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또는 10년 주기로 되풀이되는 방송계의 묵은 비리에 분노한다.”
1995년 1월11일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PD연합회)가 낸 성명의 일부이다. 이 성명은 “당사자들은 혐의 사실이 입증될 경우 법에 따라 처리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수사과정상 혐의 사실에 대한 ‘흘리기식’ 공표는 인권보호 차원에서 신중해야 할 것”이라는 조심스런 입장도 빠지지 않았다. 연예계의 해묵은 금품수수 비리에 대한 경찰 수사와 관련해 PD연합회가 내놓은 것이었다.
그로부터 이틀 뒤인 1995년 오늘,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일부 방송사 PD와 연예인 매니저 등 모두 39명에 대한 계좌추적에 이어 추가로 4명의 혐의에 대한 수사를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3개 방송사 PD 3명과 남자 연예인 1명이 그 대상이었다.
경찰은 1994년 12월 고 최진실의 전 매니저 배병수 씨 피살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거액의 돈이 방송 관계자들에게 건네지는 등 공공연히 나돌던 연예계 비리가 사실로 드러나 수사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가수나 탤런트의 방송 출연, 특정 가수의 음반 방송 등을 대가로 연예인 본인이나 매니저들로부터 거액의 사례비를 받은 혐의가 포착된 PD 14명을 포함해 39명의 은행계좌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법원으로부터 발부받아 본격 수사에 나섰다. 방송사 국장급 등 중견 PD 14명과 매니저 6명, 유명 탤런트 등 연예인 3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결국 그해 1월18일 모 방송사 중견 PD가 배임수재 혐의로 구속됐고 7명의 PD와 매니저 등이 구속되거나 수배되는 등 사법처리 대상으로 떠올랐다. 일부 매니저와 PD 등은 경찰 수사를 피해 잠적하기도 했다.
연예계 비리 수사는 PD연합회의 성명처럼 “5년 또는 10년 주기로 되풀이”됐다. 실제로 1975년 7명의 PD가 금품수수 혐의로 구속됐고 1990년에도 6명의 PD가 사법처리됐다. 정확히 5년 뒤인 1995년에 이어 2002년과 지난 해에도 수사당국의 연예계 비리 수사는 계속됐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