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가만난사람]“게임을알면아이들이보입니다”-게임전문가차영훈

입력 2009-06-12 11:3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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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영훈 (그라비티 개발팀장) 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식당에는 중학생으로 보이는 딸과 초등학생쯤 되는 아들, 그리고 부부가 앉아 있었다. 딸은 음식을 앞에 놓고 휴대폰에 연결된 DMB로 뭔가를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었고, 아들은 닌텐도를 하고 있었다.

부인은 식당 구석 벽에 놓인 주말 버라이어티를 열심히 보고 있었고, 아버지는 묵묵히 식사를 하고 있었다. 부모의 식사가 끝날 때까지 아이들의 접시에는 여전히 대부분의 음식이 남아 있었다. 늘 있는 일인 듯 아주 자연스러웠다. 아무런 감흥이 없는 이 외식을 이 가족은 왜 한 것일까.

(차영훈 저 ‘게임을 알아야 아이와 통한다’ 중에서)

- 왜 아이들은 게임에 이토록 빠져드는 겁니까?

“20년 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기자님은 소싯적에 오락실, 만화가게 한 번 안 가 보셨나요? 요즘 아이들뿐 아니라 그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결론은 이겁니다. 아이들은 게임을 좋아한다.”

- ‘게임은 가정파괴범이다’라고까지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요.

“어느 정도는 동의합니다. 분명히 부모에게 고민거리지요. 어쩌면 ‘게임 따위는 이 세상에서 아예 없애버려야 해’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하하!”

차영훈(35) 씨는 국내 굴지의 게임사 그라비티에서 개발팀장을 거쳐 프로젝트 매니저(PM)로 일하고 있는 게임 전문가다. 게임은 이제 더 이상 ‘게임’이 아니다. 세계 게임시장은 한 해 40조원에 달한다. 국내 게임 인구만 2000만 명. 정부조차 ‘게임은 21세기의 문학’ 운운하며 게임 부흥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차영훈 씨는 게임에 빼앗긴 우리들의 아이들을 되찾아 와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해법도 내놓았다. 아이들로부터 게임을 빼앗지 못할 바엔, 부모가 게임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들어가야 한다. 부모가 게임을 알고 아이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그래서 아이와 교감을 나누게 된다면 아이들은 다시 부모 곁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 특히 아버지들에게 해당되는 얘기이다.

- 꼭 아버지들이 게임을 알아야 합니까?

“알아야 됩니다. 아버지들이 얼마나 바쁩니까. 야근을 밥 먹듯 하는 회사 일에 가족, 친지들까지 챙기려면 몸이 녹아나지요. 그래도 해야 합니다. 아이들을 아버지의 품안으로 되돌려 받으려면 어쩔 수 없습니다.”

- 막상 게임을 해보려 해도 겁부터 내는 아빠들이 많습니다. 요즘 게임이 좀 어려워야지요.

“게임의 모든 걸 다 파악하고 잘 하라는 게 아닙니다. 처음엔 그냥 아이들이 게임하는 걸 옆에서 구경만 해도 됩니다. 아빠가 게임을 다스리거나 중지하기 위해 다가가는 게 아니란 걸 알리는 게 중요합니다. 쑥스럽다고요? 우리는 지금 아이와 잠시라도 친해지기 위한 위대한 첫 발을 내딛는 겁니다. 이왕이면 아이의 왼쪽에 의자를 놓고 앉으세요. 아이의 오른쪽 두뇌를 자극하기 위한 겁니다. 냉장고에 넣어둔 맥주라도 가져다 마시며 흥미진진하게 아이의 게임을 관전하세요. 최소 한 달입니다. 아이의 입에서 ‘한 번 해보실래요?’하는 날, 아빠는 위대한 승리의 기쁨을 맛보게 될 겁니다.”

차 씨는 주장한다. 게임이 어렵다고? 미국 경제시황과 코스닥 반등세, 정치권의 대선 방향까지도 분석하는 실력으로 그깟 아이템 조합이나 체력 게이지 계산이 두렵다고?

“사실 온라인게임 주 고객의 50%는 직장인들입니다. 개발사들도 게이머들이 쉽게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머리를 싸매고 고민합니다. 게임이 정말 어렵다면 아이들이 하지 않겠지요. 몇 번만 해보면 금세 익숙해집니다. 머리가 아니라 손이 먼저 익숙해지는 겁니다. 키보드에 손을 대 보세요. 워드, 엑셀보다 어려울 게 없습니다.”

- 아빠와 함께 게임을 하는 것을 정말 아이들이 좋아할까요?

“누구라도 아빠 앞에서 홈런을 치고 싶어 하는 게 아이들입니다. ‘이거 먹는 거예요’, ‘이렇게 움직이는 거예요’ 하고 아빠에게 가르쳐주는 걸 싫어할 아이는 없습니다. 동호회나 카페에 들어가 보면 아빠와 같이 게임하는 아이들을 다른 아이들이 얼마나 부러워하는지 모르시죠?”

