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안방스타 김명민, 은막스타는 무리?

입력 2011-03-01 10:3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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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민 주연영화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이 1/4분기 한국영화흥행 리드를 잡았다. 25일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조선명탐정'은 24일까지 누적관객 429만8759명을 끌어 모은 상황이다.

일일 관객은 2만7898명, 4위권으로 떨어졌지만 주말 강세 등을 감안하면 초대박 라인인 500만 명 선 돌파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기준으로 보자면 연간 통산 톱3 내에 드는 성적이다.

이 같은 흥행대박에 따라서 당연히 주연배우 김명민의 몸값도 크게 뛸 것으로 예상된다. 김명민은 이미 TV드라마에선 공인된 히트제조기였다. KBS1 '불멸의 이순신', MBC '하얀 거탑', '베토벤 바이러스'까지 엄청난 인기를 누린 작품이 많았다. 그러나 영화계에서는 좀처럼 히트작을 내지 못하다가 마침내 제대로 된 초대박이 나오게 된 셈이다.

이렇게만 놓고 보면 김명민 스타덤은 꽤나 전형적인 성공기처럼 여겨지게 된다. 정상을 향해 계속 달리던 TV드라마 배우가 마침내 영화 장르까지 정복함으로써 정점에 오른 모양새다.

그러나 김명민의 커리어는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오히려 자세히 살펴볼수록 기묘한 감이 있다. 이른바 '스타성', 특히 영화 장르에서의 티켓파워 면에서 딱히 연속성이 발견되질 않기 때문이다.

MBC 드라마 ‘하얀 거탑’


김명민의 첫 주연급 히트작은 KBS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2004년)이었다. 그러나 김명민이라는 이름을 처음 대중에 깊이 각인시킨 건 MBC 드라마 '하얀 거탑'(2007년)으로 봐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부터가 기묘하다. 같은 해 출연한 영화 '리턴'은 높은 완성도에도 겨우 67만7939명을 모으는데 그쳤다. 대실패였다. 영화 공개 당시는 메디컬 스릴러이기에 '하얀 거탑'과 이미지가 겹쳐 식상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그러나 이듬해 형사로 출연한 '무방비도시'까지도 161만2803명이라는 '심심한' 결과를 내자 김명민 티켓파워 자체에 대한 의문이 일었다. 더군다나 흥행보증수표 손예진과 공동주연이었음에도 그 정도라는 건 김명민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었다.

어찌됐건 이듬해인 2008년 김명민은 TV드라마로 돌아와 '베토벤 바이러스'를 또 다시 대히트로 이끌었다. 그의 코미디 연기는 드라마 '불량 가족'(2006년)에선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했지만 '베토벤 바이러스'는 '강마에 신드롬'까지 불러일으키며 승승장구했다.

MBC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


그 다음해 김명민은 영화 '내 사랑 내 곁에'에서 강마에와는 전혀 다른, 루게릭병을 앓는 환자 역을 맡아 추석 시즌 215만3068명을 모으는 좋은 반응을 얻어냈다. 사실상 김명민의 첫 영화 히트작이 됐다.

이렇듯 TV드라마와 영화 양쪽에서 차례로 호의적 반응을 얻어 이제 그 스타성이 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난해 출연한 유괴 스릴러 영화 '파괴된 사나이'는 다시 실패하며 101만3886명을 모으는데 그쳤다.

결국 '내 사랑 내 곁에'의 성공은 당시 1000만 관객을 돌파했던 '해운대' 하지원의 티켓파워 산물이 아니냐는 의문이 또 다시 일었다. 김명민은 TV드라마에만 강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심심찮게 등장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난 지금, 사극 추리 코미디 '조선명탐정'은 500만 명대를 바라보고 있다. 이번에는 딱히 성공과 실패를 떠넘길 만한 공동주연 배우도 없는 상황이다.

