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막장] 조현아의 ‘땅콩회항’과 지킬 앤 하이드의 ‘양아치 발언’

입력 2014-12-17 16: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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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했다. 근데 요즘은 아닌 것 같다. 최근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의 ‘땅콩회항’이 그렇다. 그는 견과류 ‘마카다미아’ 기내 서비스에 불만을 품고 “비행기 세워!”라는 한 마디에 대한항공 사업 자체가 흔들리며 난항을 겪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일이 뮤지컬 계에서도 발생했다. 효자상품인 ‘지킬 앤 하이드’가 한 관계자의 부주의한 발언으로 곤혹을 치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관객들은 환불을 요구하고 불매운동까지 벌이고 있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된 것인가.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14일 오후 2시 공연 이후 뮤지컬 팬들이 모이는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인 ‘연극 뮤지컬 갤러리’에는 “오늘 조승우가 ‘지금 이 순간’을 부른 후 음감(음악 감독)을 째려봤다”는 글이 올라왔다. 평소 ‘연극 뮤지컬 갤러리’를 들른다는 ‘지킬 앤 하이드’의 원미솔 음악 감독은 그 글을 본 후 페이스 북에 해명 글을 올렸다. 그는 “조승우가 어제(13일) 심한 목감기에 걸렸다. ‘지킬 앤 하이드’는 노래와 대사가 많아 배우의 목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걱정이 된다. 그래서 조승우와 이야기를 나누다 그를 도울 방법을 찾았고 오늘(14일) 낮 공연에 적용시켰다. 그래서 감사한 마음에 노래 후 나를 쳐다 본 것이라고 인터미션(1막과 2막 사이 쉬는 시간)때 말하더라”고 해명하며 추가적으로 힘든 일을 토로했다.

문제는 이 글에 달린 댓글로 시작됐다. 원미솔 음악 감독의 몇몇 지인들과 업계 사람들은 그를 응원하며 힘내라고 했다. 그런데 ‘지킬 앤 하이드’ 측 관계자가 “욕하고 인신공격하는 관객은 관객이 아니다. 그들은 작품을 즐길 줄도 모르는 양아치다. 게다가 매출을 올려주는 봉이다”라는 등 다소 과격한 어투로 뮤지컬 팬들을 향해 비난을 퍼부은 것. 그 동안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은 ‘봉’, ‘양아치’ 발언을 듣고 성이 났고 급기야 환불요구와 불매운동을 벌여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 관계자의 ‘양아치’ 발언, 조현아 ‘땅콩사태’와 다를 바 없다

최근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이 터지며 국민들은 조 전 부사장의 오만방자한 태도에 화가 났다. 사람에 대한 예의를 지키지 않는 자에 대한 분노였다. ‘지킬 앤 하이드’ 사태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관객들은 매출을 올려주는 봉이다”라는 관계자의 발언은 관객들을 향한 예의와 배려가 전혀 없었다. 티켓을 사는, 과하게 표현하자면 제작진의 밥줄을 이어주는 관객들을 철저히 무시한 셈이다.

특히 ‘지킬 앤 하이드’는 10년간 꾸준히 정상을 지켜온 뮤지컬이다. 장수 작품이기에 마니아도 많다. 한국 뮤지컬 팬들의 정서는 한 작품이나 배우를 향한 마음이 강하다. 제작에 직접 참여할 순 없지만 공연을 관람하고 평을 하는 것이 그들에겐 큰 즐거움이다. 그런 문화가 ‘회전문 관객’을 만들었고 한국 뮤지컬 문화를 발전시키는데 상당히 일조했다. ‘지킬 앤 하이드’가 10년간 꾸준한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배우들과 스태프들의 피땀 어린 노력이 있었겠지만 마니아들의 꾸준한 관심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다. 그런 고마운 관객을 “양아치, 봉”이라고 말한 것은 크나큰 실수였다.

○ 원미솔 음악 감독 SNS, 해명에 사족까지 붙인 꼴



뮤지컬 팬들의 화를 키운 건 댓글이었지만 화의 근원은 원미솔 감독의 SNS글이다. 왜 그는 SNS에 글을 남겼을까. 소통하고자 했던 것인가, 위로 받으려고 했던 것인가. 전자라면 실패했고 후자라면 성공이다.

원 감독의 글은 소통과 해명을 하는 글이 아닌 ‘위로 해달라’는 푸념 같다. 왜 묻지도 않은 배우의 아픈 사연을 밝히고 자신의 신념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말을 늘어놓는 실수를 저질렀을까. 차라리 깔끔하게 조승우가 왜 자신을 봤는지에 대한 글만 있었다면 좋았을 뻔 했다. SNS는 자신의 생각을 담는 공간이자 글을 공유하는 공간이다. 즉, 자신의 공간은 맞지만 자신만의 공간은 아니라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이 권하지 않은 누리꾼들의 후기도 읽어본다는 그가 진정 뮤지컬 팬들과 소통하려고 했다면 조심성이 더 필요했다.

○ 도 넘는 관객들의 사랑, 자제할 필요도 있어야

그렇다고 마니아 관객들이 잘했다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이번 사태는 언젠가는 터졌을 일이었다. 평소 뮤지컬 관계자들 사이에서 소수의 ‘뮤덕’(뮤지컬 덕후)들의 도 넘는 행동은 혀를 내두를 정도다.

앞서 말했듯, 뮤지컬 마니아들은 분명 한국 뮤지컬을 발전시키는데 일조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이나 배우 공연에 전폭적인 애정을 쏟는 관객들은 언제나 고마운 존재다. 그런데 문제는 소수의 마니아다. 즐기는 것을 넘어 수개월간 노력을 한 배우들과 스태프들을 좌지우지하려는 성향을 보이는 팬들도 생겨 문제가 되고 있다.

한 뮤지컬 관계자는 “뮤지컬 뿐 아니라 영화나 드라마 등 매체는 보는 사람들의 평가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수용할 만한 비판은 감사히 듣고 제작진들과 논의해 발전시키려 노력한다. 그런데 가끔은 지나친 요구가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 공연을 불법 녹음해서 ‘이 배우의 이 연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경우도 있고 캐스팅 발표 후 ‘이 배우 대신 저 배우를 써야한다’는 등 웃지 못 할 일들도 가끔 생겨 곤혹을 겪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마니아들은 과한 애정을 삼갈 필요도 있다. 스태프와 배우는 마니아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아이스크림 가게처럼 입맛대로 맞춰줄 수 없다. 또한 배우와 스태프는 신이 아니다. 10~20만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보러 오기에 더 질 높은 공연 관람을 원하는 바는 알고 있지만 완벽한 공연은 존재할 수 없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회항’에 대해 누리꾼이 “이것만 갑질인가? 식당에서 아줌마에게 반말하고 마트 캐셔를 함부로 대하고 택배기사를 무시하고. 다들 그렇게 살지 말아라. 조현아가 바로 너희들이다”라는 댓글이 인상적이었다. 어쩌면 이번 사태는 제작진과 관객들이 서로를 무시하며 벌어진 일이 아닐까.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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