- 어떤 게임을 해야 합니까?

“아이가 지금 하고 있는 게임이 제일 좋지요. 굳이 추천을 하라면 대전용 게임이 좋습니다. ‘철권’같은 건 30대 아빠들도 해 본 적이 있으실 겁니다. 스포츠게임도 좋지요. 빠르게 한 판이 끝나는 게임이 적당합니다.”

- 아무리 그래도 어느 정도 규제는 필요하지 않을까요?

“아이와 약속의 문제로 접근해야 합니다. 하루 1~2시간 정도만 하게 한다든지. 어느 정도 만족할 만큼 시간을 준다면 아이들도 규제라고 생각하지 않고 납득을 할 겁니다.”

- 지나치게 폭력적이거나 야한 게임은 어떻게 하지요?

“아이가 19세 이상용 게임을 하고 있으면 안 되지요. 그건 야동을 보는 거와 다를 게 없습니다. 게임을 보면 등급심의 마크나 나이표시 같은 게 나와요. 부모들이 자주 이를 확인해 줘야 합니다.”

- 너무 어린 나이에 게임을 하는 것도 문제인데요.

“게임뿐만 아니라 소아들은 TV도 오래 시청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급격히 전환되는 화면이 두뇌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있지요. 최소한 7살 이후가 게임을 시작하기에 적당한 나이라고 봅니다.”

차 씨의 노하우 하나를 알려드린다. 일명 ‘능선론’이다. 새로운 게임을 시작하면 완전히 푹 빠져버리게 되기까지 능선이 있다. 개발자들은 대부분 유저들이 조작과 게임 분위기를 익힐 수 있도록 처음을 쉽게 만든다.

여기가 1/7능선이다. 1/3능선을 넘어가면서 슬슬 게임의 내용에 몰입하게 된다. 능숙한 조작기술이 필요하고 함정과 변수가 툭툭 튀어나온다.

여기서부터 진짜 게임이 시작되는 것이다.

PC용 게임이라면 하루나 이틀, 비디오 게임은 이틀 정도 지난 시점이다. 바로 이때가 부모들이 아이들의 게임을 잠시 끊어줘야 할 타이밍이기도 하다. 방학 때라면 어디 여름 캠프라도 보내서 게임과 잠시 떨어지도록 해주는 것도 좋다.

몰입에 들어갈 타이밍에서 부모가 상황을 돌려버릴 수 있다면 아이들은 더 이상 게임을 하지 않는다. 또 다른 게임을 하거나 하던 게임을 접어버린다. 만약 타이밍을 놓친다면 아이들은 개발자들이 심어놓은 클라이맥스에 빠져 몇 달, 심지어 일년 내내 게임으로부터 빠져나오지 못하게 된다.

“아이들도 아버지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합니다. 아빠, 엄마와 자신들의 세상과 고민에 대해 나누고 싶어 합니다. 게임 개발을 10년째 하고 있지만, 저희들도 부모님들에게 ‘악의 축’으로 오인 받고 싶지 않습니다. 게임을 알면 아이들이 보입니다. 언젠가 아이들이 게임보다 아빠와 노는 게 훨씬 더 재미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그 날을 위해! 파이팅!”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이것만 알면 아이들과 대화할 수 있다>

경험치 : 캐릭터가 얻게 되는 수치. 몬스터, 괴물 등을 사냥해 쌓아간다.
고랩 : 고 레벨의 준말. 반대말은 저랩이다.
득템 : 아이템을 획득했다는 말.
맵 : 캐릭터들이 활동하는 지형, 마을, 도시를 가리킨다.
몹 : 캐릭터가 레벨을 올리기 위해 물리쳐야 할 대상.
스킬 : 캐릭터가 보유한 공격기술.
NPC : 플레이어가 아닌 컴퓨터로 운용되는 캐릭터. 상점주인, 마을주민, 경비병 등 다양하다.
지지(G.G) : 게임이 끝나고 상대방에게 ‘게임 잘 했습니다’란 메시지를 보낼 때 쓴다. 패배를 인정할 때도 사용한다. 바둑으로 치면 불계패다.
카오: chaotic의 준말. 상대 캐릭터를 이유 없이 공격해 죽인 캐릭터. 위법으로 불이익을 받게 된다.
PK : 다른 플레이어의 캐릭터를 죽이는 행위. PK가 허용되지 않는 지역에서는 비도덕적인 행위가 된다.
퀘스트 : 게임 내에서 플레이어에게 주어지는 임무. 이를 완수해야 레벨이 올라간다.

<프로필>
1974년 대구 태생.
(주)그라비티 <레퀴엠 온라인> 개발팀장
현 (주)그라비티 게임연구소 프로젝트 매니저
‘게임을 알아야 아이와 통한다(2009·뮤진트리)’ 출간
‘각간묘의 비밀(끌레마)’ 출간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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