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용·왕영은의행복한아침편지]여봉나용서해줄거지?

입력 2008-04-1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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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가을 구두쇠 남편이 새 차를 구입하자, 저는 그 동안 장롱에만 넣어둔 운전면허증을 슬쩍 꺼내보았습니다. 남편이 10년 동안 끌고 다닌 차는 수동 기어라서 그동안 운전을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이번엔 오토매틱이라 저도 한번 몰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남편한테 운전연수 좀 시켜달라고 졸랐습니다. 남편은 제가 새 차를 몰고 연수를 받겠다고 하니, 놀란 토끼눈이 돼서 “뭐시여? 운전? 아니 당신이 뭐덜라고 운전을 배운디야?” 하면서 못마땅해 했습니다. 하지만 전 그런 남편을 억지로 조수석에 태우고, 다음날 당장 연수를 시작했습니다. 마침 집 가까운 곳에 박물관이 있어서 그 넓은 주차장에서 운전 연습을 했답니다. 그리고 비어있는 주차장을 돌면서 코스 연습을 했는데 이만하면 도로로 나가도 괜찮겠다 싶었습니다. 물론 남편은 옆에서 서른 바퀴는 더 돌라고 그랬지만, 저는 그 말을 무시하고 좌회전을 해서 다른 차들과 합류하는 도로로 들어갔습니다. 그 때 옆에서 웬 차 한 대가 “빵빵!” 하면서 휙 지나가 버립니다. 순간 얼마나 놀랐는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남편이 화를 내면서, “당신 머하는 거시여? 차가 옆에서 오는디. 워째 앞에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가는 거여? 당장 내려. 운전은 내가 할텡께!” 하고 소리 소리를 지릅니다. 그렇게 남편과 한바탕 싸우고 집으로 왔는데, 어찌나 분통이 터지던지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이불을 깔고 냅다 누워버렸습니다. 하지만 생각할수록 오기가 생겨서 저는 막내 도련님께 전화를 걸었습니다. 저희 막내 도련님은 남편과 달리 성격이 아주 끝내주게 좋았습니다. 그렇게 이번엔 도련님을 옆에 태우고, 광주 시내를 돌기 시작했는데, 처음엔 엄청 긴장됐던 운전도 한두 시간 지나니 금방 자신감이 붙었습니다. 저는 내친김에 고속도로도 타보고, 비포장도로도 달려보고 아주 신나게 달렸습니다. 그런데 그 때 남편한테서 전화가 오더군요. “당신 지금 어데여? 차는 괜찮은 거여? 어데 긁히고 그런 거 아니재?” 이럽니다. 전화해서 첫마디가 차 어디 안 긁혔냐는 소리라니! 어쩜 마누라 걱정은 하지도 않을까요? 어쨌든 그렇게 운전 연수를 마치고 아파트 주차장에 주차를 했습니다. 아무 탈 없이 다섯 시간 동안 광주 시내를 누볐다는 자신감 때문에 저는 기분이 아주 좋았습니다. 그래서 도련님한테 들떠서 얘기를 하다가, 그만 주차한다고 브레이크를 밟는다는 게 실수로 액셀러레이터를 콱 밟고 말았습니다. 차는 그대로 화단으로 들어갔고, 앞에 있는 나무를 그대로 들이박았습니다. 자동차 앞 범퍼와 옆 범퍼가 완전히 찌그러지고, 와이퍼도 휘어지고, 헤드라이트까지 덜렁덜렁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만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도련님을 보고 “도련님 나 어떡해? 이제 3일 된 차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으니, 나 진짜 어떡해?” 하면서 엉엉 울어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때 또 남편이 전화를 한 겁니다. “어디야? 도대체 뭐 하는데 아직도 안 와? 당신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야?” 하는데, 어찌나 큰 목소리로 윽박지르던지…. 저는 그만 수화기를 붙잡고 엉엉 울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도련님이 제 전화기를 뺏어서 사고가 났다는 얘기와, 카센터 위치를 알려주었습니다. 잠시 후 남편이 택시를 타고 찾아왔는데,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서 마치 홍콩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표정을 지었습니다. 전 너무 겁이 나서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쳤는데, 이 사람이 절 보자마자, 제 어깨를 덥석 잡더니, “당신 괜찮은 거야? 어디 다친 데 없어? 어디 봐” 하면서 제 몸을 구석구석 살펴봤습니다. 저는 남편이 오자마자 차부터 볼 줄 알았는데, 순간 꽤나 당황됐답니다. 무뚝뚝하기만 한 줄 알았는데, 그래도 제 걱정이 됐긴 됐던 모양입니다. 비록 남편의 새 차는 그 날 이후, 3일 만에 다시 공장으로 들어가는 중고차 신세가 됐습니다. 그래도 전 8년 동안의 결혼생활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고 느꼈습니다. 그 날의 남편을 보면서 말이죠. 광주시 운암동 | 송은옥 행복한 아침, 정한용 왕영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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