이처럼 김명민의 커리어는 한 마디로 들쭉날쭉이다. TV드라마에선 일관되게 좋은 성적을 내고 있지만 영화 쪽은 안정감이 심하게 떨어진다. 수없이 많은 장르를 거치고 정극과 희극을 계속 오가고 있는데 마땅한 흥행 라인이 없다. '이런 영화, 이런 배역에 강하다'는 결론조차 서질 않는다.

그러나 이는 사실상 당연한 일이다. 김명민은 애초 영화 장르에서 스타가 될 체질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몇몇 예외들이 존재하긴 하지만 영화 장르에 있어 스타란 기본적으로 성격배우 쪽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성격배우는 단순한 개념이다. 한 마디로 줄이자면 고정된 유형의 특정 성격을 연기하는 배우다. 여러 다양한 캐릭터들을 맡아 소화해내는 것이 아닌, 어떤 특정한 역할만을 잘 하는 배우다.

대개 배우 자신의 개성과 잘 맞아떨어지는 역할이기에 그런 효과를 낼 수 있다. 대부분 외모나 음성 등 자신의 신체적 특성에 의존해 배역을 소화해내며 이전 작품들에서 쌓여진 고정 이미지를 큰 변화 없이 차용해 오히려 그 연상 작용을 이용하기도 한다.

돌아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영화스타들은 대부분 이 같은 속성을 지니고 있다. 고정된 자기 이미지가 있다. 당장 한국영화계 최고스타로 꼽히는 송강호만 해도 그렇다.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능글맞은 소시민형 캐릭터가 먼저 떠오른다.

송강호는 이런 캐릭터를 출세작 '넘버 3'에서부터 '조용한 가족' '반칙왕' 'YMCA 야구단' '살인의 추억' '효자동 이발사' '괴물' '우아한 세계'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그리고 지난해 '의형제'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반복해왔다.

최민식, 설경구 등 여타 한국영화계 스타들도 이 같은 속성에서 크게 자유롭지 못하다. 대부분 자기 고정 이미지를 통해 커리어를 꾸려나간다.

그러나 김명민은 이런 성격배우로 보기 힘들다. 매 콘텐츠마다 인상이 크게 바뀐다. 정극과 희극을 오가는 건 여타 성격배우들도 가능한 일이지만, 김명민은 그 과정에서 자기 고유의 개성까지 지운다. TV드라마 '하얀 거탑'의 장준혁과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 사이 공통점은 단 한 가지도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외모까지도 크게 달라 보인다. 영화 '내 사랑 내 곁에'의 종우와 '조선명탐정'의 명탐정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김명민의 연기력, 변신 능력이 뛰어나서만은 아니다. 일단 김명민은 외모와 음성 등 신체적인 부분에서 딱히 특징적인 면이 없기에 이 같은 변신이 수월했다. 미남이지만, 인상이 강하진 않다. 그래서 머리 모양만 조금 바꾸고 살만 더 빼도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연기 패턴 역시 특징적인 면이 없다. 대사 톤도 몸동작도 모두 그렇다. 대신 배역에 대한 적응력이 강하다. 성격배우들은 역할과의 화학작용에 따라 성공과 실패가 극명하게 갈리지만 김명민 같은 배우들은 일정 정도 이상 숙련된 경우 대부분 역할에서 평균점 이상은 얻는다.

얼핏 이렇듯 갖가지 연기변신이 가능한 배우야말로 스타가 될 '자격'이 있는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대중은 돈을 내고 보는 영화 장르일 경우, 그 선택에 있어 기본적으로 '신뢰도'에 큰 비중을 둔다.

한 마디로 '이 배우가 출연한다면 이런 영화가 되리라'는 '예측'이 가능해야 한다는 얘기다. 성격배우는 이런 면에서 유리한 부분이 있다. 배우 이름만 보고도 그 배우의 연기가 예측되고, 그러면 해당 소재에 내에서 그가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도 예측이 된다.

