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아버지막둥이에희망주세요

입력 2008-08-0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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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섭씨 30도가 넘는 무더운 날에 우리 자매는 아버지의 산소를 찾았습니다. 사실 제가 맏이이긴 하지만, 항상 동생이 맏이의 역할을 하며 저를 이끌어갔습니다. 그 날도 한 달 전부터 약속을 해서 산소에 갔습니다. 동생이 더운데도 아버지 산소를 찾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2년 전에 유방암 수술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암이라는 병이 수술보다 그 이후의 치료와 관리가 이렇게 힘든 줄 미처 몰랐습니다. 항암주사를 맞고 한웅큼씩 빠지는 머리카락에 제가 더 놀라 충격을 받았습니다. 동생은 오히려 제게 “언니, 나 꼭 골룸같지?”라며 저를 웃기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동생의 속은 또 어떻겠습니까? 결혼도 적령기가 지나 이제는 독신을 고집하며 살아가는 동생에게 차라리 남편이라도 있으면 고통과 슬픔을 나눌 수 있으련만…. 언니인 제가 그 몫을 대신하기에는 너무도 역부족인 것 같았습니다. 수다를 떨면서 산소 잡초 정리를 하는데 동생이 “언니, 지금에서야 말하지만 내가 정말 오래 살 수 있을까? 내가 살았을 때 한 번이라도 아버지를 더 찾아뵜으면 해. 우리 바쁘지만 자주 시간 내서 찾아뵙자!”라고 하는 겁니다. 저는 정말 가슴이 뜨끔했습니다. 오히려 제가 먼저 그런 제의를 했어야 했는데, 저보다 생각이 앞서는 동생에게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얼른 “무슨 그런 말을 하니? 니가 왜 오래 못살아? 앞으로 3년간만 잘 관리하면 백살은 더 살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동생은 건강을 위해서라도 푹 쉬어야 합니다. 그런데 수술을 하고 나서 잠깐의 휴식을 제외하고는 학교일을 계속 하느라 몸이 많이 지치고 약물 부작용으로 갑상선 기능에까지 이상이 왔습니다. 일은 그만해도 되지 않냐고 말려봤지만 자긴 지금 만족스럽고 행복하다는 겁니다. 이런 동생을 보고 있자니 언니로서 너무도 무능하고 못난 내 자신이 밉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아버지 산소정리를 하면서 아버지와 많은 대화를 했습니다. 당신의 막둥이가 투병 중인 걸 아시는지, 우리의 손이 닿지 않는 먼 곳에 계시지만 동생에게 힘과 용기를 불어넣어 달라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막내를 유난히 예뻐하셨는데, 저는 왜 그리도 질투가 났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러셨습니다. “막내는 누구를 막론하고 다 불쌍하단다.” “왜요?” “가장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기 때문이지.” 어릴 땐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지만 제가 부모가 되고 보니 아버지의 그 깊은 뜻을 알겠습니다. 우리 둘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마주보며 아버지께 오기를 잘했다며 자주 찾아뵙자고 했습니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가파른 산을 내려오면서 앞으로도 20년, 30년 계속 동생과 함께 아버지의 산소를 찾아뵐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했습니다. 서울 성북|김혜경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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