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익감독“Herstory?김추자식절절함으로풀었죠”

입력 2008-07-1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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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개봉‘님은먼곳에’연출…“수애,당시여인들의정서빙의”격찬
소설 ‘칼의 노래’의 작가 김훈은 자신의 언론 칼럼을 묶은 ‘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생각의 나무)의 ‘양희은, 김추자, 심수봉’에서 이렇게 썼다. ‘김추자는 어지럽다. 김추자 목소리의 본질은 환각과 도발이다. 김추자의 여성성은 내연기관처럼 끊임없이 폭발하고 배기한다.(중략) 사랑을 노래할 때 김추자의 목소리는 사랑을 손짓해 부르기보다는 사랑을 부르고 있는 자신의 내면을 가열차게 터뜨려버린다. 그래서 김추자의 노래는 때때로 상대가 없는 독백처럼 들린다. 이 독백은 맹렬한 독백이다.’ 김훈의 시선을 따라가자면, 이준익 감독의 24일 개봉작 ‘님은 먼곳에’(제작 영화사 아침, 타이거픽쳐스) 속에서 수애의 목소리로 불려지는 김추자의 노래는 절창에 가깝다. 젊은 후배가수들에 의해 리메이크된 명곡 ‘님은 먼곳에’와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늦기 전에’는 절절하게 들리고 그 노랫말로 드러나는 이야기는 처연하다. 1971년, 순이(수애)는 가부장의 가치에 짓눌린 시어머니에게 등 떠밀린 채, 베트남의 참혹한 전장으로 남편을 찾아 험난한 여정을 떠나간다. 그 전장의 한복판에서 순이는, 김추자처럼 ‘끊임없이 폭발하고 배기’하지는 않지만, ‘사랑을 손짓해 부르기보다는 사랑을 부르고 있는 자신의 내면을 가열차게 터뜨려버’리는, ‘상대가 없는 맹렬한 독백’을 펼쳐내고 이준익 감독은 그 여자의 절절하고 처연한 이야기를 잘도 포착해냈다. ‘님은 먼곳에’에서 김추자와 순이 그리고 수애는 그렇게 절묘하게 만났다. 그것은 여성의 목소리와 시선으로 전하는 현대사의 아픔이기도 하다. 이준익 감독은 그렇게 하기 위해 김추자를 실제로 여러 차례 만났다. “극중 수애의 노래와 춤에 대해 설명하니까 일어나서 춤을 추며 옛 시절을 얘기하는데, 멋있더라고. 여전히 열정이 장난이 아니었어.” 그에게 김추자는 무엇일까. “수줍고 각별한 첫만남이다.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0년대 말, 미국의 젊은이들이 반전운동을 벌이며 우드스톡 페스티벌에 몰려들었을 때 무대에 선 제니스 조플린의 목소리를 김추자에게서 들었다. 영혼 깊숙한 곳에서 배어나오는 소리. 김추자의 목소리가 바로 그렇다.” 1970년대 초, 관능적이며 끈적이는 몸짓과 목소리로 노래한 김추자를 “수줍고 각별하게” 만난 그는 초등학교 6학년 시절, “골목길에서만 논 탓에, 아는 동요라곤 없었다”면서 그녀를 불러댔다. “오락시간에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를 불렀지. 부르는데 창피하더라고. 얼굴은 뻘개지고. 얼떨결에 춤까지 춰버렸지, 뭐! 선생님이고 아이들이고 모두들 황당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거야, 하하하!” 그때 아직은 그 절절한 음색의 실체를 채 알지 못했지만 이제 어른이 된 그는 ‘님은 먼곳에’로 와서 그녀의 노래와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영화로써 풀어냈다. 수애는 그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 적역인 배우라고 그는 설명했다. “수애? 1970년대 우리 어머니들의 젊은 시절 모습 혹은 이미지를 가장 많이 지닌 얼굴이야. 잘 들여다봐. 쉽게 드러내지 않지만 생각이 많은 얼굴이지. 자신을, 생각을 내세우기보다 타인의 생각을 존중(해야)했던 여성들, 그리고 버텨내고 궁극에는 이겨낸 사람들. 그들이 바로 우리 어머니이고 순이야. 감정을 표정으로 연기하지 말고 심정으로 연기하라고 했어.” 이준익 감독은 수애가 그래서 “심정이 몸에 싹 빙의된 것처럼 연기했다”며 찬사를 보냈다. 실제로 ‘님은 먼곳에’에서 수애는 비교적 적은 양의 대사보다 노래로써 극중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감독에 따르면, 그것은 “‘herstory’이기” 때문이다. ‘황산벌’과 ‘왕의 남자’, ‘라디오 스타’와 ‘즐거운 인생’ 속에서 신산하게 살아가던 사내들을 떠올리며 ‘님은 먼곳에’의 순이라는 여자를 전면에 내세운 건 왜였을까 라고 물은 뒤에 그는 그렇게 답했다. “인류가 기록해온 역사는 지난 20세기 동안 남자의 것인 ‘history’였다. 하지만 21세기는 ‘herstory’의 시대다. 그 시대가 시작된다. 1970년대 여성은 남성 앞에서 리액션만 해야 했다.” 그렇다고 이 감독은 신산스런 남자의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전작들에서처럼. 남자들은 순이의 전쟁 속 험난한 여정을 함께 한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세상에서 여전히 괴롭기만 하다. “과도한 국가관을 강요받던 시대,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던 그 시대 속 남자들의 다양한 모습”을 순이의 주변에 펼쳐놓았다. 그렇게 말하는 이준익 감독의 손도 작지만 투박하다. 어떤 이의 것처럼 크지 않지만 거뭇거뭇하게 그을린 피부색은 힘겨운 노동의 징표처럼 보였다. 굵직하거나, 얇지만 손등의 그 거뭇한 살갗 밖으로 울툭불툭 불거져나온 힘줄은 책임감의 성실한 흔적이었다. 이준익 감독은 지금, 그 같은 노동과 책임감으로 살아온 어머니들의 시대가 젊은 관객들에게 온전하게 다가가기를 바라고 있는 듯했다. “지난 시대의 대중음악이 세대를 이어주고, 또 정서를 공유하게 해주었으면 한다”며 자신의 영화 속에 김추자를 녹여낸 것처럼.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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