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고도 친숙한 감성, 감각적인 문체가 돋보이는 세 권의 일본 소설
○ 소리나는 모래 위를 걷는 개(게키단 히토리, 이레, 1만800원)
저자 게키단 히토리는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드라마 ‘전차남’, ‘마왕’ 등에서 열연을 펼친 일본의 유명 배우다. ‘그저 그런 연예인의 소설책이 아닐까?’라는 의구심은 첫 단락에서부터 무너진다.
일에 치여 홈리스가 되기를 갈망하는 샐러리맨, 아이들 스타를 위해 자신의 모든 걸 바치는 오타쿠 청년, 한 번 만난 남자를 찾아 도쿄로 상경해 거리를 헤매는 울보 아가씨 등 세상살이에 서툰 사람들의 순진한 희망을 애정으로 감싸 안는 저자의 인간에 대한 따스한 시각과 예리한 관찰력은 ‘신인 작가의 작품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일본 평단의 평가가 전혀 과장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한다.
“돌부리에 차여 넘어질지라도 내일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내딛는 거야! 앞날의 인생이 어떻게 될지 누구와 만나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 그런건 몰라. 하지만 그래도 좋아. 뭐가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걸어가면 되는 거야.” 다섯 편의 단편에 등장하는 소설 속 주인공들은 저마다의 희망을 지닌 채 도쿄라는 도시 안에서 묘한 인연으로 연결되며 서로의 삶에 희망의 불씨를 던진다.
○ 좌안, 우안(에쿠니 가오리&츠지 히토나리, 소담출판사, 각권 1만원)
두명의 작가가 쓴 두 권의 이야기가 합쳐져야 비로소 하나의 작품이 완결되는 릴레이 연애소설 ‘냉정과 열정 사이’를 완성시켰던 두 명의 작가가 10년 만에 ‘좌안-마리 이야기’, ‘우안-큐 이야기’를 출간했다.
인생이라는 강을 사이에 두고 선 주인공들은 때로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거리에서 마주보고, 또 멀어지며 안타까운 사랑을 이어간다.
작가는 그것이 인생이고 사랑이라고 말하며, 닿을듯하지만 어쩌면 영영 도달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격, 그 절절한 그리움을 이야기 한다.
에쿠니 가오리의 날카로운 관찰력과 투명한 감수성, 츠지 히토나리의 삶을 관통하는 힘 있고 정직한 문체가 어우러져 빚어내는 두 개의 작품은 어느 쪽을 먼저 읽어야 좋을지 한참동안 행복한 고민을 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 한 낮의 달을 쫓다(온다 리쿠, 비채, 1만1000원)
‘한 낮의 달을 쫓다’는 두 명의 여자가 실종된 한 남자를 찾아 떠나는 버디 무비 스타일의 여행 미스터리 소설이다.
남편과 헤어져 홀로서기를 준비하고 있는 시즈카는 이복오빠 겐코의 오랜 연인 유카리로부터 겐고가 나라 취재 중 행방불명됐다는 연락을 듣고, 단 두 번 만났을 뿐인 그녀와 함께 겐고를 찾아 일본의 고도(古都) 나라와 아스카로 여행을 떠난다.
책을 읽다보면 겐고의 발자취를 찾아 떠나는 그녀들의 여정에 어느새 동참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다. 등장인물들이 품고 있는 사연은 나 자신의 이야기와 맞물리고 그녀들의 기억은 ‘내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낸다. 나라 여행을 통해 새로운 삶의 진실과 대면하는 것은 소설 속 주인공들 뿐만 아니라, 책을 덮고 난 독자 자신일 것이다.
실제로 이 책이 발간 된 이후 주인공들의 여정을 따라 나라로 떠나는 여행객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원성열 기자 seren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