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일말’ 김태훈 “데뷔 후 10년간 내 연기력 의심”

입력 2013-06-13 09: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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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태훈. 사진ㅣ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왜 연기가 이거밖에 안 되지?’라고 항상 고민해요.”

배우 김태훈(38)의 예상치 못한 고민을 마주했다.

KBS 2TV 일일시트콤 ‘일말의 순정’에서 유쾌한 짝사랑 남 정우성을 연기 중인 김태훈은 인터뷰를 통해 연기에 대한 남모를 고민을 털어놨다.

“30대 초반까지는 내가 왜 배우를 하나 싶었어요. 끼도 없고, 연기력도 부족하고,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데….”

누구보다 연기 욕심을 낼 것 같고, 연기에 자신감이 있을 것 같았던 연기파 배우 김태훈의 고민 토로에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를 쭉 들으니 그의 고민 속에는 매사에 신중하고, 안주하지 않으려는 삶의 철학이 녹아있었다.

“스스로 만족하는 순간 끝인 것 같아요. 특히나 연기라는 것은 매번 새로워야 되잖아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니. 연기는 전문 기술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김태훈은 유쾌한 듯 보이지만, 내면에는 고민이 많은 극 중 정우성과 닮아 있었다. 유쾌하고도 진솔한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일말’은 시청률 안 나와도 웰메이드…만족스러워”

김태훈은 ‘일말의 순정’(극본 최수영, 연출 권재영 강봉규 서주완)에 대해 이야기할 때 희비가 교차했다.

촬영 현장에 대해 물으면 신 난 얼굴로 대본과 선후배에 대한 칭찬을 줄줄이 이어나갔다.

“정말 인터뷰라서가 아니고 선배 배우들을 보면 최고의 조합 아닌가요? 이재룡 선배님, 도지원 선배님, 전미선 선배님, 권기선 선배님…. 다들 연기는 물론, 자상하고 순수하고 정말 좋아요. 촬영장 분위기가 좋아서 다들 벌써 회차의 반 이상이 지났다며 아쉬워해요.”

특히 촬영장에서 겪은 다양한 에피소드를 털어놓으며 웃음을 빵빵 터트리기도 했다.

“권기선 선배님 엉덩이를 때리는 신은 제 아이디어였어요. 딸 정순정(지우 분)이 이불 속에서 자는 줄 알고 깨우려고 엉덩이를 토닥토닥하는 장면인데, 진짜 딸이라면 간지럽히다 장난으로 막 때릴 것 같았거든요.”(웃음)

“간지럽히니까 안에서 권기선 선배님 웃음 참으시고. 저도 상황에 확 몰입되면서 엉덩이를 막 세게 때린 거죠. 선배님이 진짜 아파하셨어요. 엉덩이를 실룩샐룩 거리시며 나가시는데…. 아! 촬영을 할수록 정말 재미있어요.”

그 외에도 김태훈은 즉석에서 아이디어를 내 다양한 시도들을 한다며, 딸 역의 지우를 실제로 놀라게 한 이야기 등을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신나게 털어놨다.

하지만 시청률 이야기에는 사뭇 진지하게 “시청률이 낮은 이유를 모르겠다”며 풀 죽은 듯 아쉬움을 토로했다.

‘일말의 순정’은 지난 2월 방송을 시작해 어른들의 순수한 사랑이야기, 고등학생들의 유쾌한 사랑이야기를 그려나가며 최근까지 5%~8% 시청률을 얻고 있다.

하지만 김태훈은 이내 “자극적인 소재를 넣고, 캐릭터를 흔들어 높은 시청률을 얻는 것 보다는, 내가 하는 연기의 방향을 알고 의미가 담긴 ‘웰메이드’ 작품을 하는 것이 더 좋아요”라며 만족을 드러냈다.


●“동안 외모, 철이 덜 든 덕분이죠”


김태훈이 극 중 정우성과 특히 닮은 점은 철이 덜 들었다는 점. 동안이라는 칭찬에 ‘철이 덜 든 덕분’이라고 웃으며 답한다.

