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 일제 강점기에서 길을 찾다

입력 2015-05-07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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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우-전지현-이정재 주연 영화 ‘암살’-시인 윤동주의 삶을 그린 영화 ‘동주’의 박정민-강하늘-이준익 감독(아래사진). 사진제공|케이퍼필름·메가박스㈜플러스엠

일제 강점기는 가장 큰 비극적인 시기
다루지 않았던 소재·시대적 담론 매력

영화 ‘밀정’ ‘암살’ ‘동주’ ‘덕혜옹주’ 등
비슷한 시대적 배경으로 극적 상황 연출


왜, 다시, 일제강점기일까.

비극적인 역사를 스크린에 담아내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최민식부터 송강호, 전지현, 손예진, 하정우, 강하늘, 박보영 등 톱스타급 배우들도 대거 그 현장으로 달려간다. 장르와 소재, 극의 규모는 조금씩 다르지만 1920년대∼30년대 등 일제 식민시대의 이야기를 전면에 그린 영화가 잇따라 제작되고 있다. 현재 6∼7편에 이르는 작품들은 최근 3∼4년 동안 조선시대를 이야기의 공간으로 택했던 사극 열풍에 이은 또 하나의 굵직한 흐름을 이룬다.

최민식은 1920년대 마지막 남은 조선 호랑이를 잡는 포수로 변신해 영화 ‘대호’ 촬영에 한창이다. 송강호는 8월 ‘밀정’ 촬영을 시작한다. 항일 무력독립단체인 의열단의 활약을 다룬다. 같은 시기 개봉하는 전지현의 ‘암살’ 역시 1930년대 상하이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독립군과 친일파의 대결이 주된 소재다. 시인 윤동주의 삶을 그린 ‘동주’, 손예진이 주연하는 ‘덕혜옹주’, 하정우와 김민희가 만난 ‘아가씨’, 박보영이 주연하는 1938년 경성의 한 기숙학교 이야기 ‘경성학교:사라진 소녀들’ 등도 모두 엇비슷한 시기를 택했다.

앞서 한국영화는 2000년대 중후반 이 시대에 주목한 바 있다. ‘기담’ ‘모던보이’ 등이 제작됐고 2008년 송강호·정우성·이병헌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668만명)과 같은 해 이보영이 주연한 ‘원스 어폰 어 타임’(154만명) 등은 흥행에도 성공했다. 하지만 시대적 고증이 필요한 만큼 세트 등 제작비 부담이 크고 비슷한 배경이 관객에게 가져다준 피로감 등은 이 시대에 대한 충무로의 시선을 잠시 거두게 했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여전히 일제강점기에 숨은 이야기, ‘발굴’할 소재가 무궁무진하다고 말한다. 영화 ‘모던보이’의 원작소설인 2000년 문학동네 작가상 수상작 ‘망하거나 죽지 않고 살 수 있겠니’(이지민)에 대한 심사평에서 문학평론가인 도정일 경희대 명예교수는 “식민시대는 문학은 물론 영화, 만화 등이 그야말로 ‘파먹을 수 있는’ 거대한 소재의 보고”라고 말했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우리 역사 속 가장 큰 비극적 시기이다. 현대사의 모든 비극도 그때부터 시작됐다”면서 “영화로선 흔히 다루지 않았고 그리지 않은 소재를 찾을 수 있는 시기다. 동시에 시대적인 담론까지 담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이 다채롭다는 점도 또 다른 이유다. 박찬욱 감독은 영국소설을 원작으로 한 ‘아가씨’의 시나리오를 작업하며 배경을 1930년대로 바꿨다. 신분과 계급 사회가 존재하는 과도기란 점이 주효했다. 제작사 용필름 임승용 대표는 “극적인 상황을 표현하기에 좋은 시기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영화의 활기가 반영된 결과라는 의견도 있다. 3년 연속 1억 관객을 기록한 시장의 확대 속에 대작 제작이 활발히 이뤄지면서 자연스럽게 시대극 제작 분위기도 형성됐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암살’과 ‘밀정’은 물론 ‘덕혜옹주’는 제작비 100억원 규모의 대작. 해외 로케는 물론 일제에 맞서는 전투 장면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액션 장르를 적극 차용해 볼거리까지 담아낸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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