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가 만난 사람] 박세원 서울시오페라단장 “요즘 오페라 깡이 없어요”

입력 2009-11-16 16:2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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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원 서울시오페라단장. 사진=임진환 기자 photolim@donga.com

박세원 서울시오페라단장. 사진=임진환 기자 photolim@donga.com

“어서 오세요. 날이 꽤 추워졌지요?”

세종문화회관 내 서울시오페라단 단장실에 들어서자 박세원 단장(62·서울대음대 교수)이 두 팔을 활짝 벌려 반갑게 맞아준다.

눈을 비비고 아무리 봐도 60대라는 나이가 믿어지지 않는다. 온 몸에서 탄탄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목소리는 완전히 20대로 들린다.

서울시오페라단은 19일부터 22일까지 4일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베르디의 오페라 ‘운명의 힘’을 공연한다. 2007년에 시작한 ‘베르디 빅5 시리즈’의 종착역이다. 그 동안 서울시오페라단은 베르디의 대표작 ‘리골렛토’, ‘라 트라비아타’, ‘가면무도회’, ‘돈 카를로’ 네 작품을 공연했다. 한 작곡가의 작품만을 3년에 걸쳐 무대에 올린 이 프로젝트는 당연히 국내 최초의 도전이자 실험이었다.

4회 공연 모두 매진 행진이 이어졌다. ‘베르디 빅5 시리즈’의 성공은 박 단장 개인적으로도 큰 보람이다. 아직 차기 ‘빅5’는 계획하지 않고 있지만 1, 2년쯤 지나 다시 시작할 생각이다.

기획 시리즈는 장점이 많다. 작품이 미리 정해져 있으니 무엇보다 준비기간을 넉넉히 잡을 수 있었다. 2~3년 후 공연을 위한 캐스팅을 미리 할 수도 있다. 판잣집 짓듯 두어 달 뚝딱해서 허겁지겁 무대에 올리는 날림 오페라와는 비교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클래식 마니아 사이에서도 오페라는 고수들의 영역으로 대접받는다.

실내악, 교향곡, 독주곡, 성악곡 등을 두루 섭렵한 후에야 비로소 손을 대게 되는 분야가 오페라라는 얘기다. 그만큼 오페라는 어렵게 느껴진다.

어떻게 해야 오페라에 친숙해질 수 있을까?

“오페라를 제대로 감상하려면 성악가의 생리를 알아야 합니다. 성악가라고 해서 모든 작품을 다 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어떤 작품을 놓고 할 수 있는 사람과 안 되는 사람이 극명하게 갈립니다. ‘운명의 힘’이 대표적이지요.”

이번에 공연하는 ‘운명의 힘’은 베르디가 전성기에 뽑아낸 역작이다. 이미 세계적 거장의 지위에 오른 그는 더 이상 세상의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마음껏 음표를 휘날렸다. 가장 베르디적이고, 영웅적이며, 예술적이다.
박세원 서울시오페라단장. 사진=임진환 기자 photolim@donga.com

박세원 서울시오페라단장. 사진=임진환 기자 photolim@donga.com


박 단장은 “성악가의 맥시멈을 끌어내는 작품”이라고 표현했다.

오페라는 대부분 외국어, 그 중에서도 이탈리아어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평소 성악가들은 그나마 익숙한 영어도 아닌 이탈리아어로 된 오페라 가사를 어떻게 외우는지 궁금했다.

“어렵죠. 사실 암기를 감당하지 못해서 도태되는 성악가들이 꽤 있어요. 수많은 사람이 도전하지만 암기능력이 없어서, 박자관념이 부족해서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지요. 안타까운 일입니다.”

“오페라가 어렵게 느껴지는 건 아무래도 청중이 가사를 이해할 수 없어서가 아닐까요?”

“그런 면도 있을 겁니다. 선배님들이 오페라를 한국어로 부르는 시도를 이미 수십 년 전에 하셨죠. 그렇게 해서 관중이 늘었느냐 하면 그건 아니었어요. 사실 번역으로는 원곡 자체의 느낌을 제대로 살리기 어렵습니다. 작곡가가 리듬과 선율을 원어 가사에 맞춰 놓았으니까요. 게다가 오페라는 전 세계가 다 원어로 부릅니다. 한국어를 고집할 경우, 우리 성악가들은 같은 곡을 원어로 다시 공부해서 해외무대에 나가야 하지요. 이중 일이 되어 버립니다.”

박세원 단장은 명실상부 한국 성악계를 대표하는 최고의 스타였다. 박 단장은 요즘 후배 성악가들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비주얼이 좋아졌죠. 체형 자체가 달라졌으니까요. 체력도 향상됐어요. 성악가는 사실 운동선수나 마찬가지거든요. 예전엔 유럽 성악가들에게 체력에서 밀렸어요. 이제는 우리 가수들이 앞서면 앞섰지 뒤지지 않지요.”

“선배들에 비해 부족한 점도 있겠지요?”

“우리는 죽으나 사나 노래를 천직으로 생각하고 했죠. 죽기 살기였어요. 목소리도 근육으로부터 나오는 겁니다. 매일 훈련과 연습을 해서 소리를 유지해야 하지요. 그런데 요즘 친구들은 연습 기간 때만 연습을 하는 것 같아요. 헝그리 정신이 없는 거죠. 헝그리 정신이 없으면 어딘가 ‘빈 데’가 나오게 돼 있어요.”

박 단장은 이번 공연에 수능시험을 치른 수험생과 가족들이 많이 와 주었으면 하고 있다. 그래서 수험생과 가족(4인)에게 50% 할인 혜택을 주기로 했다. “수험생도 수험생이지만 입시 부모님들은 아마 최근 몇 년 동안 변변한 공연 한 번 제대로 못 보셨을 겁니다. 이번에 꼭 함께 오셔서 그 동안 쌓인 긴장감을 푸셨으면 좋겠네요.”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사진|임진환 기자 photol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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