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삶이라는 평생을, 좋았던 한 시기 혹은 하나의 기억으로 위로하며 살아내듯,
영화 전체를 감동으로 이끄는 장면 또한 단 한 씬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란 생각이 영화 마지막 장면을 본 뒤, 불현듯 내 엉킨 머리 곁에서 한 움큼 뜯겨져 나오는 듯 했다.
최루탄과 돌팔매가 성행하는 대학생들의 시위 현장을 은빛 방패(철가방)로 방어하며,
오늘도 열심히 짜장면을 배달중인 대오(김인권)는 날마다 그릇을 깨끗이 설거지해 “잘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란 쪽지를 남기는 여대생 기숙사 301호 깔끔이(유다인)에게 호기심이 생기고 잔돈을 핑계로 그 여학생을 확인하고는 그만, 짬짜면 탄생의 절박한 까닭마냥 그녀와 같은 그릇에 담기고 싶은 격한 욕망에 휩싸이게 된다.
그리하여 졸고 계신 경비 아저씨의 경계초소를 뛰어 넘어, 짬뽕그릇 언저리에 고이 모신 꽃다발을 구비한 채, 그녀의 기숙사에 침투하는데 성공했건만 막상 일이 닥치자 준비했던 혼신의 프로포즈 몇 마디를 온전히 전달하지도 못한 채, 엎질러진 짬뽕국물에 말아 적셔진 꽃잎처럼 캠퍼스 마른 잔디위로 흥건하게 내팽겨 쳐지고 만다.
하지만 그 와중에 얻은 일말의 소득이 있었으니, 그것은 그녀가 건넨 거스름 돈(천원짜리 지폐) 안에 적힌 그녀의 ‘생일파티’(미문화원 점거 모임의 암호명) 날짜와 시공간이었다.
그리고 그는, 우연히 자신의 단골 고객인 영문과 교수에게 들은 ‘용기 있는 자만이 미인을 얻는다!’는 명언을 계시 삼아 다시 한 번 그녀에게 고백 할 것을 결의하게 된다!
그리하여 사랑을 위해 본의 아니게 혁명에 뛰어드는, 어느 짜장면 배달부의 “사랑, 소망, 믿음의 소동극”이 비로소 막을 올리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시나리오는 대체로 엉성한 축에 속하며,
영상의 미적 성취감도 그리 뛰어난 편은 아니다.
이야기의 감흥이나 감동도 전체적으로 볼 땐 평범한 수준이며,
코미디 장르임을 감안하면 웃음의 빈도도 그리 많지 않다.
다만 다양한 배우들의 매력과 열연만이 그나마 확실하게 치켜세울 수 있는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해, 이 영화는 완성도 즉, 작품성면에서는 그리 뛰어난 편에 속한다고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이 영화가 참으로 맘에 든다.
그것은 바로 이 영화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했던 감정의 실타래를, 붉은 채색 한 벌의 세타처럼 엮어 놓은 마지막 한 씬 때문일 것이다.
앞으로 영화를 보실 분들을 위해, 그 장면을 자세히 묘사하는 것은 삼가겠으나!
다만 비유하여 떠올리자면, 난 이 장면을 ‘사랑을 움트기 위해 발버둥치는 방아깨비의 몸짓’이라 표현하고 싶다.
어딘가 촐싹맞고 장난스럽지만, 한없이 귀여운 연초록빛 모양새로 뛰어노는 모습이 그 장면의 느낌과 절묘하게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사실 한편의 영화에 감동하고, 그것을 가슴 한켠에, 마음 가장자리에, 또 기억 저편에 던져 놓게 하는 단 한 씬의 기적을 우리는 부단히 경험해 왔다.
예를 들어, ‘여인의 향기’의 탱고 씬이라든가,
‘사랑은 비를 타고’의 빗속의 스텝 왈츠 씬,
‘타이타닉’에서 보여졌던 뱃머리에서 두 팔 벌리기 씬,
‘피아니스트’의 폐허 속에 울리는 감동의 피아노 연주 씬 등 감동을 자아내는 원 씬!
‘싸이코’의 샤워 중 난자 씬,
‘샤이닝’의 부서진 문틈 사이로 기괴한 얼굴 내밀기 씬,
‘원초적 본능’의 노팬티로 다리 꽜다 폈다 하기 씬 등 스릴을 극대화 시켰던 원 씬!
‘혹성탈출’의 마지막 자유의 여신상 발견 씬,
‘유즈얼 써스펙트’의 절름발이 발모양 복원 씬,
‘식스센스’의 소년의 입김 씬 등 충격적 반전의 묘미를 선사했던 원 씬!
‘’처럼 감정적, 감각적, 정신적으로 올 킬!을 당해야만했던 이 무방비하고 무조건적인 순간들 틈으로 나는, 시대적 아픔과 혼돈의 젊음이란 이름으로 혼합된 최루가스를 따갑게 붉힌 눈시울로 견디며 이뤄낸 사랑이란 민들레 홀씨를 ‘긴긴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아침이슬처럼’ 알알이 맺혀내는데 성공한 이 영화의 ‘라스트 씬’을 앞서 언급한 애심의 표어들을 피켓 삼아 과감히 끼워 넣으려 한다.
아울러 독재정권 못지않게 악질적인 대학생과 배달부란 신분의 격차를 극복한, 이 영화에서 혁명이라 비유되는 사랑이란 민주주의를 맷집 있게 점거하고 투쟁하듯 쟁취해낸 감독(육상효)의 뚝심에도 적잖은 호감을 표시하고 싶다.
혹, 이 모든 ‘작위’가 다소 무모하게 비춰 질지 모르겠으나, 사랑이란 감정이, 또 그것을 다룬 감미로운 장면에 동화 된 관객의 감정이 때론 바보처럼 당당해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자위하며 이 까댐 없는 글을 마무리 짓는다.^^;
사진|강철대오·타이타닉 공식사이트
글|영화평론가 까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