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관으로스며드는감성’-집시바이올린렌드바이

입력 2009-05-17 14:25:37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집시를 바라보는 시각은 제각각이다. 세상을 순례하는 음유시인, 자유인, 낭만의 부족으로 보는 시각이 있는가 하면 불결, 무법, 도둑과 같은 어두운 이미지를 떠올리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이 두 가지 시선은 집시의 한 면을 주시하고 있을 뿐, 결국 같은 이야기이다. 그저 세상이 만들어 놓은 궤도에서 종종 벗어날 뿐이다. 일탈하기에 자유하며, 그러하기에 무법해 보일 뿐이다.

집시로부터 음악을 분리시킨다는 것은 어머니의 품으로부터 갓난아이를 빼앗는 일과 같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악독한 폭력이다.

집시들은 세상과 또 다른 자신들만의 음악적 맥을 이어왔다. 때로는 자유하며, 때로는 무법하게 들리는 음악들이다. 인간이 지닌 감성을 더 없이 부드럽게 매만지지만, 때때로 거칠게 이를 짓밟는 무도한 음악이기도 하다.

집시의 음악을 가장 잘 표현해 내는 악기는 단연 바이올린이다. 집시의 음악을 논할 때 바이올린을 제쳐둘 수 없다.

피아노를 연주하지 않는 쇼팽을 상상할 수 있을까.

요제프 렌드바이는 현존하는 최고의 집시 바이올리니스트 중 한 명이다. 헝가리 태생으로 집시의 핏줄을 타고났다. 그의 현 끝에서 풀풀 묻어나는 애수는 100% 순수한 집시의 것이다. 그라모폰이 ‘귀가 아닌 혈관 속으로 스며드는 뜨거움’이라 표현했던 그대로다.

렌드바이가 친구들과 함께 한국을 찾는다. 공연의 부제는 ‘클래식, 집시를 만나다’. 클래식과 정통 집시민요, 심지어 탱고의 스탠더드 넘버까지 넘나드는 프로그램을 들고 왔다.

초여름, 집시의 뜨거운 열정에 가슴을 녹여보고 싶은 이들에게 권하는 공연이다.

옛 사랑의 기억이 남아있는 이들이라면 더욱 좋다.

집시의 음악은 ‘기억할까봐 두려운’ 이들이 아닌, ‘기억하지 못할까봐 두려운’ 이들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브라보컴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