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소도둑?제듬직한여보랑께

입력 2008-08-0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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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TP ID=5061655.1.1.jpg>지금으로부터 24년 전, 제 나이 스물여섯 때의 일입니다. 저는 그 시절 맞춤 의상실 사장님으로 남들의 부러움을 받으며 살아왔습니다. 그땐 ‘아가씨 사장님’ 소리 듣는 게 너무 좋았습니다. 그런데 친구들이 하나 둘 짝을 만나 시집을 가고, 제가 놀자고 전화를 하면 “시부모님 오신다”, “신랑이랑 외식한다”, “아기가 아프다” 등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아무도 절 만나주지 않자 점점 심심해졌습니다. 그래서 저도 시집을 가려고 마음을 먹고 주변에 소문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저희 엄마였습니다. 하나 둘 선자리가 들어오기 시작하는데, 저는 나가지도 못 하게 했습니다. 엄마가 제 선자리에 나가 퇴짜를 놓고 오시는 겁니다. “성씨가 양반이 아니라서∼” “게으르게 생겨서∼” 이렇게 저렇게 흠을 잡으며 퇴짜를 놓으셨습니다. 정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엄마가 갑자기 전화를 하셔서 “야∼ 야∼ 니 빨리 초원 다방에 나가봐라 잉∼” 하셨습니다. 제가 왜 갑자기 다방에 가냐고 했더니 “아∼ 나가보면 안 다니께∼ 가보면 참한 총각하나 있는디, 그 짝이 니 짝이여∼ 내가 보니께 종교도 됐고, 덩치도 됐고, 사내 자슥이 얼굴에 돈이 덕지덕지∼ 붙은 게 완전히 복상이여! 한마디로 그 머시냐 두꺼비 상!! 후딱 갔다 오니라 잉∼” 하셨습니다. 도대체 어떤 남자기에 안목 높은 우리 엄마 혼을 쏙∼ 빼 놓았을까 싶어서 저는 굉장히 멋진 남잔가 보다 기대를 했습니다. 가게에서 제일 좋은 옷으로 갈아입고, 머리도 신경 쓰고, 꽃단장도 해서 다방에 갔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다방을 둘러봐도, 저랑 맞선 볼 남자가 보이질 않는 겁니다. 물론 한쪽구석에 적어도 마흔은 되어 보이는 아저씨가, 짧은 스포츠머리를 하고 앉아있는 게 보였습니다. ‘설마 저 사람은 아니겠지’ 하면서 다방 안을 두리번거리고 있었습니다. 그 때, 그 마흔은 되어 보이는 아저씨가 손을 번쩍 들더니 제 이름을 부르는 겁니다. 얼굴은 완전 소도둑처럼 생겼고, 얼굴은 시커먼데, 덩치는 산만했습니다. 정말! 정말! 정말! 아니었습니다. 맘 같아선 못 본채 하고 그대로 돌아서고 싶었습니다. 극성맞은 저희 엄마가 또 한 소리 하실 것 같아 이를 악물며 그 앞에 앉았습니다. 그 남자는 저랑 마주앉자 꼭 바보같이 자꾸 히죽히죽 웃어댔습니다. 전 급한 마음에 우선 나이부터 물어봤습니다. “저기 실례인 줄 알지만서도 그 짝 나이가 어찌 되요?” 했더니, “워매∼ 현애씨는 지 나이도 모르고 나왔는교? 지 올해 군 제대 허고, 순애씨랑 동갑인 스물 여섯이구마이라∼” 했습니다. 전 그래도 너무 마음에 안 들어서, 골탕 좀 먹어봐라 하고, 황당한 질문들을 해대기 시작했습니다. “근디 연천 씨는 남북통일이 언제쯤 될 것 같은교? 그라고, 우리나라 경제가 어려운디 앞으로 전망은 어떻게 보쇼잉?” 이렇게 마구 마구 물어봤더니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대답을 다 해댔습니다. 그 모습이 참 우습기도 하고 귀엽기도 했지만, 그래도 이 남자는 아니다 싶어서 “그럼 지는 가게에 급한 볼일이 있응께∼ 이만 먼저 실례하겠어라∼” 하고 후딱 자리를 피해버렸습니다. 하지만 엄마의 반응은 달랐습니다. “아무리 봐도 그만한 인물이 없는겨∼ 늬는 나이만 묵었재∼ 남자 보는 눈이 없응께, 시끄럽게 허지 말고 시키는 대로 해라 잉∼ 얼긋재?” 하더니 제 의견은 무시한 채 일사천리로 그 사람과 약혼까지 시키신 겁니다. 그런데 이상한 게 약혼을 한 다음부터, 그 시커먼 얼굴도 쫌 하얘지는 것 같고, 소도둑 같이 생긴 얼굴도 좀 귀엽게 느껴졌습니다. 조금씩 정이 느껴지면서 흔들리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 해 가을 저는 그 남자와 결혼했습니다. 지금은 아들 둘, 낳아서 알콩달콩 잘 살고 있습니다. 저희 남편은, 저랑 고기집 가면 제가 실컷 먹을 수 있게 고기 잘 구워 제 앞에 놓아주는 자상한 남자입니다. 제가 티셔츠라도 사주려고 하면, 남자는 아무거나 입어도 괜찮지만, 여자는 예쁘게 입고 다녀야 한다며 제 옷부터 사라고 재촉합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때 엄마 말 듣기 잘 했다 싶습니다. 좋은 인연 만들어주신 저희 엄마 너무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더 잘 사는 모습 보여 드리겠습니다∼! 전남 순천|권현애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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