그를 선택하면 대중은 자신의 최저기대치 정도는 배신당하지 않는다. 그런 안정감이 바로 신뢰도로 이어지고, 티켓파워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김명민은 이런 점에서 별달리 유리한 위치에 있지 못하다. 김명민 하면 떠오르는 캐릭터, 연기 패턴이 없기에 예측이 안 된다. 결국 영화 장르에서 김명민은 철저히 스타 논리가 배제된 완성도의 논리, 장르의 논리, 타이밍의 논리 등 콘텐츠 자체와 마케팅 전략에 의해서만 성공과 실패가 갈리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김명민의 영화 커리어보다 TV드라마 커리어가 안정적인 것도 이 같은 배경에 기인한다. 공짜로 보는 TV드라마의 경우 신뢰도나 안정감보다는 신선감이 더 중시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전혀 다른 모습, 전혀 다른 캐릭터로 분할수록 유리한 면이 있다. 연기 변신 이슈를 타고 더 크게 성공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김명민 같은 배우들은 평생 '영화스타'가 되기엔 무리인 걸까. 영원히 TV드라마에서만 연기 변신으로 주목 받으면서 영화 장르에선 상황에 따라 부침이 계속되는 '중급 스타' 정도로만 기능해야 하는 걸까.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엄격하게 말하자면, 김명민 같은 배우들은 영화 장르에서 스타가 될 생각은 접는 게 좋다. 그러나 물론 예외는 있다. 딱히 뚜렷한 개성이 없더라도 최고급 스타로 거듭났던 배우들도 찾아보면 은근히 존재한다.

대표적 예가 할리우드 스타 해리슨 포드다. 해리슨 포드는 아예 본인 입으로 "나는 성격배우가 아니기에 스타가 되리라고 생각조차 해본 일이 없다"고 술회한 바 있다. 확실히 해리슨 포드에게 고정된 이미지란 없다. 몇몇 배역들이 기억나긴 하지만, 히트작이어서 기억나는 것일 뿐 해당 배역을 다른 배우가 맡았다 해도 무방했으리라는 생각까지 든다.

이처럼 악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는 해리슨 포드는 대체 어떻게 최고의 스타 대열에 합류하게 된 걸까. 알고 보면 단순한 얘기다. 해리슨 포드의 스타성은 그의 콘텐츠 '선택'을 통해 이뤄졌다.

일단 해리슨 포드는 2개의 최강 프랜차이즈를 쥐고 있었다. '스타워즈'와 '인디아나 존스' 프랜차이즈다. 전 세계에서 가장 히트한, 그리고 대중만족도가 지극히 높았던 프랜차이즈를 쥐고 있는 상황에서 해리슨 포드는 여타 콘텐츠도 꽤 잘 골랐다.

'위트니스'와 '워킹 걸'은 아카데미상 작품상 후보에까지 오른 하이 퀄리티 콘텐츠였고 실패작 '블레이드 러너'마저 영화 마니아층에 재발견돼 저주 받은 걸작으로 꼽히며 추앙받았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해리슨 포드는 그 연기 자체를 인지시킬 만한 개성과 특징적인 외모 따윈 없었지만 연속되는 좋은 콘텐츠 선택을 통해 대중으로부터 신뢰도를 얻어내게 됐다.

한 마디로 '해리슨 포드가 나오는 영화라면 대부분 다 괜찮은 영화'라는 인식을 얻어내는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이런 신뢰도를 통해 해리슨 포드는 '의혹' 같은 주목 받기 힘든 콘텐츠도 성공시켰고 기획 당시만 해도 웃음거리에 가까웠던 '도망자'와 '에어 포스 원' 등을 아예 메가 히트작으로 부풀려낼 수 있었다.

한국에서도 해리슨 포드와 유사한 예를 찾아볼 수 있다. 1990년대 중후반 최고의 스타로 인식됐던 한석규다. 한석규도 해리슨 포드와 마찬가지로 별다른 개성이 있는 배우는 아니었다.

성격 배우와는 거리가 멀었고 다양한 배역을 모두 평균 이상으로 소화해내는 배우로 꼽혔다. 그런데도 그가 해당 시기 최고의 스타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 역시 그의 콘텐츠 선택이 옳았기 때문으로 봐야 한다.

