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신영숙 “다시 만난 ‘명성황후’, 내가 주인공이라니…”

입력 2015-08-18 13: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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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전, ‘명성황후’ 회식자리에서 술기운에 한 말이 진짜가 될 줄이야. (웃음)”

뮤지컬 배우 신영숙은 뮤지컬 ‘명성황후’(1999) 뒤풀이 때의 추억을 떠올리다 그만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자그마치 16년 전, 신영숙이 ‘명성황후’에서 ‘손탁부인’으로 데뷔를 했을 때였다. 당시 주인공이었던 선배 이태원에게 말도 제대로 못 붙이는 막내였던 그가 뒷풀이 때 윤호진 대표에게 “언젠간 명성황후를 할 거다”라며 다부진 각오를 내비쳤다. 술기운을 빌어 한 소리가 현실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올해 공연이 올라간다는 소식을 접하고 신영숙은 윤호진 대표에게 “‘손탁 부인’ 역으로라도 참여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말했을 정도로 특별한 애정을 보였다. 하지만 윤 대표는 그에게 “‘명성황후’를 해달라”고 뜻밖의 역제안을 했다.

“올해 20주년이라는 중요한 시기에 타이틀롤을 맡겨주니 감개무량할 따름이에요. 아마도 대표님께서는 데뷔 때 보던 ‘아기’가 자라서 배우로 성장한 게 기특했는지도 몰라요. 지금도 20년 째 ‘명성황후’를 하고 있는 선배님들이 있어요. 그 선배님들은 무대에 올라가는 절 보곤 ‘아이고, 우리 아가 이제 다 커서 명성황후 하네’라며 좋아하세요.”

여배우에게 있어서 ‘명성황후’는 분명 영광스런 자리이긴 하나 그에 비견되는 부담감이 동시에 찾아온다. 그야말로 ‘무거운 왕좌’라고나 할까. 특히 올해 ‘명성황후’ 공연은 20주년라는 시간적인 의미에 광복 70주년과 명성황후 시해 120주기라는 역사적인 의미까지 더해진 해이기도 하다. 여러 모로 많은 의미가 담겼다. 타이틀롤에 대한 부담감까지 더해진 신영숙은 그 어느 때보다 자신을 괴롭힐 수밖에 없었다. 그는 “리허설 때까지만 해도 신경과민이 걸린 사람처럼 굴었다. 공연 전까지 더 준비할 것은 없는지, 더 잘할 수는 없는지 초조했다”라며 “첫 공연을 올리고 나서야 비로소 조금 안심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극장이 비면 어쩌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동안 남자 배우들이 가득한 공연을 많이 해서 관객석이 빌 거라는 걱정은 안 했거든요.(웃음) 게다가 공연장이 4층이잖아요. 어휴. 어떤 배우도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는 부담이 안 될 수가 없어요. 그런데 공연 첫날부터 지금까지 어마어마한 관객들이 와서 깜짝 놀랐어요. 평일에도 정말 4층이 가득차서…. 눈물이 늘 왈칵 쏟아져요. 그렇게 ‘명성황후’의 힘을 다시금 느끼고 있어요.”

뮤지컬 ‘명성황후’는 중전으로 간택 받은 민비가 시해를 당하기 전까지 있었던 일들을 역사적으로 푼 작품이다. ‘제목’에 비해 ‘명성황후’의 인생에 집중하기 보다 역사적인 사실을 풀어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신영숙은 단순히 조선 마지막 국모의 모습인 아닌 어머니로서, 아내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명성황후를 보여준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살았던 한 여인의 모습을 다양하게 표현하고자 신영숙은 누구보다 명성황후를 깊이 알아갔다.

“명성황후의 심리를 나타내는 극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관객들이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좀 걱정이 되긴 했지만 그래서 많은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제가 생각했을 때 명성황후는 ‘야망’있는 여성이에요.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시대에 한 발 앞서 갔던 여성이었던 거죠. 그 때는 여자가 사회, 정치 등에 개입 하지 않았으니까요. 일본이 위협적으로 느낄 만큼 똑똑하고 능력도 있었으니까요. 그 시대의 특별한 여성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는 현대여성들이 공감할 부분도 있을 거라 생각해요. 그렇지만 여자로서의 삶은 참 불행했죠. ‘중전이 아니었다면, 정답게 호롱불 앞에서 살 수 있었을 텐데’라는 대사가 있잖아요. 한 나라의 국모이긴 했지만 분명 여자로서의 삶도 꿈꿨을 거예요. 그런데 아이도 결국 둘이나 잃잖아요. 여자로서 비운의 삶을 살기도 해서 가련하기도 해요.”



그동안 많은 작품을 해온 그였지만 ‘명성황후’에서의 경험은 기이할 정도다. 흡사 ‘빙의’가 들린 듯 연기를 할 때가 있는 가 하면 시해 위기에 처한 민비를 연기할 때는 의도치 않은 헛구역질이 나오는 등 자신도 모르는 감정들이 솟구쳐 오를 때가 있다고 했다. 신영숙은 “엄청난 애국자도 아닌데… 아마도 한국인이기 때문에 표현치 못할 무언가가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넘버 자체가 감정을 절제하는 게 많아요. 그래서 들으실 때도 강하게 내리 꽂히는 게 없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마지막 ‘백성이여, 일어나라’를 부를 때 엄청난 에너지가 몰려와요. 프리뷰 공연 때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터지더라고요. 그 넘버를 부르고 커튼콜을 준비할 때까지도 감정 정리가 잘 안 돼서 저는 ‘엉엉’ 울고 있고 그 사이에 스태프들이 옷을 빨리 갈아 입혀줬어요. 다음부터 이 느낌을 앞으로 못 받을 수도 있겠다고 겁이 들기도 했는데 매 공연마다 눈물 범벅이 돼요. 왜 그럴까 생각해봤는데 관객의 에너지 덕분인 것 같아요. 교감이 되면서 나도 모르게 에너지를 다 쏟아내는 것 같아요. 정말 엄청난 뮤지컬이에요.”

감정 뿐 아니라 육체도 고달프다. 5kg가량의 가채를 쓰거나 겹겹이 한복을 입고 뜨거운 조명 아래 서서 노래를 부를 땐 거의 쓰러질 정도다. 시해를 당하는 장면은 한 번에 쓰러져야 해서 몸 전체로 오는 충격도 커서 매일 마사지숍에 가서 몸을 풀어주고 정기적으로 이비인후과에도 들려 목검사도 철저히 하고 있다.

몸과 마음은 평소보다 고되지만 “우리는 관객이 있어야 존재하는 사람들이며 관객이 있어야 비로소 작품이 완성된다”고 한 신영숙은 앞으로 남은 ‘명성황후’ 공연 기간 동안 작품을 발전시켜나겠다는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명성황후’는 박수를 받고도 참 계속 남아있는 아픔이 있어요. 뭔지 모를 짠한 아픔이요. 그게 힘들 것 같지만 몸을 맡기고 나가야죠. 20년 전에도 대단했지만 시대에 맞춰 변화해 앞으로 30년, 40년이 지나도 변치 않고 ‘명성황후’가 올라갈 수 있도록 해야죠. 저요? 시켜주신다면 계속 ‘명성황후’ 해야겠죠? (웃음)”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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