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화번역가이미도“편한번역보단펀(pun)한번역”

입력 2008-04-1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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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다운로드영화번역,재미넘어시장축소시킬뿐이다”
“미도리는 일본어로 초록 빛깔이라는 뜻입니다.” 앙상했던 가지들이 이곳저곳 ‘푸른’ 새순을 드러낸 봄날, 미도 Lee를 만났다. 극장 관객이라면 익히 이름 석자로도 친근한 외화번역가 이미도다. 이름 자체가 바로 그를 표현한다. 아름다운(美) 길(道)을 걸으라는 아버지의 뜻과 그가 말한 ‘푸른 빛’도 있다. 바다에서 갓 낚아 올린 등 푸른 물고기처럼, 이미도는 언제나 생생한 영어의 바다를 헤엄친다. 영화는 항상 현재의 언어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매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첫 번째 책 제목도 ‘이미도의 등푸른 활어 영어’(디자인하우스)다. ‘할리우드에서 막 건져 올린 펄펄 뛰는 영어표현들’을 독자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관객보다 항상 영화를 먼저 보는 성향 탓일까. 인터뷰도 약속 시간보다 먼저 도착했다. 영화 번역 작업도 마감 시간을 단 한 번도 넘겨본 적이 없단다. 일에 싫증을 느낀 순간조차 없다. 15년 동안 450여 편의 영화를 번역했다. 번역 일은 한편으로 괴롭지만 더없이 행복한 놀이였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장미꽃밭에서 맨발로 춤추기’라고 했다. 가시에 찔리는 고통을 수반해도 매순간 새롭고 즐거운 게 번역이다. - 영화 번역을 시작한 계기는? “다른 식으로 표현을 안 하는 게 신기할 정도로 ‘얼떨결에’ 시작했다.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 미국영화의 한국배급 판권을 사는 일을 했다. 보도 자료도 만들고 영화사에 가서 영화를 소개 했다. 그때 직접 번역을 해보지 않겠냐는 제의를 받고 얼떨결에 시작한 게 93년 영화 ‘블루’였다.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블루’, ‘레드’, ‘화이트’ 삼색시리즈 중 첫 번째 영화다.” - 영화 번역이 사랑스러운 이유? “개봉될 영화를 미리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영화에 대한 정보를 나만 알고 있어야 한다. 항상 새로운 내용이라 매너리즘에도 안 빠진다. 항상 새 영화를 보기 때문에 새 책을 만나듯 신선하다. 번역가 이전에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으로서 다음번에 어떤 캐릭터를 만날까 기대하면서 설렌다. 전문영역은 도움을 청하기도 하고 공부가 되는 작업이라 좋다.” - 번역은 출퇴근 시간이 없다? “프리랜서라는 게 불편하고 힘들 수도 있지만 일정한 작업환경을 만들고 나면 내가 원하는 시간에 일하고 맞추면 된다. 주어진 시간 안에 마음껏 시간을 쓰기 때문에 정신적 스트레스가 덜하다. 번역은 제2의 창작이라서 구상을 하면서 또 즐겁다. 영화는 엔터테인먼트다. 그것과 관계되는 번역이 나를 ‘엔터테인’하니깐 지금껏 다른 분야로 한눈 팔 겨를이 없었다.” - 번역은 절제력이 필요한 작업? “번역하기 전에 영화 못지않게 내 감정도 파도처럼 격랑에 시달린다. 각본만 읽고도 울컥해 울기도 하고, 주먹을 불끈 쥐기도 하고, 오싹오싹한 감정도 느낀다. 영화는 항상 도입부 10분에 한 방 쳐준다. 복선도 있고, 반전의 암시도 있다. 15분 쯤 남겨두고선 확 뒤집는 일도 있다. 그렇게 빠져들지만 마감 시간을 꼭 지켜야 한다. 그래야 또 다음 작품을 하니깐.” - 인터넷에서 다운받은 영화를 보는가? “보지 않는다. 일선 현장에서 미리 보기 때문에 다운받을 필요가 없다. 어떻게 하는지도 잘 모른다. 좋아하는 영화는 DVD로 소장한다. 재미 때문에 혹은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고 인터넷 영화를 번역하는데, 번역 시장에 진입하기 위한 선한 의도가 왜곡돼 안타깝다. 도리어 시장이 줄어들 뿐이다. 미국 영화 제작사의 규제가 더 엄격해졌다. 번역가들에게 영상자료가 제공되곤 했는데 이제 제공도 안 한다. 영화 제작인의 한 사람으로서 마음이 편하지 않다.” - 한 달에 몇 편씩 번역하나? “연간 외화가 200편 가량 들어온다. 스무 명 정도가 영화 번역에 종사하는데, 한 사람당 10편 정도다. 거의 한 달에 한 편씩 한다고 봐도, 번역만 하고 살면 어려움이 있다. 현실을 냉정하게 말하면 번역가를 양성한다는 학원들은 장사일 수밖에 없다. 비디오·DVD 대여점도 거의 사라지고 있다. 수요와 공급을 놓고 보면 장사하는 교육 기관만 많다.” - 번역할 때 특히 신경 쓰는 것은? “유행어, 속어를 쓰기 싫어한다. 아무리 흥행을 의식한다고 해도 그렇게 번역하는 것은 게으른 번역, 성의 없는 번역이다. 가급적 영화에 맞는 새로운 표현을 만들어내더라도 짧고 간결하게 쓰려고 노력한다. 중의적인 의미가 담긴 언어유희를 좋아한다. 영화를 많이 본 탓이기도 하다. 할리우드 대중문화는 펀(pun, 언어유희)을 굉장히 즐긴다.” - 번역, 영화 말고 좋아하는 것은? “스키, 등산, 골프 등 운동은 두루두루 좋아한다. 동계올림픽 하는 스키장은 다 다녀보는 게 꿈이다. 학교 다닐 때 별명은 공포의 빨간 팬츠, 가미가제였다. 축구도 좋아했고 핸드볼 퍼스트 쇼터로 활동했다. 육상은 대학 졸업 할 때까지 항상 마지막 조에서 달렸다. 스포츠 하면 건강이고, 건강한 생각을 위해 스포츠를 즐긴다.” 변인숙 기자 baram4u@donga.com 사진=김종원 기자 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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