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주부9단의첫김장담그기

입력 2008-12-1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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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김장은 친정 엄마가 담가서 부쳐주셨는데, 작년부터 엄마 몸이 안 좋으셔서, 올해는 제가 직접 담가 먹게 됐습니다. 그런데 김장이라는 게 이게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당장 새우젓 사는 일부터 턱 턱 막히는 겁니다. 저희 남편이 새우젓 사러 시장에 갔는데, 제게 전화를 해서 “여보. 새우젓은 오젓하고 육젓하고 추젓이 있는데, 어떤 거 사 가?” 하고 묻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이랬죠. “응∼ 다른 재료는 사지 말고 그냥 새우젓 사와∼” 사실 제가 이름만 주부고, 뭐 하나 제대로 아는 게 없어서, 새우젓 종류가 그렇게 다양하다는 걸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새우젓은 그냥 새우젓 하나밖에 없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제가 너무 당당하게 말하니까 뭐라 반박도 못 하고, “아니. 그것들이 다 새우젓인데, 오젓은 오월에 담가서 오젓이고 육젓은 유월에 담가서 육젓이야. 추젓은 가을철에 새우 잡아 담가서 추젓이라는 거고, 그런데 어떤 거 사 갈까?” 이러면서 하나하나 설명했습니다. 그 얘기를 듣는데 어찌나 창피하던지, 제가 사실은 목포 출신입니다. 거기다 주부경력도 꽤 되는데, 남편도 잘 알고 있는 새우젓 종류를 몰랐다는 게 너무 창피한 겁니다. 저는 자존심이 상해서 “아! 대충 아무거나 사와∼!! 내가 그런 것까지 얘기해야 돼?” 하고 신경질을 부렸습니다. 그러자 남편이 “그럼 유월에 잡은 새우가 제일 맛있다고 하니까, 육젓 사갈게” 하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저는 혼잣말로, “치! 그깟 젓갈 아무거나 넣으면 되지”하면서 툴툴거렸습니다. 제 옆에서 통화내용을 듣고 계셨던 저희 사장님께서 그러셨습니다. “김장땐 젓갈이 중요하죠. 바깥 분이 그런 것도 다 알아서 하시고, 참 자상하시네요”라며… 그 말씀에 그나마 위로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 분이 마지막 한마디를 더 하셨습니다. “그런데 새우젓에 동백하젓도 있는데 아세요? 동백하젓은 겨울에 잡히는 잔 새우로 담그는 거예요” 하셨습니다. 그 사장님이 연세 지긋한 남자분이셨습니다. 그런데 그 분도 새우젓에 대해 잘 알고 계시다고 생각하니까, 자존심이 팍팍 상하는 겁니다. 그래서 바로 앉아서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고, ‘내년엔 내가 먼저 아는 체 해야지’ 하면서 새우젓 공부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전, 남편이 사온 육젓 넣고, 김장을 했습니다. 그 다음날 일어났더니 온몸의 뼈가 우두둑 우두둑 소리를 내며 아우성을 쳤습니다. 그 전날 저녁부터 밤까지 배추 30포기와 무 열 단을 가지고 씨름을 했으니 그럴 만 했습니다. 물론 한번에 백포기, 이백포기 씩 하는 분들은 ‘흥! 그까짓 거 가지고 무슨…’ 이러시면서 콧방귀를 뀔지 모릅니다. 하지만 오랜만에 김장을 하는 제겐 배추 30포기도 마치 300포기한 것처럼 힘이 들었습니다. 매년 친정엄마가 이렇게 고생해서 담가주신 줄도 모르고 넙죽넙죽 받아먹기만 했으니, 엄마한테 너무 미안합니다. 이번 주말에는 제가 담근 김치 싸 가지고, 고향에 좀 다녀오려고 합니다. 그리고 김치 담그는 법도 좀 배워오려고 합니다. 앞으로는 제가 매년 담가야하지 않겠어요? 하나하나 배워가며, 맛있는 김치를 담가볼 생각입니다. 경기 오산 | 최미진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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