배우 김태훈. 사진ㅣ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외모 관리는 전혀 안 해요. 동안은 철이 덜 들어서 그런 것 같아요. 촬영장에서도 20대 초반 후배들과 잘 어울려요. 다 저에게 형, 오빠라고 부른다니까요.”(웃음)

후배들에게 그렇게 시킨 게 아니냐고 물으니 “절대 아니다”라며 웃으며 손사래를 친다. 이어 “실제 내 마음도 정말 형, 오빠 같다. 그들도 그렇게 느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는 철이 덜 든 것과 별개로 실제 성격은 극 중 정우성만큼 유쾌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다들 극 중 캐릭터와 비슷하다고 하는데 저를 잘 몰라서 하는 말이에요. 대학생 때는 소심한 이미지의 A형 아니냐는 질문도 많이 들었어요. 제 안에 다양한 면이 대본을 만나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표현되는 것 같아요.”

김태훈은 “사랑에 있어서도 극 중 우성보다는 진지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성격은 짝사랑도 잘 안하는 성격이에요. 기다리고 답이 안 오는 걸 잘 못 참거든요. 극처럼 실제 삼각관계라면 내가 맘에 드는 여성에게 좀더 적극적으로 다가가거나, 빨리 포기했겠죠. 라이벌 관계 이훈 형과는 좀 더 예민한 사이가 됐을 것 같고요.”

앞으로 극이 어떻게 전개되길 바라느냐는 물음에 그는 “결말은 상관없고, 그 과정이 재미있게 그려졌으면 좋겠다”며 “착하게 가다가 제대로 퀴어 드라마로 돌변하는 건 어떨까요? 이훈 형이랑 싸우다가 정드는 거죠. 하하. 농담이에요”라며 장난스럽게 웃는다.


●배우로서의 인생, 연기에 대한 허심탄회한 이야기

“인기에 대한 고민은 단 한번도 한 적이 없어요. 늘 연기에 대한 고민만 해왔죠.”

배우로서의 지난날과 앞으로의 계획을 물으니 김태훈은 무척 진지해졌다.

“사실 처음에 연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연기를 시작하지 않았어요. 그저 연출가라는 직업이 멋있어 보여서 연극영화과에 들어갔는데 다같이 모이고, 술 마시고, 북적북적한 느낌이 좋더라고요.”(웃음)

“그러다 선배들 작품에 사람이 부족해서 연기를 시도해봤고,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 잘한다는 칭찬들에 희열이 느껴지더라고요.”

그가 데뷔한 지 어느덧 10년. 독립영화, 연극, 상업 영화와 드라마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며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하지만 배우로 활동해온 시간과 작품 수에 비해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얻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인기에 대한 불안함은 하나도 없었어요. 작품하고 오디션 볼 때마다 ‘돈을 왜 이것밖에 안 주지? 내가 왜 캐스팅 안 되지?’ 이런 불만을 가진 적도 없고요. 그저 부족한 내 연기력만 눈에 보였죠. 그게 해결이 되면 그 외에 것들은 다 해결되거든요.”

“그래서 이름이 잘 알려진 형 김태우에게 기대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아요. TV에 한번 나오는 것, 이슈 한번 되는 게 제 꿈이 아니잖아요. 누구 덕으로 얻어내는 건 의미도 없고, 한계가 있어요. 내가 잘해야 진짜인 거니까요.”

그는 영화 ‘아저씨’, ‘분노의 윤리학’, 드라마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남자’ 등에 출연하며 어느 정도 연기력을 인정받고 인기도 얻고 있는 지금, 그래도 조금은 더 자신감과 만족감이 생기지 않았을까. 그의 답은 확고했다.

“아니요. 연기에 대한 자신감은 아직도 없어요.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만족스러움을 느끼지도 않고요. 물론 그때보다 수익도 훨씬 낫고 주위 반응도 좋지만, 또 다른 고민들이 생기더라고요. 불안한 것도 더 많아지고요. 앞으로 더 잘돼도 더 힘들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만족과 안정을 경계하고 매사에 치열하게 고민하고 나아가려는 김태훈의 모습이 그의 앞날을 예감케 했다.

“만족함을 느끼는 순간이 위험한 것 같아요. 특히 연기는 매번 새롭게 새 사람이 되어야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기 위해 늘 처음처럼 긴장하고, 노력해야죠.”

동아닷컴 원수연 기자 i2overyou@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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