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2년 전 저희 옆집에 ‘다문화 가정’이 이사를 왔습니다. 남편은 한국사람, 아내는 필리핀사람, 그리고 어린 딸이 하나 있었습니다. 처음엔 호기심으로 괜히 친한 척도 해보고 인사도 했는데, 잘 웃어주지도 않고, 인사도 안 해서 서운했습니다.
저는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안면을 익히려고 노력했습니다. 친해지기 위해 처음으로 시도한 게 바로 옷을 챙겨주는 일이었습니다.
제가 결혼 후 서서히 살이 찌기 시작해서, 참 아끼고 좋아하는 옷인데 작아져서 못 입는 옷들이 몇 벌 있었습니다. 거기다 그 옷들이 고급 메이커 옷들이라 제가 버리지도 못 하고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옷들을 날씨 좋은 날 깨끗하게 빨아서 냄새 제거까지 해서 잘 챙겨놓고, 우리나라 고유음식인 약밥도 정성껏 만들어서 그릇에 담았습니다.
그런데 옆집 문 앞에서부터 쩔쩔 매고 말았습니다.
외국인 여자가 어떻게 오셨냐고 물어보는데, 이 옷을 주고 싶다는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영어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Do you… Do you…” 하면서 저는 머릿속으로, ‘옷을 입다가 뭐냐?’ 하고 열심히 머리를 굴렸습니다. 그러다 도저히 안 되겠어서, 이 옷이 맘에 드느냐고 물어본다는 게, “Do you… Do you… like 옷?” 하고 물어봤답니다. ‘옷’은 한국말인데 그 때는 왜 ‘옷’을 영어로 말 할 생각을 못 했는지, 당황하며 머뭇거리자, 눈치 빠른 옆집 여자가 “아∼ 예스 예스” 하면서 저보고 들어오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현관문은 겨우 통과했는데, 그 다음이 또 문제였습니다.
하필이면 제가 가지고 간 옷이 망토스타일 옷으로, 단추를 잘 꿰어 입어야 하는데 옷 입는 방법을 설명하기가 참 난감한 겁니다. 옆집 여자는 이 옷을 어떻게 입는지 물어보는데 역시나 영어가 안 돼서, 그냥 한국말로 “그러니까 내가 이거 입을 거니까 잘 봐봐. You, 이거 See. 잘 봐” 하고는 망토를 입었는데, 또 용케도 제 의도를 이해하고 옷 입는 법을 익혔습니다.
그렇게 저희는 서로 통성명을 했는데, 이웃집 그 여자는 나이가 스물두 살, 그리고 이름이 ‘아이린’이었습니다. 제가 마음에 들었는지 그 후로 저희 집에 자주 놀러오고, 제가 만든 한국음식을 먹어보고, 가르쳐 달라고 하고 그랬습니다. 그렇게 한달 정도 서로 왕래를 했을 때, 저는 슬슬 제 흑심을 드러냈습니다.
“아이린, 내가 아이린한테 한국어 가르쳐줄게요. 아이린이 우리 아들한테 영어 가르쳐줄 수 있어요? 나 말고, 우리 아들, My Son!! OK?” 하니까 알겠다고 하면서 고개를 끄덕끄덕 했습니다.
한 이틀 정도 했을까요? 우리 아들이 영어로만 진행되는 아이린의 영어수업이 힘들었는지, 재미없다며 짜증을 내고 안 배우겠다고 하는 겁니다.
아무리 아이린이 열심히 가르쳐줘도, 우리아들은 무조건 모른다고 하면서 안 하겠다고 떼를 쓰고, 제가 속이 바짝바짝 타는 겁니다. 결국 아이린만 한국어 실력이 나날이 좋아지고, 우리 아들은 제자리걸음을 했습니다.
어느 날, 제가 아이린의 딸 소정이의 머리를 묶어주고 있었는데, “언니 너무 당기지 마. 그러다가 우리 수정이 머리끄덩이 빠지겠어요” 라는 말을 했습니다. ‘머리끄덩이’라는 건 정말 쓰기 어려운 말인데, 언제 그런 걸 배웠는지 신기했습니다.
그렇게 제가 아이린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준 지 벌써 2년, 이제는 웬만한 한국어는 유창하게 구사할 정도랍니다. 요즘은 아이린 보고 있으면 보람을 느낍니다. 앞으로 한국의 음식이며, 문화까지 가르쳐주며 정말 한국 사람으로 살수 있게 많이 도와줄 겁니다.
충북 보은|김희자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