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용 미래전략연구소 경영지식팀 기자
오디션 프로그램 전성시대다. 지상파 방송 3사와 케이블채널이 방영 중이거나 올해 방영할 예정인 일반인 대상 오디션 프로가 9개나 된다. 일반인 ‘벼락 스타’의 탄생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는 셈이다. 안타깝게도 일반인 ‘깜짝 스타’의 롱런 가능성은 높지 않다. ‘온 에어’의 불이 꺼지면 스타덤에 올랐던 속도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진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선두주자인 영국이나 미국의 사정도 비슷하다.
이 변화의 진정한 승자는 방송사나 제작사가 될 가능성이 크다. 방송사의 수익은 출연하는 스타의 시청률 파워가 클수록, 이들 스타의 교섭능력(bargaining power)이 낮을수록 많아진다. 방송사가 수익을 극대화하려면 시청률 파워가 강하지만 교섭능력은 약한 외부 자원공급자를 찾아야 한다. 요즘처럼 매체 수요가 폭증해 스타의 교섭능력이 극대화되는 상황에선 천정부지로 치솟은 대형 스타의 몸값을 주고 나면 방송사에 남는 게 별로 없으니 말이다.

혁신은 기업 수익모델까지 바꾼다. 영국이나 미국의 오디션 프로그램 제작비는 기존 드라마나 시트콤의 절반 정도로 알려져 있다. 슈퍼스타를 모시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입은 짭짤하다. 미국 폭스네트워크의 경우 공개 오디션 프로그램 ‘아메리칸아이돌’ 시리즈 시즌1, 2로만 2억 달러의 광고수입을 올렸다. 게다가 음원 판매수입, 각종 캐릭터 및 사업권 판매, 시청자 투표를 위한 문자메시지 등과 관련한 부수입 등 막대한 사업 기회가 있다.
공개경쟁 방식의 오디션 프로그램이 더 흥미로운 이유는 끊임없이 진화하며, 기존 시장의 판도를 무너뜨리는 ‘파괴적 혁신(destructive innovation)’의 모습을 보인다는 점이다. 교섭능력이 상대적으로 낮지만 재능은 검증된 실력파 가수들을 공개경쟁 프로그램에 끌어들인 ‘나는 가수다’가 대표적 사례다. 혼신의 힘을 다해 펼치는 실력파 가수들의 공연을 보며 시청자와 관객은 눈물을 흘릴 정도로 감동한다. 일반인 출연자를 통해 낮은 수준(low-end demand)의 수요를 만족시키며 시장에 진입하더니 이제는 슈퍼스타들이 장악한 높은 수준(high-end demand)의 고객수요까지 잠식하며 시장을 흔들고 있는 것이다. 이는 심야시간대로 밀렸던 실력파 가수들이 주말 황금시대로 돌아오는 계기가 됐다.
단, 형식이 혁신적이라고 해서 다 성공하는 건 아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신입 아나운서를 선발하는 한 공개 오디션 프로그램은 상대적으로 낮은 시청률을 보이고 있다. 혁신이 고객이 아닌 공급자 관점에서 출발한 때문이다. 재능이 뛰어난 아나운서를 뽑는 일이 방송사 내부에서는 중요할지 몰라도 시청자에겐 아니다. 기업 현장에서 일어난 혁신의 대부분이 이렇게 실패했다. 존 구어빌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가 경고한 ‘혁신의 저주(curse of innovation)’가 어른거리는 대목이다.
박용 미래전략연구소 경영지식팀 기자 parky@dona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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