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조승우, 낭만에 대하여 “삐삐 486이 뭔지 아세요?”

입력 2011-12-22 09: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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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 게임' "인간 최동원을 담고 싶었다"
●"마운드-무대, 두렵지만 배짱으로 버티는 곳"
●양동근과는 신앙으로 가까워져

조승우는 영화 ‘퍼펙트 게임’에서 전설의 투수 최동원으로 분해, 밀도 높은 연기를 보여준다.

"제가 솔직히 '차도남' 스타일도 아니고, 고전적 미남도 아니잖아요."

배우 조승우(31)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조승우가 연기한 영화 '퍼펙트 게임'(감독 박희곤/21일 개봉) 속 최동원은 내내 무게감을 놓지 않는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배우 조승우는 조금 달랐다. 쌍꺼풀 없는 눈에 장난기를 가득 머금은 소년의 얼굴이었다.

영화 '퍼펙트 게임'은 한국 프로야구의 전설적 투수 최동원(조승우)과 선동열(양동근)의 맞대결을 다룬 영화. 1987년 5월 16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 해태 타이거즈의 경기를 중심으로, 울분과 격정이 뒤섞인 시대상을 담아내기도 했다.

"저에겐 과거 이야기가 더 어울려요. 어떤 시절이든 간에, 지금보다 낭만적일 거예요. 제긴 제 나이보다 오래된 오디오가 있어요. 누군가의 고물이 저에겐 보물이 된 거죠. 세피아 톤 사진, 오래된 악기, 손 편지, 삐삐…이런 거 좋아해요. (삐삐에 찍힌 번호) 486이 뭔지 아세요?"

상대방을 들었다 놨다, 순발력도 좋다. 예능 프로그램 출연은 어떤지 운을 띄우자 그는 "카메라 울렁증이 있다"며 손사래 쳤다. 조금 고집스러운 면은 마운드 위의 최동원 전 한화2군 감독을 닮았다.

그는 SNS를 하지 않는 이유로 "자장면 먹는다고 이야기하긴 쑥스럽다"며 "애완 고양이 때문에 이제 카페 활동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낭만'을 아는 남자, 조승우가 말하는 아쉬운 편집 장면은…

-언론시사회 날 완성된 작품을 처음 봤다고 했는데, 어떤 기분이 들었나요.

"아쉬움이 조금 남아요. 대본을 보자마자 선택했던 작품이니까 기대가 컸고, 그만큼 잘 나왔지만 그래도 최동원의 인간적인, 따뜻한 모습을 더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정이 들어서 그런지 허탈하고, 고독한 기분도 들었어요. 마지막 공연을 끝내고 분장실에서 분장을 지우는 느낌?"

-편집된 장면 중에 '인간 최동원'을 나타낼 수 있는 장면이 있었나요?

"투수 최동원이 아닌 인간 최동원을 더 담고 싶었어요. 영화에는 투수에 더 방점이 찍혀 있지만요. 유니폼을 입었을 때의 배짱, 또 유니폼을 벗은 후에는 쾌활한 동네 형 같은 느낌이요. 편집된 장면 중에 이런 장면이 있어요. 최동원이 OB선수에게 홈런을 맞아요. 그런데 또 똑같은 스타일의 공을 던져요. 보통 그러면 전략을 바꾸거든요. 하지만 최 전 감독님은 '어디 한번 또 쳐봐라'하는 거죠."

"또 경남고 시절 감독님과 라면을 먹는 장면에서 명랑함을 보여주는 애드리브도 있어요. 최 전 감독님 사진을 보면 항상 후배들과 함께 있어요. 후배들도 '정이 많은 의리파였다'고 기억해요. 선수협의회도 만들고, 그 책임도 짊어졌어요. 그때 최 전 감독님은 충분한 연봉을 받고 있었어요. 프로야구 선수들의 복지나 권리를 보호할 선수협의회가 굳이 필요하지 않았죠. 하지만 후배들을 위해 나섰어요. 그런 인간적인 모습을 더 넣고 싶었어요."

-최 전 감독님은 올해 9월 14일 세상을 떠났지만, 만약 '퍼펙트 게임'을 봤다면 뭐라고 하셨을까요.

