시티’에서 브런치는 네 주인공들이 주말 오전에 만나 수다를 떨며 편하지만 스타일이 돋보이는 패션을 선보이기에 알맞은 장면의 무대였다. 하지만 뉴욕 시민에게 브런치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의 하나다. 기초적인 조리만 겨우 가능한 주방이 딸려 있는, 때로는 그런 시설도 없는 좁아터진 아파트에서 음식 해 먹기도 싫고 해 먹을 수도 없는 그들이 점심 시간 전 문을 여는 식당에 나가 비슷한 사정의 친구들과 늘쩡거리며 여유로운 늦은 아침을 먹는 것. 브런치는 그런 식사의 한 형태일 뿐인 것이다. 서울에서 브런치를 즐기는 것도 뉴욕처럼 독립생활자가 늘고 있으니 비슷한 패턴일 수 있다. 하지만 브런치 자체가 이벤트인 식사라면 고개는 한 쪽으로 기울어진다. 아무리 작은 집도 기본적인 조리시설은 있는 서울에서, 또 웬만하면 엄마 혹은 아내가 주스 한 잔이라도 아침을 차리는 우리네 정서에서, 브런치 먹겠다고 아침 일찍 일어나 드라마 속 그녀들처럼 머리 하느라 꼭두새벽부터 미용실 갔다와서 몇 십분 씩 달려가 먹는 에그 베네딕트가 과연 뉴요커 같은 브런치일까. 무엇처럼 살고 싶다는 희망은 분명한 개인적 영역의 일이다. 하지만 뉴요커처럼 살고 싶어 그 껍데기만 따라하는 것이 과연 그렇게 살고 싶다는 희망에 맞는 것일까. 최근 한 특급 허텔이 뉴욕의 디저트 숍‘페이야드’와 라이센스를 맺고 1호점 문을 열었다.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캐리가 ‘마놀로 블라닉’ 구두를 신고 “뉴욕에서 최고의 디저트를 먹을 수 있는 곳!”’이라며 특유의 행복한 표정을 지은 장면으로 유명한 그 곳이다. ‘페이야드’는 미국 유명 식도락 비평지 ‘자갓 서베이’에서 뉴욕에서 가장 맛있는 패스츄리와 초콜릿 제과점으로 인정받은 곳이다. 뉴욕까지 가지 않고 세계적인 요리사의 솜씨를 맛볼 수 있는 곳이 서울에 생겼다는 기대가 캐리가 간 가게를 가고 싶다는 열망보다 더 '뉴요커', 아니 '서울러' 같은 생각 아닐까. 서울에서 뉴요커처럼 살 수 있겠나. 여기는 서울인데. 조경아ㅣ칼럼니스트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