당시는 한국영화계가 '한국영화 르네상스'라는 기치를 걸고 전혀 새로운 상업영화들을 실험하던 때였다. 이럴 때 한석규는 꾸준히 신인감독들의 신선한 장르영화들을 선택함으로써 시대 분위기와 좋은 조화를 이뤄냈다.

'넘버 3' '쉬리' '텔 미 썸딩' 등은 당시 한국에선 듣도 보도 못한 첨단 장르 실험에 해당했으며 '초록물고기' '접속' '8월의 크리스마스' 등도 기존 장르를 새롭게 재해석해낸 콘텐츠로 주목받았다.

그러면서 '한석규 영화는 믿을 만하다'는 신뢰감을 대중으로부터 얻어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새로움'을 추구하던 시대분위기와 잘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 신뢰감을 통해 '하드코어 스릴러'라는 낯선 장르를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운 '텔 미 썸딩'까지도 자연스럽게 대히트로 이어갈 수 있었다.


김명민도 영화 장르에서 스타성을 원한다면, 이렇듯 콘텐츠 선택에 방점을 두고 커리어를 이어나갈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이런 배역을 해보고 싶다'든가 '이런 변신이 흥미롭다'와 같은 배우로서 야심 충족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현재와 미래 관객들은 과연 어떤 콘텐츠, 어떤 장르에 어떤 접근방식을 지닌 영화를 원할 것인가도 늘 함께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완성도 높은 각본을 가려 선택할 줄 알아야 하고 안정적 퀄리티를 내는 감독들을 선별해 작업할 필요도 있다. 그래야 대중으로부터 '김명민의 선택은 늘 믿을 만하다'는 신뢰를 얻어낼 수 있다.

물론 배우 자신의 매력으로 이뤄지지 않은 스타성에는 한계가 있긴 하다. 단적으로, 콘텐츠 선택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면 그 스타성은 곧바로 무너져 내리게 된다. 앞서 말한 해리슨 포드와 한석규만 해도 그렇다.

1990년대 후반까지 총 흥행수입 면에서 할리우드 스타들 중 최고를 자랑했던 해리슨 포드였지만 1999년작 '랜덤 하트'부터 몇 년간 'K-19 위도우메이커' '호미사이드' 등 대중만족도 떨어지는 콘텐츠들을 선택해 흥행실패를 반복하자 그 스타성은 한꺼번에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무려 20여년에 걸쳐 쌓아온 탄탄한 대중신뢰도였지만 단 몇 년 간의 불신만으로도 충분히 무너질 수 있는 게 그 속성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2006년작 '파이어월'은 아예 중급영화로 취급받아 마케팅비마저 극도로 축소됐고 최근작 '크로싱 오버' 등은 제대로 배급조차 되지 못하는 수모를 당했다.

한석규도 마찬가지다. 1995년 '닥터봉'부터 1999년 '텔 미 썸딩'까지 무패의 신화를 자랑하던 한석규였지만, 2년 반의 공백 이후 2002년 공개한 '이중간첩'이 한석규 최대 덕목이었던 '새로움' '신선감'과는 정반대인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을 받게 되자 그 스타성은 삽시간에 무너졌다.

여전히 기본 연기력은 뛰어나지만, 지금은 '흥행과는 무관한 배우'로까지 낙인 찍혀 있는 상태다. 20여년에 걸쳐 얻어낸 신뢰도가 3~4년 만에도 무너질 수 있었다면 4~5년 정도 쌓아온 신뢰도는 불과 1, 2편의 영화로도 충분히 무너질 수 있다는 본보기가 됐다.

결국 이제 막 가동되기 시작한 김명민의 영화 커리어에 가장 크게 요구되는 것은 단 한 편의 영화라도 간단히 판단내리지 않는 '선택의 무게'라는 것이다. 차후 지속될 김명민의 진중한 선택을 기대한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fletch@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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