"직접 뵌 적은 없지만, 박희곤 감독님과 제작진이 최 전 감독님을 찾아갔어요. 어떤 내용인지 말하자 단 칼에 '만들려면 제대로 만들어라'고 하셨대요. 프로야구 선수들에게 도움이 되고, 영화적으로도 의미가 있어야 한다고. 그렇다면 '허구를 넣어도 된다'고 그 약속을 하라 하셨죠. 그리고 선동열 KIA 감독님을 찾아갔더니 '동원이 형은 하신데요? 그럼 저도 하지요, 뭐'라고 하셨대요."

▶단칸방 살던 어린시절, 추억서린 영화가 그래서 좋아

-영화 속 라이벌로 등장했던 양동근 배우와는 많이 친해졌을 것 같습니다. 실제 동갑내기이기도 하고, 섭외에 직접 나서기도 했고.

"홍보 때만 바짝 볼 거예요.(웃음) 저희는 조금 스타일이 달라요. 동근이는 힙합이고, 전 기타 치고. 만나면 신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요. 저랑 (양)동근이는 '퍼펙트 게임' 고사 지낼 때 기도를 드렸어요. (양)동근이는 촬영장에서 투구 폼을 연습하거나 성경 책 보거나 했어요. 일요일엔 (양)동근이 방에 모여 믿음 있는 친구들과 가정 예배를 보기도 했죠."

-이번 영화도 그렇고 '고고70', '타짜', '클래식' 등 그리 오래 되지 않은 과거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는 작품에 출연했습니다.

"어릴 적에 집안 사정이 안 좋아 단칸방에 살았어요. 그 당시 문방구의 냄새를 아직도 기억해요. 그 꿉꿉한 공기를요. 요즘도 예상하지 못한 장소에서 그런 먼지 냄새를 맡을 때가 있어요. 1초 남짓한 순간에 스쳐간 거지만 그 시절을 기억하게 되는, 추억의 냄새인거죠. 과거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건 맞아요. 어찌됐건 지금보다 더 순수했을 것 같거든요."


▶무대가 더 좋아, 영화는 지금도 적응해 가는 시기

- 지금 뮤지컬 '조로'를 하고 있습니다. 데뷔 때부터 꾸준히 영화와 뮤지컬을 병행해오고 있습니다.

"원래 뮤지컬 배우가 꿈이었어요. 무대가 더 좋아요. 영화는 지금도 적응해 가는 시간이에요. 영화는 앞으로 10년을 더 해야 적응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후시 녹음할 때 제 얼굴을 못 봐요. 데뷔작 '춘향뎐' 때 임권택 감독님과 정일성 촬영감독님께서 눈을 못 깜박이게 했어요. 커다란 스크린 화면으로 보는 관객들이 불편할 수 있다고요. 카메라는 화면 가득 절 잡고 있는데, 판소리는 10초가 넘어가고…. 나중에 보니까 제 표정이 완전 울상이더라고요. 그 뒤론 부끄러워서 제가 찍은 걸 잘 못 보겠어요."

- 무대에서는 자신감이 남다른가요.

"예전에 무대 공포증이 심했어요. '렌트'때 까지 바들바들 떨었어요. '완벽해야 한다', '실수를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성대 결절로 고생할 땐 정말 외롭고 고독했어요. 하지만 군대 다녀오고 좀 달려졌어요. 할머니, 경찰, 유치원생 등 다양한 관객 앞에 섰어요. 굉장히 객관적인 무대잖아요. 유치원생이 절 알겠어요? 사심 없는 관객 앞에서 공연하다 보니 창피한 게 없어졌어요. 마운드도 무대도 두렵지만 배짱으로 버티는 곳이에요. 집중하게 되면 왜 긴장하게 되는 지도 잊어버리죠."

- 뮤지컬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데, 뮤지컬 연출도 언젠가 나서는 건가요?

"연출은 좀처럼 못하겠어요. 꿈꾸지 않습니다. 창작 뮤지컬을 만들되 크레이티브 팀에 있고 싶어요."

- 차기작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백수예요. '퍼펙트 게임' 찍고 나서 사회인 야구단에서 투수로 뛰고 있어요. '조로' 끝나면 동계훈련 갈까 봐요(웃음)"

동아닷컴 김윤지 기자 jayla301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동아수출공사, 밀리언 스토리, 다세포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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