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무대에서 주목받고 있는 중국교포 감독 장률의 영화 ‘이리’. 내년 방송될 예정인 드라마 ‘돌아온 일지매’.
공통점은 전혀 없는 것 같다. 영화와 드라마, 스크린과 TV라는 장르가 다르기 때문은 아닌 것 같다.
하나는 10개 스크린이라는 작은 규모로 개봉되는 작가주의 영화. 다른 하나는 내년 지상파 채널을 통해 선보이는 대형 드라마. 정말 다르다.
하지만 그 가운데 윤진서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제 갓 스물다섯. 앞으로 길이 창창하다. 최근에는 오락영화와 지향점이 다른 ‘비스티 보이즈’와 ‘이리’를 통해 뚜렷이 다른 자신만의 길을 걸었다. 그런데 갑자기 색깔이 전혀 다른 TV드라마를 택했다. ‘돌아온 일지매’를 촬영하고 있지만 다시 ‘이리’의 슬픈 진서로 돌아온 그녀에게 물었다. “왜 갑자기 TV 드라마?”.
돌아온 답은 예상 밖이었다. “스타가 되고 싶어요” 스타? 데뷔 후 영화에서만 활동했기 때문에 드라마를 통해 더 많은 대중적 인기를 쌓이겠다는 말인가? 하지만 착각이었다. 윤진서는 생각도 못했던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제가 스타가 되면 단 한명의 관객이라도 더 작은 영화에 관심을 가져주지 않을까요? ‘이리’ 개봉관이 딱 10개에요. 전 앞으로 ‘이리’같은 작지만 소중한 영화 많이 하고 싶어요.”
그녀는 예로 일본 영화를 들었다. “일본 독립영화에는 오다기리 조 등 많은 스타들이 출연하고 있어요. 하지만 우리나라 독립영화는 사정이 많이 다릅니다. 제가 드라마에 계속 출연해 스타가 되면서 계속 독립영화를 찍으면 조금이라도 나아지지 않을까요? 너무 거창한가요? 하지만 꼭 그렇게 됐으면 좋겠어요”
진지한 표정으로 되묻는 윤진서에게 영화가 갖고 있는 문화적인 가치를 정말 깊이 사랑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리’는 1978년 이리역 폭발사고가 남긴 상처를 30년이 지난 후에도 가슴에 안고 사는 한 여성을 그린 영화다. 폭발사고의 후유증으로 조금 모자란 그녀에게 남자들은 못 된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표현하기 쉽지 않은 역할이다. 특히 장률 감독 영화는 대사가 많지 않고 정적이다. 많은 것을 배우가 짊어져야 한다.
하지만 윤진서는 이 영화를 선뜻 택했다. “촬영하기 전에 감독님이 내기를 하자고 했어요. 2시간 동안 한 사람만 말을 하고 한 사람은 침묵, 다시 2시간 동안 역할을 바꿔서 말하고 침묵하기. 생각보다 침묵이 어려웠어요. 감독님에 제게 이 내기를 제의한건 온갖 폭력과 학대를 당하지만 침묵하는 ‘이리’의 진서(실제로 배역 이름도 진서다)가 갖고 있는 짐을 느껴보라는 것 같았어요. 특별한 경험이고 배움이죠”
‘이리’의 진서는 더러운 폭력의 피해자지만 웃음을 잃지 않고 항상 돌아온다. 관객의 입장에서 그런 진서의 내면이 몹시 궁금했다. 윤진서는 “그녀는 희망이 아닐까요? 곁에 있어도 잘 모르고 하찮게 대하고 없애 버리려고도 하는 게 희망이에요. ‘이리’의 진서도 그래요 모두 그녀를 막대하지만 항상 자리 자리에 돌아와요. 희망처럼”
“TV드라마 촬영시스템이 처음이라서 신인 때와 똑 같다”며 웃는 그녀는 희망이 어떤 건지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이경호 기자rus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