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의 아이러브 스테이지] ‘대학로 보석’ 남성진·이시훈, 웃음 본능 깨우다

입력 2015-11-19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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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의 대학’은 공연허가를 내주지 않으려는 검열관(남성진 분·왼쪽)과 어떻게든 허가를 받아내려는 작가(이시훈 분)의 치열한 대본수정싸움이 빵빵 터지는 재미를 주는 연극이다. 사진제공|(주)적도

■ 연극 ‘웃음의 대학’


日 최고 코미디 극작가 미타니 코키 작품
허당 검열관·희극 작가 포복절도 2인극
표정연기·기발한 웃음에 감동까지 선사


어느덧 대학로의 간판이 된 연극. ‘대학로 좀 다녀봤다’는 사람이라면 피해가기 어려운 관문 같은 작품들이 있는데(예를 들어 빨래, 오·당신, 옥탑방 고양이 같은 작품들) 웃음의 대학도 그 중 하나다. 대학로 예술마당 1관에서 공연 중이다. 이런 작품의 대본을 쓴 사람은 ‘웃음’이 뭔지 아는 사람일 것이다. 그저 감각적인 말장난, 얼토당토않은 몸 개그로 관객을 웃길 생각은 아예 없는 듯하다. 어떻게 하면 잠들어 있는 관객의 웃음 본능을 부드럽게 깨울 수 있는지, 언제 그걸 건드려 폭발시킬 수 있는지를 알고 있는 것이다. 이런 건 가르쳐서 될 일도 아니다. 실제로 ‘웃음의 대학’같은 곳이 있다고 하더라도 무리다.

일본 최고의 코미디 극작가로 꼽히는 미타니 코키의 대표작이다. 1996년 일본에서 처음 선을 보였고, 이후 러시아, 캐나다, 영국 등에서 장기공연하며 인기를 끈 세계적인 작품이다.

달랑 두 명의 남자배우만이 출연하는 2인극. 1940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던 시기의 일본이 배경이다. 극단 ‘웃음의 대학’의 전속작가(이시훈 분)는 공연허가를 얻기 위해 벌벌 떨며 검열관을 찾아간다. 만주에서 일본으로 갓 돌아온 냉정한 검열관은 “이런 시대에 희극을 공연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여기는 인물이다. 검열관은 허가를 내주지 않을 요량으로 로미오와 줄리엣의 패러디극인 대본을 흔들며 “대사 중에 천황폐하 만세 삼창을 넣어라”, “햄릿으로 내용을 바꿔라”, “나카무라 경관을 등장시켜라”는 식의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지만 작가는 포기하지 않고 꿋꿋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대본을 수정해 돌아온다. 설상가상 고치면 고칠수록 대본은 점점 더 재밌어진다.

“내 평생 소리를 내어 웃어본 적이 없노라”고 큰소리치는 검열관 역의 남성진은 얼음장처럼 차갑고 바늘도 안 들어갈 만큼 딱딱하지만 은근 허당기가 있는 검열관 역을 찰지게 표현했다. 미워하려 해도 미워지지 않는 검열관이다. 뇌물로 타코야키(밀가루 반죽에 잘게 썬 문어를 넣고 구운 일본과자)를 내미는 작가에게 “나를 뭘로 보고 이러느냐”며 호통을 잔뜩 쳐놓고는 슬그머니 되집어넣는 작가에게 퉁명스러운 말투로 “이왕 가져온 거니 거기 둬요”라고 내뱉는 식이다.

이시훈은 대학로의 숨은 보석 중 하나다. 가로로 죽 찢어진 눈매가 꽤 날카로운 인상이지만 이를 코믹으로 용도변경할 줄 아는 영리한 배우다. 무표정한 얼굴 하나로 객석을 뒤집어지게 만드는 연기는 이시훈의 전매특허다. 애초부터 공연허가를 내 줄 생각이 없는 검열관과 100번을 수정해서라도 허가를 받아내고야 말겠다는 작가의 치열한 듯 허무맹랑한 ‘전쟁’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한 작품이다. 막판에 가면 웃다가 숨이 턱 막히는 감동도 있다.

그나저나 참 궁금하고 기발하지 않은가. 작가는 과연 어떻게 로미오와 줄리엣 스토리 속에서 ‘천황폐하 만세’를, 그것도 세 번이나 외칠 수 있도록 했을까. 궁금하면 공연장으로.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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